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41조원인 나랏빚이 2023년 1061조원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같은 기간 37.1%에서 46.4%로 껑충 뛴다. 나랏빚이 GDP의 절반 가까운 수준으로 불어난다는 얘기다. 경기 침체로 세금 수입이 쪼그라드는데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에 더 속도를 내기로 한 데 따른 영향이다.
정부는 29일 내년 예산안(513조원)을 발표하면서 “경제가 어려울수록 나랏돈을 많이 풀어 성장잠재력을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못 규제’와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그대로 둔 채 재정 지출만 늘린다고 경제가 살아날지는 불투명하다. 자칫 재정건전성만 훼손돼 미래세대의 부담을 키울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재정건전성 전망 1년 새 크게 악화
기획재정부는 이날 발표한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빚을 뜻하는 국가채무가 올해 740조8000억원에서 내년 805조5000억원으로 64조7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상환 부담이 큰 ‘적자국채’는 60조2000억원 불어난다.
국가채무는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 2021년 887조6000억원, 2022년 970조6000억원이 되고 2023년(1061조3000억원)엔 1000조원을 넘어선다. 4년 새 320조5000억원 증가하는 것이다. 2015~2019년 국가채무 증가폭은 149조30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이맘때 내놓은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과 비교해도 큰 변동이 생겼다. 당시엔 2022년 국가채무를 896조8000억원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엔 73조원이 더해졌다. 2022년 국가채무비율 역시 41.6%에서 44.2%로 2.6%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정권 교체기에 이전 정부의 계획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 정권 안에서 세운 재정운용계획은 크게 손대지 않는다. 불과 1년 만에 국가채무 규모를 대폭 늘려 잡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란 얘기다.
세수 주는데 나랏돈은 “더 빨리 풀겠다”
1년 새 재정건전성 전망이 급격히 나빠진 1차적 원인은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세수 여건 악화가 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8월엔 2020년 국세 수입이 6.1%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번엔 0.9% 감소로 전망을 확 틀었다. 법인세 전망이 특히 어둡다. 기재부는 내년 법인세 수입이 올해보다 14조8000억원(18.7%)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수 여건 악화에도 정부는 내년 재정 지출 증가율을 9.3%로 잡았다. 1년 전 전망치(7.3%)에서 2.0%포인트 높인 것이다.
“국가채무비율 50~60%까지 치솟을 수도”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기전망을 너무 낙관하고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짰다고 평가한다. 기재부는 내년 국세 수입이 0.9% 줄지만 2021~2023년엔 4~5%대 증가로 반등한다고 내다봤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의 경제 부진은 산업경쟁력 자체가 떨어지는 구조적인 원인이 커서 단기간에 회복되기 쉽지 않다”며 “국세 수입 반등 전망이 빗나가면 국가채무비율이 몇 년 안에 50~6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채무비율 60%는 유럽연합(EU)에서 재정건전성의 기준으로 삼는 수치다. 국가채무비율이 급격히 나빠지면 대외 신인도에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재정 지출 확대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은 “재정 투자로 성장잠재력을 높이면 세금 수입과 재정건전성이 오히려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내년 예산도 연구개발(R&D)과 혁신인재 양성 등에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크게 늘렸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불필요한 지출 감소 등 재정개혁도 확실히 하겠다. 정부를 믿어달라(안일환 기재부 예산실장)”고도 했다.
김상봉 교수는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노동개혁,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개혁 등이 가장 시급하다”며 “이런 개혁엔 손을 놓으면서 재정 확대만으로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안이하다”고 꼬집었다.
■1061조원
정부의 2023년 국가채무 전망치. 정부가 재정 지출을 대폭 늘리면서 올해 741조원인 국가채무는 2023년 1061조원으로 4년 만에 320조5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15~2019년 국가채무 증가폭인 149조3000억원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이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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