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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빠는 딸’ 정소민이 꿰뚫은 진짜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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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사람과 배우의 성장은 서로 맞물리는 과정”

정소민(28)의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훑어보면 시쳇말인 ‘열일한다’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지난 2010년 SBS ‘나쁜남자’로 데뷔했던 그는 KBS2 ‘아버지가 이상해’까지 약 열네 편의 작품들에 출연하며 정소민 석 자를 대중의 뇌리에 주지시켰다. 게다가 그는 공백으로 채워진 2011년을 제외하면 매해마다 하나 이상의 작품을 소화하는 꾸준함마저 갖춘 배우다. ’마음의 소리’ 최애봉 역으로 비롯된 대중의 재발견은 우연이나 운이 아니었다.

더불어 정소민의 출연작들 중 눈에 띄는 것은 함께 호흡했던 동료 배우들의 면면이다.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디데이’, 영화 ‘스물’ ‘앨리스: 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의 공통점은 정소민의 미모가 열일한다는 것 외에도 각각 성준, 김영광, 김우빈, 홍종현이라는 모델 출신 배우들이 극중 상대 역을 맡았다는 것. 물론 본인이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을 테지만, 이에 관해 정소민은 “모델 어벤져스라고 불리더라”고 이야기의 운을 뗐다.

“(이)수혁 씨 빼고 모델 어벤져스의 네 분과 함께 공연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다 상대 역으로. 어떤 해외 팬은 나와 수혁 씨 사진을 나란히 두고 ‘넥스트 타겟’이라는 문구까지 적어 넣었더라. (웃음) 그들끼리도 모두 친구고, 나도 다 같이 작품을 했으니까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는 사이다. 우리 다섯 명이 다 나오는 작품이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는 많이 했지만, 모두가 이제는 과거보다 성장했기에 이뤄지긴 힘들 것 같다.”

“모델 친구들만 친한 것이 아니다. 또래 동료들만큼 친한 선배님들이 주위에 정말 많다. 김의성 선배님과도 메신저 친구고, 이경영 선배님과도 ‘디데이’로 인연이 닿았다. 김상호 선배님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모델 출신 배우들과 협연할 때는 나이대가 비슷한 것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고, 선배님들과 함께 할 때는 또 다른 편안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촬영하는 동안 그분들의 듬직함과 의지할 수 있는 부분이 주는 안정감에 기댈 때가 있다.”

선배와 후배의 구분은 어느 업계든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더불어 개인마다 온도 차이가 있겠지만, 선배는 후배에게 어려운 위치다. 공통된 일을 추구하지만 자신보다 아는 것이 많은 이를 대하는 데서 오는 존중, 경외, 불편, 조심은 후배를 움츠리게 만든다. 하지만 정소민은 달랐다. 서로 연기를 시작하는 입장의 동료들만큼이나 이미 먼발치에 서있는 선배들도 아우르는 그에게서 특별함이 전해졌다.

그리고 여기 선배들과의 연기 속에서 안정과 여유를 느낀다는 정소민이 선택한 약 2년 만의 스크린 신작이 대중 곁을 찾아왔다. 영화 ‘아빠는 딸(감독 김형협)’이다. 아빠와 딸의 몸이 바뀌면서 서로의 사생활은 물론 마음까지 엿보게 되는 이번 영화에서 정소민 17세 여고생 딸 원도연 역을 맡았다. 또한, 그는 47세 만년 과장 원상태를 연기하는 윤제문과 부녀(父女) 앙상블을 이뤘다. 부녀의 전복은 기저의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전복시킨다.

“(윤제문) 선배님은 원도연의 목소리 톤이나 뉘앙스를 위해서 대본 리딩을 녹음하셨다고 들었다. 더불어 선배님은 여고생이 할 법한 행동들을 여쭤보셨던 경우가 많았는데, 예를 들어 몸이 바뀐 상태에서 아빠가 학교 킹카와의 데이트를 선점하는 장면이 있다. 선배님이 그때 뭔가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래서 여러 가지 안을 드렸고, 그중 결정하셨던 것이 영화에도 나온 ‘뺏겼어, 힝’이었다. 사실 나는 일상에서 그런 표현 잘 안 쓴다. (웃음)”


47세의 외관과 17세의 내면을 가진 딸 원도연의 연기를 위한 23년 차 배우 윤제문의 결정은 리딩 청취와 부지런한 주변 의견 수렴이었다. 그렇다면 여고생의 외모와 아저씨의 영혼을 지닌 아빠 원상태의 공연을 위해 8년 차 배우 정소민이 택했던 방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제작보고회 및 언론시사회에서 정소민은 대중이 떠올리는 아빠의 외적인 면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 요소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연기 접근법을 밝혔던 바 있다.

“처음에는 아빠 원상태가 가지고 있을 외적인 면에 집중했다. 원상태처럼 두 따님의 아버지인 (윤)제문 선배님을 많이 관찰했고, 말투나 행동이나 걸음걸이 등을 카피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고민이 들더라. ‘자칫 잘못하면 아저씨를 흉내 내는 것 밖에 안 되겠구나.’ 내가 아무리 아저씨를 연기한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잘해야 보이시(Boyish)로만 보일까봐 걱정됐다. 내가 채워야 하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느 딸의 아빠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또 직장에서는 애환 있는 만년 과장으로서 40대의 남성이 느끼는 것들. 그 고민들과 생각들이 지니고 있는 무게를 채우지 않으면 단순히 흉내로 그칠 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팔자걸음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중요했지만, 포커스를 아빠의 마음에 맞췄다.”

아마 연기 고민은 배우라면 누구나 하는 것일 테다. 그것이 발전된 결과로서 관객에게 닿을지 여부는 배우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이 가운데 정소민은 막연할 수 있는 숙제에서 만점을 받은 듯 보인다. 연기 경력이 약 20년에 수렴하는 대선배와의 공연에서 그는 세간에 회자될 만큼의 연기력을 보여줬다. 또한, 김형협 감독은 배우 정소민에 대해 “열정적이고 영리한 배우”라는 말을 써가며 그를 칭찬했다. 배우가 연출가에게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촬영 전부터 감독님을 귀찮게 했던 탓에 그런 칭찬을 말씀하셨던 것 같다. 여자의 몸으로 중년 남성을 연기하는 것에 있어서 참고할 것을 많이 찾아봤고, 고민이 생길 때는 늘 감독님에게 연락해서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참 자주 감독님을 귀찮게 했다. (웃음) 특히, 촬영할 때 많은 대화를 나눴던 것이 기억난다. 그간 소통이 불가능한 현장도 많았는데, ‘아빠는 딸’은 배우와 감독 간의 소통이 원활했다.”


그는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아마 그런 노력이 정소민을 타인의 눈에 열정적인 배우로 기억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개인의 진가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이 경우를 보더라도 언제나 소통은 중요 가치로 작용한다. 그리고 마침 ‘아빠는 딸’ 역시 부녀 간의 소통을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질풍노도 사춘기 딸과 가정에 목마른 중년 아빠의 갈등. 여고생 정소민도 아버지와의 갈등을 겪었을까. 그는 “나는 도연이랑 비슷한 부류의 딸이었다”며 운을 뗐다.

“대부분의 딸들이 사춘기 때 아버지를 어려워한다. 원도연이라는 캐릭터는 (아버지가) 어려운 것을 넘어서 싫은 지경에 다가간 상황인데, 저 역시 그 나이 대에는 아빠가 마냥 어렵고 불편했기에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저는 대학교 때까지 그런 상태였지만, 과연 도연이와 아빠와의 관계는 영화가 끝나고 어느 방향으로 갈지 미래가 궁금해지더라. (지금은) 저는 아빠랑 친하게 지내고 있다. 아빠가 많이 유해지셨고, 나 역시 이해 폭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부모님이 이런 말씀도 하셨다. ‘네 동생은 자잘하게 사고를 치는데, 너는 크게 한 번씩 뒤통수를 친다.’ 나는 학교 다닐 때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편이었다. 화장 금지, 교복 수선 금지. 이런 것들은 단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었고, 반면에 동생은 다 하고 다녔다. 하지만 나는 크게 어기는 편이었다. 공부하다가 무용하고 싶다고 말하고, 연기하고 싶다고 욕심내고. 그러니까 부모님이 뒤통수 그만 때리라고 말씀하시더라. (웃음)”

과거 인터뷰에서 “작품에 들어가면 이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꼭 생각한다”고 말했던 정소민. 마지막으로 그는 ‘아빠는 딸’을 촬영하면서 많은 것들을 얻었다고 밝혀 어떤 점들이 배우를 한 단계 더 도약하도록 도왔는지 이목을 집중시켰고, 말의 끝에는 아버지와의 오붓한 영화 데이트를 언급했다. 아마 이번 영화를 통해 낯섦, 어색, 반목이 화해, 사랑, 믿음으로 거듭났던 부녀 커플은 원상태-원도연뿐만이 아닌 듯 보였다.

“사실 되게 많다. 일단 언제 또 남자 역할을 해보겠으며, 아저씨 역할을 해보겠으며, 아빠 역할을 해보겠는가. 이것만 봐도 얻은 게 많았다. 원도연 몸 안에 들어온 원상태는 정말 익스트림 캐릭터였다. 그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감사한 시간이었다. 실제 아빠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아빠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서 실제적인 변화가 생기더라. 그게 차곡차곡 쌓이면서 최근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같이 극장에서 단 둘이 영화 ‘재심’을 봤다. 그게 강하늘 씨 나오는 영화인데, 그래서 인증샷을 하늘이한테 보냈다. ‘너 덕분에 아빠랑 영화 봤다. (아빠랑 같이 보는) 첫 영화가 네 영화가 될 줄이야’라고. 이게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변화인데, 참 좋았다. 이런 경험이 없었으면 나중에 후회했을 것이다. (아빠랑) 같이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정소민과의 인터뷰 중 뇌리에 남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연기에 도움되는 동료를 묻는 질문에 그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며, “배우 정소민뿐 아니라 사람 정소민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 어느 순간 머릿속을 스쳤던 깨달음인데, 사람으로서 커가는 것과 배우로서 성장하는 것은 서로 맞물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고 답해 기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연기는 허구다. 배우는 가상의 이야기 속에 가상의 인물로서 가상의 대화를 내뱉는다. 그 어디에도 실재(實在)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연기에는 현실이 포함되어야 한다. 과거 한석규는 “우리들이 하는 일은 가짜를 통해서 진짜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라며 연기 속 현실성의 가치를 강조했던 바 있다. 정소민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배우의 성장을 동일선 위에 두는 것은 아마 거짓 속 진짜의 가치를 그는 이미 꿰뚫었기 때문이리라.

‘아빠는 딸’은 그가 의식하고 있을 혹은 무의식 중의 가치가 고스란히 녹아든 영화다. 신령한 은행나무의 힘으로 아빠와 딸의 몸이 뒤바뀌다니 이보다 더 허구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이 허구성은 그 어떤 실제 갈등보다 더 실제처럼 관객들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고, 대중이 딛고 있는 현실을 돌이켜보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코미디 영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배우 정소민과 ‘아빠는 딸’의 컬래버레이션은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한편 영화 ‘아빠는 딸’은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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