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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영 칼럼] 장기주택금융 대폭 확대하는 정책 전환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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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교에 재직 중인 동료 미국인 교수가 LA에 집을 샀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방이 세 개 있는 아파트인데 위치는 물론 구조와 주변 환경 등이 모두 인상적이었다. 가격이 80만달러(약 10억원)라니, 서울의 강남보다 훨씬 저렴하고 가성비가 높다. 그것도 미국식 관행에 따라 초기 착수금(down payment)은 25만달러밖에 내지 않았다고 한다. 잔액은 30여 년에 걸친 장기할부금으로 상환하면 되고, 이자에 대해서는 소득세가 감면된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지난 18년 동안 미국에서 부은 연금이 무려 4배 이상 수익이 나서 그 일부로 착수금을 충당했다는 것이다.

경제 호황으로 국민이 누리는 혜택이 한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신입사원이 몇십 년을 저축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우리에겐 꿈 같은 얘기다. 개인연금을 한국의 주식에 투자했다 한들 그렇게 큰 수익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정책의 성패에 따라 수백만 국민이 윤택해지기도 하고, 수천만 명이 궁핍해지기도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 여파로 세계 주요 도시의 집값이 예외 없이 크게 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진국은 대부분 장기주택금융을 확대해 실수요자가 큰 부담 없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수없이 많은 집값 안정책을 시행했지만 주택문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주택 공급이 크게 늘었음에도 실수요자의 부담은 여전하다. 오히려 최근에는 집값 양극화가 정치·사회적인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정책을 답습하며 시장을 통제하려 한다. 투기를 억제한다며 양도소득세와 재산세 등을 중과하고, 금융규제를 하거나 분양가 상한제 등을 도입하기도 한다. 때로는 부동산 경기를 부추기고, 반대로 과열을 막기 위해 엄격한 단속에 나서기도 한다. 수시로 정책을 바꾸다 보니 1970년대 이후 도입된 주택정책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최근에도 케케묵은 분양가 상한제가 거론되더니, 역설적으로 집값이 다시 오른다고 한다. 오랫동안 다양한 정책의 효과를 학습한 시장이 정부보다 앞서 움직이며 잘못된 정책을 비웃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이제는 정부가 먼저 나서 시장을 학습해야 한다. 완장 차고 칼자루를 휘두르면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시장은 절대로 법이나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비록 단기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도, 시장에 반(反)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나게 마련이다. 특히 공급에 시간이 걸리는 주택시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아파트는 라면처럼 공장에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존중해야 한다. 수요가 많은 지역에서 집값이 뛰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따라서 인기 지역에 실질적인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을 장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신축과 재건축을 대폭 확대하고, 공급에 구조적 제약이 있다면 가까운 대체지역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 교통과 교육 여건 개선도 포함돼야 한다.

한편으로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장기주택금융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금융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고 실수요자에게 큰 혜택을 주는 장기금융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것은 개인이 부담하고 있는 주택 구입 비용을 장기융자로 대체하고,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기관은 채권을 발행해 다수의 구성원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므로 사회 전체의 자금 소요는 달라지지 않는다. 금융기관을 매개로 자금 흐름만 달라질 뿐이며, 이것이 곧 금융의 본질적인 역할이기도 하다.

정책당국의 의지만 있다면 우리 실정에 맞게 장기금융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평생을 집값에 눌려 살아야 하는 한국인의 삶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경제 원리는 인과관계가 분명한 과학적 명제다. 주택정책에서도 과학적인 정책 처방을 간과하고 인기나 힘으로 밀어붙이면 결국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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