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은 기업 이익, 노조는 설립 취지 집착
"쌍용자동차와 한국지엠 문제의 본질은 같지만 해법은 전혀 다르다." 최근 만난 완성차회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리고 실제 한국지엠과 과거 쌍용차의 문제 해결 방식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이유는 해외 공장 여부다. 쌍용차는 오로지 국내에만 생산 시설이 있어 법정관리 당시 존속시키는 게 청산가치보다 높게 산정돼 살아남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전제는 구조조정이었고, 이를 막아선 노조와 사측이 77일간 극한 대립을 펼쳤다. 그래도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존속'이라는 희망이 있었던 만큼 노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내부에서 흘러 나왔다. 이후 파업이 진정된 후 근로자들은 별도 단체를 구성하고 정치적 파업은 하지 않고 있다. 아픈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이와 달리 미국 GM은 한국 내 생산물량 대체 카드가 적지 않다.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에도 공장이 있다. 그러니 한국에서 생산하지 못하면 물량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 그만이다. 부평 공장에서 생산되는 트랙스를 중국에서 만드는 방안의 검토를 끝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경우 창원과 부평 공장도 문을 닫을 수 있다. 군산 공장 한 곳을 지키기 위해 창원과 부평까지 흔들리는 셈이다. 그러나 노조의 설립 취지가 조합원 일자리 지키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노조 또한 적지 않은 고민이다. 그들의 선택에 한국지엠 전체 운명이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노조가 군산공장 일자리를 끝까지 지켜내는 방안을 선택하면 정말 GM은 창원과 부평까지 포함해 한국 생산 전체를 중단할까? 현재 움직임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군산공장과 동일하게 크루즈를 생산하는 미국 내 오하이오 공장도 오는 6월 3,000명에서 1,500명으로 줄이기로 결정한 만큼 군산공장 폐쇄 방침은 결코 후퇴할 의도가 없다.
그리고 국내 생산 시설이 모두 문을 닫는다면 3자에게 회사를 매각하거나 청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흐름을 볼 때 한국지엠을 인수할 회사는 거의 없다. 중국 기업을 언급하지만 이미 쌍용차를 인수했던 상하이차의 사례에 비춰 가능성은 희박하다. 게다가 GM은 한국지엠의 연구개발 및 디자인, 판매는 유지하겠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다시 말해 판매에 필요한 차종은 부평, 창원, 군산이 아니라 해외에서 수입하겠다는 뜻이다. 세계 곳곳에 생산 시설이 있는 다국적 기업의 선택지가 많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는 형국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 생산 시설은 자동차 공장이 아니라 그저 부동산일 뿐이다.
상황은 위태롭게 돌아간다. 이미 미국 GM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 공장 인원 감축이 보여주듯 기다릴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미국도 한국보다 훨씬 많은 인원 감축을 하는 마당에 국내를 봐줄 이유조차 없다. 이번 한국지엠 사태의 진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징후들은 오히려 GM의 판단을 확고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경고나 협박이 아니라 진짜 생산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부평, 창원, 보령공장까지 폐쇄하면 가장 아픈 쪽은 미국과 GM이 아니라 한국과 한국지엠, 그리고 수 많은 협력사다.
대안으로 국영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일시적으로 국영화를 해봐야 생산할 차종이 없다. 누군가 생산할 제품을 개발한 뒤 생산을 의뢰해야 공장이 돌아가는데 GM이 생산을 의뢰할 리 만무하다. 게다가 자동차 생산 시설은 완성차를 만드는 곳일 뿐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해 지금은 명분보다 실리를 챙겨야 할 때라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최악의 사태 이후 나타날 이해 당사자들의 손익이다. 먼저 한국지엠 노조 입장에선 일자리를 지키려다 오히려 일자리 모두가 사라진다. 이미 희망 퇴직을 신청한 사람들은 위로금이 사라지며, 미국 GM은 이미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한국지엠의 자산을 매각해 정리한다. 계속 공장이 가동됐다면 지속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30만명의 일자리는 다시 복원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미국 GM은 일시적 손실을 입지만 한국은 근로자의 미래 기회 비용마저 모두 잃어 버린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한국은 꾸준히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겪어왔다. 지금의 쌍용차는 당시 대우자동차로 인수됐고, 기아차는 현대차의 품에 안겼다. 뒤늦게 자동차사업에 뛰어든 삼성차는 프랑스 르노가 인수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대우차는 쌍용차를 다시 뱉어냈고, GM을 주인으로 맞이했다.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된 근본 배경은 국내 시장이 5곳의 완성차기업을 떠받치기에 너무 작은 규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수출에 집중하면서 생산 규모를 유지했다.
수출이 흔들리면 생산 감소가 불가피하다. 특히 이 가운데 한국지엠의 수출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생산의 90%를 수출했는데 미국 GM이 수출을 줄여버렸다. 이를 다시 만회해 달라는 게 지금의 노조 목소리지만 미국 GM은 한국지엠을 살리기 위해 GM 전체 이익에 반하는 행동은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한국지엠 아니면 자동차 만들 곳이 없는 것도 아니라며 받아 들이라고 요구한다.
GM의 요구를 한국지엠 노조는 강요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기업의 수익 논리는 표가 걸린 정치가 아니다. 미국 GM은 한국에서 선거를 하지 않고, 한국지엠 근로자 또한 미국 내 선거권이 없다. 그래서 오로지 시장 논리로 풀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한국 내 사회적 갈등만 높아지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미국 GM의 이사회다. 한국지엠 내 생산 중단의 모든 결정권은 GM 이사회가 가지고 있어서다. 그런데 이사회 임원의 면면을 보면 지금의 상황이 읽혀진다. 이사회 의장인 메리 바라 회장과 이사회 멤버 가운데 한 명인 테오도르 솔소 이사만 각각 GM과 디젤엔진 회사인 커민스에서 경험을 쌓은 자동차 출신일 뿐 이외 모든 임원은 오로지 수익만 바라보는 인물들이다. 린다 구든(록히드 마틴), 조셉 지메네스(노바티스), 제인 멘딜로(하바드 매니지먼트 컴퍼니), 마이클 뮬렌(해군재단), 제임스 물바(코노코 필립스), 패트릭 루소(휴렛 패커드), 토마스 쇼웨에(월마트 파이낸스), 캐롤 스텝슨(아이비 비즈니스 스쿨) 등은 금융과 당장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들이다.
이들에게 한국 내 한국지엠 생산 공장의 지금 상황은 수익을 악화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될 뿐이다. 그나마 자동차 출신인 메리 바라 회장이 한국지엠의 생산 유지를 위해 이들을 설득하려면 노조의 대승적 판단이 전제 조건이다. 전면 폐쇄 결정은 메리 바라 회장이 하는 게 아니라 이사회 투표로 결정되니 말이다. 결국 한국지엠 노조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명분을 조금 내주더라도 실리를 챙기는 일이다. 추가 대책은 그 이후 마련해도 늦지 않으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