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주 기자 / 사진 bnt포토그래퍼 윤호준] 김민규에게 연기는 퍼즐 맞추기다.
“연기할 때 어떤 역할이든 작은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기본인 것 같아요. 대사 한마디를 할 때 그 대사 안에는 제가 고민한 만큼 담긴다고 생각해요. 작은 역할이라도 최대한 고민을 해보면 분명히 큰 것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 이 생각은 변함없어요.”
2014년 OCN ‘신의 퀴즈 시즌4’로 데뷔하여 드라마 ‘오 나의 비너스’ ‘우리가 계절이라면’ ‘쌈마이웨이’ 등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온 배우 김민규. 작품 속에서 크지 않은 역할이지만 그만의 숨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연기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이 에너지 때문일까. 매년 꾸준히 작품을 해오던 그는 2017년 하반기에 MBC 새 수목드라마 ‘로봇이 아니야’로 또 한 번 배우 김민규의 필모그래피에 한 줄을 추가한다.
Q. 프로필을 보니 연극, 영화, 드라마 모두 다해보셨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어떤 무대가 좋으세요?
원래 영화를 하고 싶어서 연극영화과로 진학했어요. 알고 보니까 연극을 주로 하는 과였지만요.(웃음) 지금도 영화를 꿈꾸고 있지만 연극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연극이 그리워요. 연극은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현 시간대로 흘러가니까 시공간에 대한 직접적인 부분들이 배우한테 잘 전달되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또 연극은 촬영과 편집을 하는 영화나 드라마 보다 더 실수가 용납이 안 되잖아요. 그 점이 배우에게 긴장감을 주죠. 그만큼 배우에게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니까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더 생기고 좋죠.(웃음)
Q. 긴장감을 좋아하시는 편인가 봐요.
즐길 수 있는 내공은 아직 안 되는 것 같아요.(웃음) 긴장감을 좋아하지는 못하지만 그 안에서 비롯되는 설렘이 있잖아요. 그 설렘이 기분을 좋게 해줘요.
Q. 그간 해왔던 역할 중에 인상 깊었던 인물을 꼽아 보자면요?
‘신의 퀴즈 시즌 4’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드라마 데뷔작이었고 역할 자체의 캐릭터가 뚜렷했어요. 마약에 중독된 인물이었기 때문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라 나름 준비를 열심히 했거든요. 그때가 대학교 다닐 때라서 도서관에서 약물 관련된 책들을 섭렵했었죠. 술, 담배도 안 해서 주변 사람들한테 중독이라는 게 뭔지 물어보기도 했고.(웃음) 공부할 맛이 있었죠.
Q. 재밌었던 에피소드도 있었을 것 같아요.
‘신의 퀴즈’때는 아니고 ‘오 마이 비너스’ 할 때요.(웃음) 극중 제가 신민아 선배님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역할이었는데 실제로 너무 좋아서 연기를 못하겠더라고요. 정말 예쁘셔서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하는데 떨림과 긴장을 숨길 수 없었어요. 실수도 많이 했어요.(웃음) 그랬더니 신민아 선배님이 긴장도 많이 풀어주시고 소프트하게 대해주시더라고요. 재밌었다는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이라 하는 게 맞는 표현 같아요.
Q. 배우 김민규 만의 특별한 버릇이 있나요?
담백하게 가도 되는 것들인데 그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해요. 예를 들면 ‘밥 먹었어?’하는 간단한 대사를 어떻게 하면 재밌게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습관적으로 해요. 이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버릇이라 쉽게 안 없어지네요.(웃음)
Q. 연기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예전에는 주관적인 감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시나리오나 대본에 있는 텍스트라고 생각해요. 글 안에 연기의 핵심이 있어요. 그 흐름을 파악하고 정확히 이해만 한다면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연기에 있어서 그 안에 중요한 게 다 있기 때문에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감성은 그 뒤에 추가되는 부분이죠.
Q. 작품 속 캐릭터를 구축할 때 어떻게 만들어가나요?
인물을 창조한다기보다 먼저 제 자신 속에서 시발점을 찾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감정들과 생각들을 퍼즐 맞추기 식으로 맞추는 거죠. 전적으로 제가 다른 인물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시발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 안에서 시작된 퍼즐들이 맞춰지면 저의 또 다른 모습정도가 되겠죠? 그게 캐릭터로 보여 진다면 참 좋고요. 그게 미흡하다면 제가 더 많은 퍼즐들을 만들어야 될 것 같고요. 많은 퍼즐 조각들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웃음)
Q. 퍼즐 맞추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번 드라마 ‘로봇이 아니야’에서 맡은 싼입이는 어떤가요?
싼입이는 극중 로봇 공학 박사인 엄기준 선배님이 이끄는 로봇 연구소의 해외파 수석 연구원이에요. 저와는 되게 다른 인물이죠.(웃음) 오디션을 통해서 싼입이 역할을 맡게 된 후 첫 대본 리딩 현장은 겁도 나고 무서웠어요. 근데 엄기준 선배님이 잘 이끌어주셔서 편하게 할 수 있었죠. 정말 즐거웠던 리딩 현장이었는데 그 뒤 뒷풀이 현장은 더 좋았어요. 서동원 선배님이 분위기 메이커셨죠. 좋은 선배님들 덕분에 편하고 너무 즐거웠어요.(웃음)
Q. 오디션 경쟁률이 대단했을 것 같아요.
적진 않았어요.(웃음) 싼입이 역할로 최종합격이 된 배우가 총 4명 있었어요. 저 빼고 다 잘생겼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근데 왜 날 뽑았을까 의문이 들어 감독님께 여쭤보니 오디션 볼 때 저를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보면 볼수록 잘생겨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드셨대요. 매력이 있을 것 같다나.(웃음) 너무 낯부끄러웠어요. 제가 캐스팅 된걸 보고 카메라 감독님이 ‘네가 딱 싼입이야’ 하시면서 엄청 웃으시더라고요. 역할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렇게 봐주시니까 너무 감사했죠.
Q. 배우가 꿈이셨나요?
원래는 꿈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입시를 준비해야 해서 영화를 좋아하니까 별생각 없이 좋아하는 영화 대사를 외워서 서울예대랑 경성대를 지원했어요.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죠. 그때 면접관분들이 신기해하셨을 것 같아요. 연극영화학과를 준비했다는 수험생이 연극대사는 하나도 없이 영화대사 독백만 하니까. 그래서인지 서울예대 면접 때 교수님 5분이 계셨는데 전부다 빵빵 터지시는 거예요. 면접이 끝난 뒤 재학생들이 제 얼굴을 보러 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죠. 그날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합격 발표하는 날 자신 있게 확인을 했는데 떨어졌더라고요.(웃음) 다행히 경성대는 합격해서 그때부터 진지하게 연기에 대해 공부했죠.
Q. 배우라는 직업이 짜릿하고 즐거운 순간도 있겠지만 다운되고 우울해질 때도 있잖아요.
그럼요. 제가 아직은 단역이라서 편집이 많이 돼요. 하지만 단 몇 초 나오는 것도 가족들한테는 크죠. 촬영한 작품이 있으면 꼭 가족들과 모여서 다 같이 보는데 분명 촬영을 했는데 하나도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가족들은 괜찮다고 말을 하지만 저는 마음이 아프죠. 더 열심히 해서 편집되지 않게 하고 싶어요.
Q. 앞으로 함께 호흡해보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요?
송강호 선배님과 너무 하고 싶어요. 정말 영광스러울 것 같아요. 또 대학교 선배님이신 조진웅 선배님과도 꼭 해보고 싶어요. 동문으로 만나면 그만큼 의미가 있을 것 같거든요. 조재현 선배님과 (김)정태 선배님은 가끔 사적으로 뵈는데 조진웅 선배님은 제가 더 바빠져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Q.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궁금해요.
건강한 정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몸은 늙어가겠지만 정신은 계속 건강한 상태로 유지됐으면 정말 좋겠어요.(웃음)
느린 정서를 좋아하고 자신의 촌스러움을 애정 하는 배우 김민규. 그에게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더니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격 없이 웃을 때 그 순간의 매초가 너무 좋아요. 그런 시간들이 저한테는 소중하고 너무 큰 행복인 것 같아요”라고 소소하지만 소소하지 않은 답변을 안겼다.
천천히, 조급해 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지키며 배우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김민규. 아직은 쓸쓸한 길일지라도 머지않아 많은 사랑이 쏟아지는 길이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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