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인성이 참된 사람이 되고 싶다”
2017년 4월 개봉작 영화 ‘시간위의 집(감독 임대웅)’에서 미희(김윤진)는 후두암 판정을 받고 병보석으로 풀려난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그 집으로 돌아온다. 사건이란 미희가 남편과 아들 부자(父子)를 살해한 25년 전 일로, 그는 문 앞을 지키는 두 의경에 의해 운신의 폭을 제한받게 된다.
임형사(백도빈)는 “형이 끝날 때까지 저희 의경이 있을 거예요”라며, “똑바로 잘 봐”라고 의경에게 미희의 감시를 강조한다. 주인공은 미희다. 그러나 그와 세상을 단절시키는 역할은 의경이다. 이 가운데 배우 연제형은 선임의경 역을 맡아 미희를 세상과 괴리시켰다.
“최대한 선배님들 연기하시는 데 조화롭게 스며들기 위해 노력했다. 나로서, 나만의 의경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편안하게 나를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이어 그는 스크린에서는 ‘시간위의 집’이 첫 작품이었다며, “촬영 때가 겨울이었다. 입이 얼고, 긴장도 많이 했다. 실수도 많았다. 그런데 옥택연 선배님께서 괜찮다고, 천천히 원래 준비한 대로 하면 된다고 하셨다. 너무 긴장된 나머지 머릿속이 하얘졌는데 덕분에 감사했다. 김윤진 선배님은 멋진 카리스마를 뽐내셨다”라고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분명 의경 역은 영화의 작은 역할일 테다. 팝콘을 먹기 위해 잠시 집중을 흐트린다면 존재를 잊을 수도 있는 아주 기능적인. 돌이켜 보면 신인이 연기하는 역할 대부분이 그렇다. 사소하고 또 무미(無味)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중 아닌 의미(意味)의 부여다. 앞서 소개했듯 의경은 미희를 집에 가둔다. 또, 영화의 막바지 비밀을 안고 떠나는 최신부(옥택연)와 아이의 길을 막아서며 문지기 기능을 재현한다. 관객은 미희의 범인 여부를 아는 상황. 차단으로써 엄마의 모성애를 확인시킨 연제형을 bnt뉴스가 만났다.
자신의 소개를 부탁했다. 배역에 의미 부여는 가능할지언정 대중에게 아직 그는 낯선 배우기 때문이다. “아직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는 친숙치 않은 얼굴이다. 생소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빨리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가능성과 끼가 궁금했다. 먼저 그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만큼 다양한 작품이나 역할로 찾아뵐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생소함을 가능성으로 꼽은 뒤, 상처 안 받는 무딘 성격을 끼라고 소개했다. “상처를 잘 안 받는다. 어떤 일을 하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것처럼 어떻게든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끼라고 생각한다.”
연제형은 키가 크다. 프로필에 소개된 키는 186cm. 게다가 목소리는 여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일명 ‘동굴 목소리’다. 동굴 안에서 소리를 내면 그것이 중첩되어 귀를 울리는 것처럼 요즘 대중은 저음의 목소리를 지닌 배우에게 이 같은 호칭을 붙인다.
목소리를 칭찬하니 감사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큰 키가 가지는 장단점을 물으니 예상대로 눈에 잘 띈다는 장점을 먼저 예로 들었다. “일단 키가 크니까 남들한테 주목 받기 쉽다.” 단점은 상대 배우와의 호흡 그리고 시대극과의 부조화라고. 70, 80년대의 186cm의 장신이라.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연제형은 “공부만 계속 하다가 동아리 신청란이 눈에 보였다. 하나씩은 꼭 해야 되는데 연극부가 보이더라. 뭔가 연극부? 한번 해보고 싶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신청을 했다”라며, “연극부 안에서 연극을 한두 편 올리고 나니까 연기가 재밌었다”라고 배우 연제형의 태동을 기억했다. ‘한번 입시까지 가보자!’라는 생각에 대학교 입시도 준비했다고.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정리하는 그에게 다음을 질문했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연예계 진출을 생각하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사실 외모와 끼가 갖춰졌다고 모두 스타를 희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가 그렇지 않은가. 방송국 마저도 10대의 데뷔를 종용하는 세상이다. “미술도 했고, 태권도도 했다. 이것저것 해봤는데 흥미를 못 느꼈다. 갈팡질팡했다. 그러다가 딱 연기를 만났다.”
청주대학교 영화학과에 재학중인 그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단편 영화 작업도 했단다. “학과 수업상 모든 스태프 일을 다 해야 된다. 연출로도 저번 학기 때 영화도 한 편 찍었다.” 어떤 영화인지 묻자 장르가 블랙 코미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출 전공인 학생이 주인공인 영화다. 졸업 작품을 찍어야 하는 상황에서 연기 전공자 세 명중 누구를 캐스팅할지 다루는. 술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한번 재밌게 꾸며봤다.” 또한, 그는 “시나리오부터 앵글까지 다 생각해서 내가 찍었다”라고 강조했다.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그는 학점으로 대답할지 고민하며 기자를 포함한 주위의 모두를 박장대소하게 만든 뒤, “‘B+’는 받았다. 연기 전공으로 어느 정도 괜찮지 않았나 싶다. 친구들은 그저 웃기다고 평가하더라. 심도 있는 블랙 코미디인데, 다들 코미디만 집중했다.”
신인을 종이에 비유하자면 백지다. 그리고 그 위에 무언가를 그려내는 것은 철저히 본인 몫이지만, 그의 손에 어떤 색의 펜을 쥐게하는 일은 주위의 영향이 크다. 이 가운데 연제형이 속한 다인엔터테인먼트에는 상황에 맞는 펜을 쥐게 할 선배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배우 유선, 이종혁, 이원종 등. 타 배우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기력과 인지도를 동시에 갖춘 배우들이다. “이종혁 선배님께서 단합 대회 때나 공연 끝나고 뒤풀이 때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다른 선배님들도 어떤 연기를 하는 것보다 진짜 배우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지 많이 말씀해주셨다.”
이종혁과 제일 친한지 묻자 그는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배우의 이름을 한 명 언급했다. 박경혜. tvN ‘도깨비’에서 주인공 지은탁(김고은)을 따라다니는 처녀귀신 역을 맡아 인기를 모았던 배우다. “경혜 누나가 연기로써 자극을 많이 준다. 저번에 단편 영화도 하나 같이 찍었다.” 더불어 그는 박경혜와 많은 연기 연습을 했다며, 뽐낼 장소가 없다고 한탄했다. “한번 경혜 누나랑 정말 재밌게 연기해보고 싶다.”
앞서 가능성과 끼를 물었으니 이번에는 강점을 질문했다.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신감이 어떤 상황에서 발휘되는지 캐묻자 연기를 자신감 있게 하면 못하더라도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그때만큼은 자신감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신감은 연제형에게 칭찬이라는 두 글자를 안기기도 했단다. 그는 “내 자랑을 내가 해도 될까 모르겠다”라는 말로 또 한번 모두를 웃게 만든 후, “어떻게 카메라가 안 무서울 수 있는지 감독님께서 여쭤보셨다. 배우로서는 정말 좋은 점이라고 하시더라.”
배우는 그저 다른 직종과 겸업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되는 세상. 만능 엔터테이너가 만연할 수록 배우의 전문성은 수직 하락한다. 그래서 연출도 경험한 연제형과의 인터뷰에는 호기심이 샘솟았다. 궁금했다. 최근 재밌게 관람했던 영화가 무엇인지. 영화학과 출신답게 영화를 즐기는 요소도 남다를 것 같았다.
그는 “영화 ‘박열’?”이라며 끝 음을 한껏 치켜 올린 뒤, “일단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에서 심장이 막 뛰더라”라는 말과 함께 가슴을 움켜쥐었다. “부글부글거리더라.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힘들 수 있는데, 좋았다.” 이에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을 질문했다. 기계 같은 답 아닌 장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아직 연기 경험이 많이 없어서 그럴까.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고 할 수 있는 인상적인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롤 모델은 배우 스티븐 연이란다. 그는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옥자’에서 케이 역을, 미국 AMC ‘워킹 데드’ 시리즈에서는 글렌 리를 연기했다. “연기를 섹시하게 잘하신다. 단편 같은 것도 있고 가끔 SNS에 올라오는 초(超) 단편도 있는데, 모든 역할을 맛깔나게 잘 소화하신다. 그런 면을 닮고 싶다.” 수줍음일까, 자신감일까. 미소 속에 연제형은 이상향을 그려냈다.
인터뷰 중간 연제형에게 장소를 연기 현장으로 한정 짓고, 그의 두 눈에 담긴 타인의 행동 중 무엇을 닮고 싶었는지 질문했다. “이번에 영화 ‘기억의 밤’을 촬영하면서 연기도 중요하지만 배우는 인성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기자가 “설마 강하늘 씨?”라고 입을 열자 연제형은 “설명이 다 끝났다”라며 웃은 후, “정말 지치고 힘드실 텐데 주변 스태프 분들 모두를 다 챙기시더라. 항상 밝은 얼굴로 대해주시니 너무 감사했다”라고 부연했다.
또한, 그는 “인성이 참된 사람이 되고 싶다”라며, “인성 좋은 사람이라고 모두가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성 좋은 배우가 그렇게 인정 받는 모습을 보고,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 모두가 행복했기에 인성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라고 연제형이 추구하는 목표를 설명했다.
강하늘에서 비롯된 연제형의 인성 예찬은 선배 배우에게 감화된 후배 배우의 매료 섞인 발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배우가 말하길 인성은 연기만큼 중요한 배우의 요소라고. 또한, 인성이 덜 된 배우는 단시간에 성공할 수 있더라도, 장시간 흥행할 수는 없다는 말도 함께 들리곤 한다.
사람에게는 청개구리 속성이 있다. 누군가 옆에서 아무리 깊은 조언을 해주더라도 한 귀로 들은 것을 다른 한 귀로 흘리는. 그러나 연제형은 누군가 일러주기 전에 그것을 스스로 깨우쳤다. 좋은 스승 덕분일까. 아니다. 그의 말마따나 “인상적인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연제형을 자연스럽게 일깨줘준 것일 테다. 또 다른 ‘미담 제조기’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사진: bnt포토그래퍼 송다연 / 리터처 유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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