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7월25일 ‘인랑’이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2.8/5)
가십성 이야기부터 해보죠. 그간 여러 영화서 각각 이병헌, 송강호, 최민식과 호흡을 맞춰온 김지운 감독입니다. 하지만 영화 ‘인랑(감독 김지운)’엔 그 셋이 없어요.
단편 영화로 잠시 만났을 뿐인 배우 강동원과, 감독이 “장르 영화서 재미있는 연기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밝힌 한효주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물론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때 인연을 맺은 정우성이 얼굴을 비추긴 합니다.
그러나 중심은 강동원이 연기한 임중경이에요. 강동원은 그가 가진 티켓 파워를 잘 알고 있는 배우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기획된 영화 ‘1987’이 그의 참여로 제작에 속도를 붙인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죠. 아마 ‘인랑’ 역시 그러했을 겁니다.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을지언정, ‘인랑’은 약 200억 원 예산의 대작입니다. 이목을 끌 배우가 필요하죠.
‘본격 SF 얼굴 대잔치’란 별칭도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 한예리, 최민호 등이 출연합니다. 눈이 즐거워요. 탄성도 나오고요.
‘인랑’은 김지운 감독이 쓴 오리지널은 아닙니다. 영화 ‘패트레이버2’ ‘공각기동대’ 등을 만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각본을 쓴 애니메이션 ‘인랑’이 원작이죠. 워낙 유명한 작품입니다. 육중한 강화복, 총기 MG42, 붉은 안광으로 대표되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화 내용과 별개로 어디선가 한 번쯤 맞닥뜨렸을 이미지예요. 매우 강렬하죠.
더불어 문화 개방사에 있어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제3차 일본대중문화개방’이 이뤄졌을 때 ‘인랑’은 ‘무사 쥬베이’에 이어 한국에서 정식 상영된 두 번째 극장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재밌는 건 그때 관객들의 반응입니다. “너무 복잡하다”는 불평이 터졌죠.
원작 ‘인랑’은 복잡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총구에 불을 뿜으며 정의를 구현하는 작품이 아니에요. 실상은 원작자의 세계관, 특정 세대의 허무감 등이 결합된 일본의 낯선 면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가운데 충무로 배우들을 ‘얼굴 대잔치’로 나열한 실사판의 소구점과, 액션물을 원했던 그때 그 대중의 기대점은 어딘가 일치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원작은 1960년대 가상의 일본을 다룹니다. 세계 대전 후 독일 점령군 통치에서 벗어난 전후 일본은 강경 정책이 낳은 실업자 및 반정부 세력에 사회 불안을 앓습니다. 국가 공인 직속 경찰 기구 ‘수도경’과 그 휘하 ‘특기대’ 및 ‘공안부’, 반정부 강경 세력 ‘섹트’, 국가 경찰로의 승격을 노리는 ‘자치경’ 사이의 암투가 주요 내용이에요.
김지운 감독은 배경을 2029년 한반도로 옮겼습니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열강 사이에서 남북한은 생존 수단으로 통일에 합의합니다. 이에 주위 강대국들은 통일 한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죠. 민생은 망가지고 더는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 아닙니다. 이때 반정부 무장 테러 단체 ‘섹트’가 등장합니다. 통일 준비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새 경찰 조직 ‘특기대’를 창설하고, 정보 기관 ‘공안부’는 ‘특기대’ 말살을 기획합니다. 이 가운데 흉흉한 소문 하나가 떠돕니다. ‘특기대’ 내 암살 부대 인랑의 존재가 그것이죠.
“근데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인랑이라고. 부패 세력 색출 정화 부대라고 하는데 나타나지도 않고 지휘 체계도 모르겠고.” 인랑의 등장에 부패 세력은 “애국”을 강조합니다. 조직과 조직 간의 싸움에서 인랑은 조직이자 개인입니다.
원작 ‘인랑’의 중심은 남녀의 사랑입니다. 오시이 마모루의 세계관 위에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은 인랑(人狼/늑대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얹었어요.
인물을 늑대에 비유하는 표현도 다수 등장합니다. ‘짐승으로 살 수밖에 없는 놈이다’ ‘사냥꾼이 늑대를 죽이고 끝나는 건 인간이 쓴 동화 속에서일 뿐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과 함께 살아도 늑대가 인간이 될 수는 없다’. 여기에 ‘빨간 두건’ 이야기까지.
인간과 짐승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그래서 기억될 만합니다. 일본 ‘전공투 세대(1960년대를 기점으로 학생 운동에 나선 세대)’와 현 세대를 잇는 매개는 결국 사랑이었죠.
반면 실사판 ‘인랑’서 사랑은 서브 플롯으로 전환됐습니다. ‘야만의 시대에도 과연 사랑은 가능할 것인가?’란 주제가 됐죠. 문제없습니다. 사랑은 보편 감성입니다. 게다가 강동원, 한효주잖아요. 20대 배우가 청춘을 풍긴다면, 30대 배우는 그 위에 멋스러움까지 얹죠. 두 배우는 각각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뷰티 인사이드’서 미를 뽐냈던 바 있습니다.
‘(TV 드라마 한정) 일본은 어디서든 교훈을 찾고, 한국은 어디서든 사랑을 한다.’ 하지만 ‘인랑’의 사랑은 ‘왜 여기서도?’가 아닙니다. 서브 플롯이 있으면 메인 플롯도 있으니까요.
원작 ‘인랑’의 사랑은 절망에서 피어난 사랑이기에 처연했습니다. 죽음으로 완성됐죠. 반면 실사판 ‘인랑’은 상대적으로 덜 절망스러운 사랑을 보여줍니다. 메인 플롯이 있으니까요. 김지운 감독은 소위 ‘멜로 라인’을 운송 수단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얘기하고 싶은, 멜로로써 운송하고 싶은 건 집단이 만든 시스템과 개인에 관해서입니다.
감독의 후술이 참 재밌어요. 그가 주목한 것은 개인의 집단화입니다. 2013년에 ‘인랑’ 출연 제의를 받은 강동원은 시대 배경이 ‘1950~1960년대’ ‘1980년대’ ‘유신 정권 시절’ 등을 오갔다고 밝혔죠. 감독은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등까지 고려했다고 밝혔고요.
시간을 표류한 ‘인랑’이 도착한 종착지는 현 시대가 겪고 있는 문제, 이를테면 남북한 문제 등이 보다 팽배한 근미래입니다. 강대국이 우경화 정책 아래 “블록화”를 이룬다면 그 사이에 낀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선택지는 통일이라는 게 감독의 설명입니다. 더불어 시스템과 개인의 상관 관계는 강대국의 “블록화”에서 출발합니다.
김지운 감독은 ‘인랑’을 통해 집단을 벗어나 오롯이 개인으로 존재하는 한 사람을 그려내려 했습니다. 나라도, 사회도, 심지어 성(性)도 저마다 벽을 두른 채 서로를 배척하려는 세계에서 개인의 말이 사라진다고 봤죠. 그래서 그는 탈(脫)집단의 사고를 임중경에게 투영해 그가 세 사람 혹은 세 집단을 만나게 합니다. 각각 ‘공안부’ ‘특기대’ ‘섹트’를 대표하는 친구 한상우(김무열), 스승 장진태(정우성), 여성 이윤희(한효주)가 바로 그들이죠.
임중경은 셋과의 만남으로 내상을 입습니다. 상처는 성장이 됩니다. 짐승을 강요받는 ‘특기대’ 요원은 서서히 임중경의 목소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사람 임중경인 셈이죠.
모든 영화엔 감독이 의도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해설이 곁들여진 영화는 개개의 재미를 갖죠. 장르 스페셜리스트 김지운 감독의 집단론 및 ‘야만의 사랑’을 알고 보면 ‘인랑’은 원작보다 진일보한 희망가입니다. 하지만 해설이 없다면, 관객의 눈에 ‘인랑’은 강동원과 한효주의 연애가입니다. 키스신은 강렬한데, 개인의 성장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칸을 멋지게 구현한 배우 김법래입니다. 그러나 ‘인랑’에선 극의 경직성을 한층 끌어올립니다. 사람의 문제보단 대사의 문제입니다. “위에서부터 바닥까지 다 걷어 올린다”, “4주는 또 뭐야. 지금 이혼해?” 등의 대사에 실소가 터집니다. 딱딱한 대사는 또 등장합니다. “거긴 개미 지옥 같은 데예요” 하는 이윤희를 보면 의심은 더 커집니다.
감독은 한상우, 장진태, 이윤희의 비중이 같다고 알렸지만, 아니에요. 집단과 개인의 논리를 동시에 안고 있는 이윤희는 ‘멜로 라인’ 속에서 감독도 배우도 예상치 못한 파괴력을 갖습니다. 그래서 배우에게 ‘인랑’은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적기였습니다.
한효주는 “안정감” 있는 배우입니다. 하지만 그가 ‘인랑’서 그 “안정감”을 보여줬는진 잘 모르겠어요. 그의 대사는 묘하게 겉돕니다. 물론 근미래물 및 SF물은 배우의 무덤입니다. 김법래, 허준호마저 역할과 괴리된 대사를 하는 ‘인랑’이에요.
한효주는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최선이 최고는 아니죠. 욕도 겉돌고, 신파도 겉돕니다. 책임이 막중했던 건 인정합니다. 조직에서 개인으로 임중경을 움직여야 했고, ‘빨간 두건’ 동화를 알려야 했으며, 사랑은 공감을 모아야 했죠.
처음엔 이윤희의 비중이 너무 적어서 놀랐습니다. 나중엔 이윤희의 비중이 너무 커서 놀랐고요. 그의 연기는 연극의 모놀로그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대사가 와닿지 않는데 연기가 와닿을 리가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원작과 다른 식으로 소모된 이윤희입니다. 그리고 굳이 단어 ‘소모’를 사용한 건 배우 한효주가 장르에 휩쓸렸기 때문입니다.
‘인랑’은 미장센이 좋은 영화입니다. 특히 원작의 강화복을 실사 못지않게 구현한 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죠. 만화보다 더 만화적인 외형의 강동원이 붉은 안광의 특기대를 연기한 건 어쩌면 약 18년 만에 한국 관객을 다시 만난 ‘인랑’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나 집단화에 무너진 개인의 자유주의를 말하고자 한 김지운 감독은 그것을 너무 꼭꼭 숨겼습니다. 힌트만 있다면 ‘인랑’은 ‘친절한 지운 씨’가 만든 친절한 SF 영화입니다. 그러나 힌트가 없다면, ‘인랑’은 감독이 원작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비싼 괴작입니다.
다시 말해 ‘인랑’은 줄다리기에 실패한 영화예요. 이창동 감독은 ‘버닝’에 관해 “쉬운 힌트도 있고 아주 어려운 힌트도 담았다”며, “‘그렇게 많이 힌트를 줬는데 이렇게까지 안 읽혀지나’란 아쉬움이 들기는 한다”고 했죠. 한편, 김지운 감독은 ‘인랑’을 본 관객이 영화적 표현 방법에 대한 관찰 없이 드러난 것만 집중하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렇지만 ‘인랑’은 거대 자본이 투입된 상업 영화입니다. 감독은 여름 블록버스터에 걸맞은 화법을 원작 ‘인랑’에 부여했다고 밝혔습니다. ‘관객을 위해서’입니다. 더불어 여름 개봉에 맞춰 짧은 기간 동안 후반 작업에 임했다고 했습니다. 역시 ‘관객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사랑을 담아 꽃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그는 꽃을 쓰레기통에 던졌습니다.’ 이 경우 꽃은 쓰레기입니다. 하지만 예쁜 쓰레기입니다. 꽃은 꽃의 본질을 절대 잃지 않습니다. ‘그는 꽃을 쓰레기통에서 꺼냈습니다. 향과 생기가 전보다 덜했습니다. 훌훌 털어 건조화(花)로 만들었습니다. 전에 없던 색조가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물론 최선은 생화로 예쁨 받을 때입니다. 그러나 ‘인랑’의 현 상황은 시들어가는 꽃입니다. 만듦새가 아쉽죠. 하지만 경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인랑’에겐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색과 향이 있습니다. 잘 마른 꽃 ‘인랑’이 뿜어낼 색과 향이요.
‘인랑’을 ‘멜로’로 오독하는 관객의 해석은 그 자체로 지금의 정답입니다. 하지만 정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화의 힘이죠. 처음 만나는 스타일의 ‘인랑’입니다. 과연 김지운의 바람대로 ‘인랑’은 한국 영화의 새 활로가 될 수 있을까요.(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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