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아티스트 나난을 만났다.
일명 ‘이태원 모스크’로 더 유명한 서울중앙성원에서 도보로 5분 거리. 그곳에 작가 나난(본명 강민정)의 작업실이 있다. 고개를 돌려야 알 수 있는 비좁은 골목, 약 70도 경사의 투박한 계단. 이 모두를 거쳐야 도착할 수 있는 작업실의 장점을 묻자 채광이란 답이 돌아왔다. “햇볕이 잘 드니까 색이 잘 보이더라고요.”
작가의 말처럼 온 공간이 햇볕을 머금도록 하는 창(窓)은 그의 여러 작업물을 밝게 비췄다. 작업물은 책상에만 머물지 않았다. ‘산소숲’ ‘윈도우 트리’를 비롯한 여러 프로젝트와, 모델 장윤주를 매개로 작가가 SNS에 게재한 ‘장벚꽃’의 탈이 작업실 이곳저곳에 산개해 있었다. 나난의 작업실은 작업 공간이자 하나의 아카이브였다.
그 자신을 소개할 때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꼭 빼놓지 않는 나난은 국내 첫 윈도우 페인터다. 말 그대로 창문 위에 그림을 그려온 그는 윈도우 페인터 이전엔 에디터, 일러스트레이터, 편집장을 역임했던 바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단어 ‘캔버스’를 총 아홉 번 사용했다. 맨 처음 그에게 캔버스는 잡지였고, 캔버스는 종이에서 창문으로 변화했으며, 이제 그에게 캔버스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꽃다발을 소재로 한 그림 ‘롱롱타임플라워’는 작가 나난의 최신 작업이다. 주위 사람들이 나난의 그림을 소장할 방법이 없다는 것에서 시작된 ‘롱롱타임플라워’가, 내포한 의미는 바로 ‘시들지 않는 꽃’. 작가는 웨딩 촬영을 앞둔 친구가 나난에게 선물 받은 부케를 보고 시들지 않는 부케라고 언급한 데서 그 뜻이 생겨났다고 뒷이야기를 밝혔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이달의 아티스트①] ‘韓 1호 윈도우 페인터’ 나난, 승화와 순환을 반기다 (기사링크)
[이달의 아티스트②] ‘롱롱타임플라워’ 나난, 사회와 소통하는 그의 목소리 (기사링크)
Q. ‘롱롱타임플라워’ 얘기를 해볼까요. 윈도우 페인팅부터 ‘롱롱타임플라워’까지 그간 나난의 작품에는 인물보다 풍경 혹은 자연이 가득해요.
“답하기가 참 어려워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질문을 받은 기분입니다. 자연은 질리는 일이 없어요. 끊임없이 영감을 주죠. 계속 새로운 에너지와 기쁨을 안겨줍니다. 벚꽃이 피면 벚꽃을 그리고 싶어져요. ‘장벚꽃’도 그래서 그렸고요.”
Q. 맞아요. SNS에 게제한 장윤주 벚꽃 사진이 화제를 모았어요.
“사진가 친구, 모델 친구, 글 쓰는 친구가 있고 저는 그림 그리는 친구예요. (장)윤주는 제 친구이자 모델로서 다른 영감을 불러일으켜주죠. ‘롱롱타임플라워’에 그치지 않고 윤주가 벚꽃을 표현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사실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라서 놀랐어요. 저는 타인이 나난의 작품임을 인지하고 작품을 봐주길 원하는 작가잖아요. 그런데 불특정 다수가 윤주가 나온 작품을 보면서 막 확산이 일어나는 거예요. 작가로서 고민이 되더라고요. 이건 카피가 아니라 패러디거든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컸어요.”
Q. 국내 모델 에이전시인 에스팀과, SM 엔터테인먼트가 지난해 공동 설립한 인플루언서 매니지먼트사 ‘스피커’ 소속이에요. 이와 관련 같은 스피커 소속인 차인철은 엔터테이너적 움직임이 아티스트 사이에 존재함을 알렸던 바 있죠. ‘스피커’의 나난으로서 무엇을 얻고자 했나요. 얼핏 ‘대중의 나난’이 떠오릅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계약한 건 절대 아니에요. 에이전시 없이 활동한 지난 시간 동안 수많은 경험을 겪어왔어요. 만약 에이전시가 있다면 제 작업이 얼마나 더 발전 가능한지 궁금했습니다. 어떤 방향성을 제시 받을 수 있고, 얼마나 더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어요. 또 다른 이유는 돈 이야기예요. ‘윈도우 트리’도 그렇고 작가로서 물건을 파는 일은 아직까지도 익숙지 않은 부분이거든요. 에이전시를 만나기 전에는 제 또 다른 자아를 꺼내야만 했어요. 에이전시가 대신 해주시는 걸 보니까 그때야 알겠더라고요. 그냥 견뎌온 거였어요. 그 짐을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이젠 작업만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Q. 서울예술대학교 광고창작과 졸업, 스트리트 매거진 ‘런치박스’ 수석 기자 겸 일러스트레이터, LG텔레콤 스트리트 무가지 ‘카이’ 편집장, 국민일보가 선정한 ‘21세기 이끌어 나갈 영향력 있는 신세대 뉴 트렌드’ 등. 모두 20대의 나난이 걸어온 길이에요. 그때 한 기자는 나난을 두고 ‘영 크리에이터’라는 표현을 사용했어요.
“할 거 다 해봤죠. (웃음)”
Q. 윈도우 페인터가 되기 전 이야기가 궁금해요.
“지금은 맑고 순수한 영혼이지만 (웃음) 그때는 피어싱을 안 뚫은 데가 없었어요. 그 당시 익숙지 않은 펑크, 테크노 음악을 즐겨 들었고요. 그 생소한 문화를 취재해줄 객원 기자가 필요하셨나 봐요. 전 좋았죠. 좋아하는 피어싱, 타투, DJ 등을 마음껏 취재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어느새 잡지사 에디터 나난이 되어 있었습니다.”
편입을 준비할 정도로 그림을 사랑했던 나난. 그는 잡지사 취직 후 새벽까지 삽화를 그렸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단다. 밤새 그린 그림을 다시 그리는 상황에도 그의 창작욕은 꺾일 새 없는 타오르는 불꽃이었으니까. “그때의 훈련이 윈도우 페인팅을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나난은 그가 만난 사람과 그가 행한 일이 모두 인생의 자양분이 됐다며 그가 발견한 깨달음 하나를 넌지시 전달했다.
Q. 고통도, 기쁨도 아티스트에게는 자양분이 되죠.
“그림 그리는 친구들을 보면 개중에는 자기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냐며 실의에 빠진 친구들이 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그 사람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그가 그려낼 수 있는 그림의 소스예요. 너무 비관하지 않고 그 자체를 받아들였으면 해요. 제3의 눈을 가지고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래왔거든요. 사람들이 저를 두고 언제나 즐겁게 작업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아무튼,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그림만 그리는 시대는 지난 거 같아요. 선진들이 그래왔잖아요. (빈센트 반) 고흐도 그랬고요.”
Q. ‘아티스트는 특별하다’란 명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사진 하나 보여드릴게요. 친구 사이이다한테 의뢰해서 만든 거예요. 이게 저예요. 여기 보면 역전에서 나물 파는 아주머니가 계세요. 이분들만 보면 마음이 울컥해요. 그림 그리는 일이 벼슬인 양 ‘나 아티스트야’ 하고 싶진 않아요. ‘나는 달라’라고 생각하는 것도 별로고요. 단지 그림으로 표현하는 아티스트라고 해서 삶의 방식이 특별하다는 건 좀 그래요. 저한테는 맞지 않는 거 같습니다. 작업할 때 그런 부분을 많이 생각하곤 해요. 그것이 삶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예술로, 작업으로 표현되는 거 같아요.”
Q. 전시회를 계획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고리타분한 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그러고 싶어요. ‘롱롱타임플라워’의 경우엔 친구들에게 선물한 작품이 SNS를 통해 대중과 접점을 찾았어요. 이제는 제가 선택하지 않은 분들께도 제 작업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Q. 때는 언제일까요.
“늦어도 내년 초에는 했으면 해요. 그런 바람이자 목표가 있습니다.”
대중이 아티스트에게 기대하는 바는 그들의 목소리다. 그들의 목소리를 예술에 싣는 것, 아티스트의 본분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감히 말하건대 처음의 나난은 아티스트가 아니었을지도. 하지만 생애 첫 윈도우 페인팅을 하며 나난은 과거와 조우했다. 애니메이션 필름지 위에 그림 그리는 일을 세상 가장 즐거운 놀이로 여기던 소녀 나난을 만난 것이다.
일생 일대의 경험 이후 나난은 삭막한 도시에서 자연을 보다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법을 세상에 알렸고(윈도우 페인팅), 한철에만 나는 잡초에게도 ‘함께 살아간다’는 일상성을 부여했으며(‘나난 가드닝’), 축하와 감사가 오랫동안 시들지 않는 그만의 방법(‘롱롱타임플라워’)을 찾아냈다. “이제는 제 작업이 사회에 끼칠 영향과, 그것이 저에게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가 주요 관심사예요.” 그의 목소리에는 아티스트의 향(香)이 난다. 진화의 연속에서 그의 다음 목소리는 또 어떤 향을 머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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