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주 기자] 막힘없었다.
영화 ‘회사원’(2012) ‘영화는 영화다’(2008)를 비롯해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유령’(2012)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여온 소지섭. 작품 속에서 그는 냉철하고 강압적이며 자상함을 찾아보기 힘든, 조금은 무서운 인물이었다. 이번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함도’에서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지고는 못 참는 성격의 종로 깡패 최칠성 역을 맡은 소지섭. 그간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바 있는 소지섭은 최칠성과의 거리가 꽤 가까워 보였다.
“제가 칠성이처럼 의리는 좀 있는 것 같아요.(웃음) 무게감도 있고. 욕하고 때리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죠. (최칠성을 연기하면서) 새로운 제 모습을 본 것 같아서 좋았어요. 전작들에서는 (감정을) 억누르고 얼음같이 차가운 역할이었는데 칠성이는 감정에 충실하고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호랑이같은 남자잖아요. 속 시원하게 연기했어요.”
영화 속 최칠성은 첫 장면에서부터 강하다. 눈빛부터 툭툭 내뱉는 욕설에 거칠게 주먹이 앞서는 모습까지. 돌이켜보면 소지섭이 나오는 작품 속 액션이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특별히 액션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액션을 선호하지 않고 죽는 것도 선호하지 않아요”라며, “저한테 들어오는 시나리오들마다 역경이 많고, 로맨틱 코미디라 하는데 죽기도 하고 그러네요.(웃음) 저를 괴롭히고 싶나? 그게 맛인가 봐요”라고 재치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그는 영화 속 목욕탕에서 펼치는 액션장면을 꼽으며 “칠성이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군함도의 첫 액션이기도 해서 가장 좋아하는 신”이라고 한다. 강도 높은 액션 때문에 고됐던 순간이 당연히 있을 법했다.
“육체적으로는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들었죠. 액션연기보다 많은 국민들이 아는 군함도가 부담스러웠어요. 역사와 상업영화 그 사이에서 오는 부담감과 무게감이 있었죠. 아마 감독님이 제일 힘들었을 거예요. 어쨌든 상업영화다 보니까 그 두 가지를 접목시켜야 하는 점이 어렵죠.”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군함도’의 현장. 영화를 봐서인지 말만으로도 그때의 촬영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소지섭은 다행히도 함께 출연한 황정민이 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줘서 모두가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요. 스태프들도 챙기고 배우들도 챙기고 연기 연습도 정말 많이 하시고. 인정받는 분이 이렇게 열심히 하시니까 정말 대단하시죠.”
소지섭도 대단하다. 랩, 영화투자, 외화 수입 등 본업인 연기 외에도 하고 있는 일들이 참 많으니말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것만 하라하면 숨 막혀 죽을 것 같아요.(웃음) 연기 외의 활동들은 제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 에너지로 연기도 할 수 있고. 또 스트레스를 받는 게 있다면 운동으로 그 때 그 때 풀어요”라고 밝혔다.
처음 소지섭이 랩을 한다고 했을 때 팬들까지도 말릴 정도로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 랩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하고 싶은 일이니까, 재밌으니까.”
더불어 소지섭은 사랑 노래들에 대해서 “다 제 이야기예요. 거짓은 없어요”라 말한다. 유독 슬픈 사랑 노래들이 많은데 지난 연애에 슬픔이 많아서 일까? 이 물음에 소지섭은 “끝난 사랑들은 다 슬플 수밖에 없으니까”라고 답한다. 연애할 때 나쁜 남자인 편인지 궁금했다.
“나쁜 남자인 것 같아요. 전 연애할 때 질질 끌거나 아닌 것 같은데 멀리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런 느낌을 받으면 칼같이 자르는 편이라 여자 입장에서는 나쁜 남자일 수밖에 없죠.”
이어 공개연애에 대해서는 “상대방에 따라 다르겠지만 될 수 있으면 안했으면 좋겠어요. 남자는 그나마 괜찮은데 여자한테는 평생 꼬리표가 붙을 것 같아서.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근데 피해를 주면 절대 안 되니까 신중하고 싶어요. 결혼도 마음이 완전히 섰을 때 하고 싶어요”라며 소신을 전했다.
어느덧 데뷔 20년차가 넘어 40대에 접어든 소지섭. 과거 30대였던 그는 40대가 된 자신의 모습이 굉장히 기대가 된다고 했었다.
“40대라 해서 특별히 변하거나 좋은 건 없는 것 같아요. 50대가 기대돼요.(웃음)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살날이 줄어들고 있다는 게 행복해요. 젊을 때로 돌아가기 너무 싫거든요. 힘들었던 곳에서 다시 살아야하니까. 돌아간다 해도 세상이 바뀌고 내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장수하고 싶지는 않아요. 행복하게 적당히 살고 싶어요.”
나이 드는 것이 좋다는 소지섭. 그런 그에게 나이를 잘 먹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돈벌이로만 연기에 접근하는 건 싫어요. 그렇게 된다면 연기를 안 할 것 같고요. 배우로서 창피한 건 싫어서 그것에 대한 대비는 개인적으로 하고 있어요.”
아울러 소지섭은 자신의 경쟁력에 대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 그리고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 것. 안주하지 않고 위험한 시도를 하는 것에서 재미와 살아있음을 느껴요. 지금은 뭘 하고 싶은지 찾는 중이에요. 그 생각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으니까”라고 밝혔다.
안전하고 행복하다면 짐을 짊어서라도 ‘힘듦’을 만드는 소지섭. 이에 그는 “내려놓을 때도 됐는데 이건 아마 평생 안 될 것”같다고 말한다. 이런 그에게 최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골프가기 전에 설레요.(웃음) 재밌더라고요. 그곳에 가면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요.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럴 때 행복하죠.”
그동안의 소지섭 인생을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그만의 깊은 고독함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소지섭의 무게감이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대화를 하다보면 정적이 흐르기 마련이잖아요. 그게 이상한 건 아니니까. 저에게 정적은 너무 익숙하거든요. 혼자 있을 땐 한 마디도 안 할 때가 많아요. 외로운 건 지나간 지 이미 오래죠.”(사진제공: 피프티원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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