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제를 계기로 서울 집값이 조정기에 돌입할 것이다.”
“재건축 규제는 신축 선호 현상, 전셋값 상승만 부추긴다. 수급 원리에 따라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다.”
하반기 서울 집값의 향방을 놓고 시장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일부 전문가는 지난 6월부터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 전환한 것은 일시적인 착시라고 주장한다. 거래량이 급감한 가운데 일부 단지가 고가에 거래되면서 나타난 현상일 뿐이며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계기로 본격적인 조정이 시작될 것이란 설명이다. 반대편에선 공급이 부족하고 수요는 풍부한 서울 부동산시장의 구조상 규제가 집값 상승을 막을 수 없다고 맞선다. 오히려 신축 가격 급등과 전세 가격 상승 등 가격 왜곡만 가져올 뿐이라고 주장한다. 수요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의 구체적인 시기와 대상을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신축과 청약, 재건축단지를 놓고 힘겨운 저울질을 하고 있다.
서울 집값, 아직은 오름세지난달 12일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 방침이 발표된 이후 3주가 지났다. 강력한 규제가 예고되면서 부동산시장이 조정받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서울 부동산시장은 견조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8월 마지막주(26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대비 0.03% 오르며 9주 연속 상승했다. 지난주(0.02%)보다 오름폭도 커졌다.
입주 5년 이내 신축과 10년 내외 준(準)신축들이 분위기를 이끌었다. 지난달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 등 강남권에선 해당 단지들이 이전 거래 가격을 경신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2015년 준공) 전용 84.97㎡는 지난 5일 26억5500만원에 거래돼 직전 최고가(6월·25억원)보다 1억5500만원 뛰었다. 37억5000만원에 거래된 전용 153.31㎡ 아파트는 종전 최고가를 2억원가량 넘어섰다. 강남구에서 이달 신고 거래된 아파트 55건 중 절반가량인 24건이 신고가를 기록했다.
서초구 반포 일대에서는 중대형 아파트가 가격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30억원을 넘는 거래가 다수 등장했다. 2009년 입주한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117㎡는 34억원에, 전용 115㎡는 33억원에 거래됐다.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59㎡는 약 24억원에 거래돼 3.3㎡당 매매가가 1억원을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송파구 리센츠 전용 85㎡는 직전보다 5000만원 오른 18억7000만원에, 파크리오는 7000만원 뛴 17억1000만원에 최고가를 다시 썼다.
재건축 재개발 시장은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잠실주공5단지가 1000만~2000만원 떨어졌고,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와 7단지도 500만~1000만원 호가가 하향 조정됐다. 관리처분계획 취소소송 악재까지 겹친 반포주공 1단지와 일반분양 물량이 5000가구에 달하는 강동구 둔촌주공은 호가가 최대 1억원가량 하락한 매물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은 지난달 셋째주 19주 만에 하락 전환(-0.03%)했다. 지난주에도 같은폭으로 내리며 2주째 가격 조정을 받고 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재건축 단지들은 약보합세지만 신축 단지로 더 많은 수요가 유입되면서 상승장이 이어지고 있다”며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상태에서 상한제 적용을 받게 된 재건축 단지들은 당분간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규제 약발 먹힐까상승 분위기가 추석 이후에도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은 올해 전국 주택시장 매매 가격은 1.4% 하락, 수도권은 1.2%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연초 전망치보다 변동률을 하향 조정했다. 이미 거래량이 급감했고 10월께 제도 시행 방침이 구체화되면 규제 효과도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란 설명이다. 이 기관이 수도권 주택 가격 하락을 예상한 것은 2014년 이후 6년 만이다.
김성식 연구원장은 “국내외 거시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데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 3기 신도시 주택 공급 등 강력한 규제책이 계속 나오고 있어 하락세가 지속할 것”이라며 “이 같은 조정 국면이 몇 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생각을 달리하는 시장 전문가도 많다. 서울의 경우 풍부한 수요 대비 부족한 공급량, 규제 내성, 재건축 규제에 따른 신축 희소성 부각 등으로 집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본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전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는 올해 서울 부동산 시장이 8.4%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는 “이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한 고분양가 관리가 이뤄지고 있고, 상한제는 여기서 더 강화하는 정도”라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실수요자와 투자자들은 한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분양가 상한제가 발표되자 지방으로 갔던 투자자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오고 있다”며 “입지가 가장 좋은 서울은 더 오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정책의 효과가 단기에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결국은 수급 문제에 따라 시장 가격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집 언제 어떻게 사야 하나시세의 절반 수준인 ‘로또 청약’이 대거 쏟아질 것이란 기대가 커진 수요자들은 우선 청약 대기 수요로 움직이는 분위기다. 지난해 10월 셋째주(0.04%)부터 36주간 내렸던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분양가 상한제 논의가 시작된 7월 1일을 기점으로 상승 전환했다. 7월 말 0.03%, 지난달엔 0.05%까지 오르며 상승폭을 확대 중이다.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청약을 목적으로 전세 시장에 머무르는 실수요자가 늘어나 전세가 상승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청약 경쟁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보니 서둘러 분양받으려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동작구 ‘이수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사당3구역을 재건축)의 1순위 청약경쟁률은 203 대 1을 기록했다. 2017년 9월 신반포 자이(168 대 1) 이후 2년 만에 세 자릿수 평균 경쟁률이 나왔다. 가점이 높은 사람은 큰 상관이 없지만 가점이 60을 밑도는 수요자들은 청약 전략을 짜는 게 더 힘들어졌다.
청약 전문가들은 가점이 낮다면 추첨이 있는 85㎡ 초과로 청약하거나 비선호 층이나 동에 도전하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현금이 부족한 고가점자들은 서울이 아닌 수도권 인접 지역에 전입하는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 김학렬 소장은 “가점이 낮은 무주택자는 새 아파트 대신 입주 예정 아파트나 입주 5년 이내 준신축 아파트를 찾는 게 현실적”이라며 “서울 안에 교통망과 생활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면 변두리 구축이라도 상승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