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연도 기자] 단아한 이미지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넬라판타지아'를 부르며 감동을 선사하던 가수 배다해.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렇게 화끈하고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실제로 만난 그는 활기찬 개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원스러운 말투와 기분 좋은 웃음소리로 촬영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10년 클래식 전공자들이 뭉친 그룹 바닐라루시로 데뷔해서 KBS2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에 출연해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그. 그렇게 술술 풀릴 줄만 연예계 활동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고 5년이라는 긴 슬럼프를 겪으며 힘겨운 아픔을 견뎌야만 했다.
얼마 전 그토록 간절했던 공중파 무대에 다시 서게 되어 기쁘다고 말하던 그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한껏 묻어났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 어디 있으랴. 어느덧 데뷔 7년 차. 내실을 쌓아오며 만개를 앞둔 배다해를 만났다.
Q. bnt 화보 촬영 소감
일단 옷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콘셉트들로는 찍어본 적이 없는데 숨겨둔 끼를 마음껏 발산하다 못해 너무 과하진 않았나 걱정이 된다(웃음). 잘 조절해서 작가님이 예쁘게 작업해주실거라 믿는다(웃음).
Q. 가장 마음에 들었던 콘셉트
두 번째 콘셉트. 다른 촬영들도 색다르고 좋았지만 내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방송에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클래식한 음악을 해야 하다 보니 얌전하고 차분한 의상을 많이 입어왔는데 오늘 촬영은 새로운 모습을 담을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다(웃음).
Q. 연세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음악은 6살 때부터 피아노 해왔고 그쪽으로 전공하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동요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고 덜컥 1등을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지켜보더니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성악 레슨을 시켜줬다.
Q.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집에서는 얌전한 딸이었는데 학교에서는 리더십이 많아 초등학교 때 한 해를 제외하곤 늘 반장을 해왔다. 호기심도 많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 레슨을 해왔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학교에 데려다주고 끝나면 레슨 가고 다시 집까지 태워오는 생활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탈선을 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 그냥 학창시절엔 열심히 음악을 했던 것 같다.
Q. 한때 팝페라를 한 적도 있다던데
대학교 때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포기하는 상황이 왔었고 성악을 그만두려고 했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성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가요를 너무 좋아했었다. 원래 내 마음속 꿈은 가수였고 학창시절 축제 때도 늘 춤과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유학을 결정짓는 과정에서 조금 더 대중적인 음악을 시도해보겠다고 마음먹었고 대중가요는 늦은 것 같아 팝페라를 하게 됐다.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리톤 김돈규 선생님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앨범을 할 때 뒤에서 합창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분이 팝페라에 도전해보지 않겠다고 제안을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팝페라 시장이 아직까지는 작아서 1년 정도 준비하다가 회사가 망하게 되면서 나도 활동을 접게 되었다.
Q. 유학을 가야만 성악 활동을 할 수 있는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70~80%는 유학을 다녀와야 활동할 수 있는 장이 많다. 한국에서도 합창단 같은 것을 할 수도 있었지만 유학 가서 제대로 솔리스트 활동을 할 것이 아니라면 그냥 다른 길을 선택하겠다고 내 스스로가 마음을 먹은 것이다. 꼭 부모님의 지원이 없어도 유학 가는 친구들이 많지만 그렇게까지 감수하고 싶은 마음은 안들더라. 만약 큰일을 감수할 것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겪어내고 싶었다.
Q. 성악을 하다가 가요를 하면서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마음은 가득 차있었지만 이미 12살 때부터 성악에 길들여져 있어 목소리를 바꾸는 게 쉽지 않더라. 클래식을 너무 오래 했다 보니 발성적인 부분에서 많이 힘들었고 아직도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다. 지금은 성악적인 요소를 나만의 장점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전엔 어떻게든 성악을 버리고 싶었다. 심지어 데뷔해서도 다른 친구들을 대학 전공 이야기도 자유롭게 말했지만 나는 연세대 성악과에 나왔다는 말을 꺼내 본 적이 없었다.
Q. 그룹 바닐라루시 활동과 탈퇴 과정
팝페라를 그만두고 나서 20대 중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대형 기획사 아이돌 오디션을 많이 보러 다녔다. 그때 합격해서 연습생 생활을 했던 회사도 있었고 그룹 리드보컬을 하자는 제안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더라. 그들의 열정과 내가 생각하는 열정의 크기도 달랐고 아이돌이라는 문화에 익숙하지 못 했던 부분이 큰 이유였다.
바닐라루시는 사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행사 위주의 그룹이었다. 남들에게 연습생 시절이 있다면 우리에겐 재래시장 한복판 무대에 섰던 특별한 경험이 있었고 심지어 멤버 모두 크리스천인데 절에 가서 행사를 한 적도 있었다(웃음). 그렇게 행사가 많아지다 보니 우리도 앨범을 내보자 해서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남자의 자격’을 통해 이름을 많이 알리게 되었고 대중들이 원하는 모습과 바닐라루시가 추구하는 음악이 달라서 멤버들과 회사가 상의 끝에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통보를 했다. 멤버들을 위해서도 그 길이 맞겠다고 판단해서 솔로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당시 나는 전혀 혼자서 활동한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고 항상 의지할 수 있었던 멤버들이 없으니까 부담이 컸다.
Q. KBS2 ‘남자의 자격’ 출연 계기
출연 경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텐데 KBS에 공모가 붙었었다. 사실 나는 자세한 내용은 전혀 몰랐고 비 연예인 합창단을 뽑는 줄로만 알았다. 촬영인 줄도 몰랐고 무대 뒤에 서서 합창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엄청난 인기를 얻게 돼 얼떨떨하기도 했고 감사하더라.
그전엔 큰 비전을 가지지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사실 나는 대중음악을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든 숨기고 감추고 싶었던 성악을 통해 이름을 알려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때를 계기로 성악을 나와 떨어트리려고만 하기 보단 함께 끌어안고 잘 접목 시켜서 승화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Q. 가수 데뷔 7년 차. 슬럼프는 없었나
‘남자의 자격’ 출연 이후 거의 5년 동안 계속 슬럼프였다. 연예계가 잠깐 떴다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닌데 그땐 그걸 몰랐고 인기가 계속 유지될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도 서포트를 해줄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서 갑작스럽게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남자의 자격’이 끝난 뒤로 1년 정도가 나에겐 황금 시기였기에 끊임없이 노출하고 활동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 했다. 한 5년 동안 방황을 많이 했고 공중파에도 출연하지 못했었다. 회사도 많이 찾아다녔지만 어떤 회사도 선뜻 함께 해보자고 손을 내밀어주지 못 했다. ‘남자의 자격’ 이후 이미 인기가 식어버린 상태에서 다시 올라가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Q. ‘남자의 자격’에서 함께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선우와는 사이가 어떤가
엄청 친하고 둘도 없는 동생이고 내가 겪었던 일을 계속 선우가 밟아온다(웃음). 연예계에서 누구와 제일 친하냐고 묻는다면 선우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다. 비슷한 길들을 겪어왔기 때문인 것 같다. 같은 시기에 인기를 얻었고 그 뒤 제기하고 싶지만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것들이 비슷해서 공감대가 컸고 서로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의지하며 지낸다. ‘남자의 자격’을 찍을 때도 방송 상에는 경쟁하는 것처럼 비추어졌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Q. ‘복면가왕’에서 김연우와 ‘오페라의 유령’으로 레전드 무대를 만들었다. 한 표차로 떨어져서 아쉽진 않았나
방송을 5년 정도 안 하다가 섭외 전화를 받았을 때 꿈인 줄로만 알았다. 떨어지던 붙던 경쟁해야겠다는 마음은 하나도 없었고 다시 공중파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기쁘게 준비했다. 그동안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나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
그리고 복면가왕 준비하면서 많은 분들이 김연우라는 것을 미리 알았냐고 묻지만 전혀 몰랐다. 라이브로 직접 들었을 때는 TV와는 목소리가 완전히 다르게 들리기 때문에 감을 잡을 수가 없더라. 녹화 들어가기 직전에 알게 되었는데 리허설 하면서 어디서 많이 들었던 목소리더라(웃음).
Q.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고 싶어 새벽 기도까지 했다던데
‘불후의 명곡’은 나에겐 너무 행복한 무대이다. 많은 음악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편곡도 직접 하면서 무대를 만든다는 것이 좋았다. 요즘은 앨범을 낸다 해도 20대 초반의 아이돌이 아니면 자신만의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다. 그런데 ‘불후의 명곡’은 노래 좀 한다고 하는 가수들이 나와서 진심을 담아 노래할 수 있는 곳이지 않은가. 그런 멋진 무대에서 인정받는 가수가 되고 싶어서 연습도 많이 하고 노력을 했다.
Q. ‘불후의 명곡’에서 양희은과 김장훈이 부른 ‘봉우리’를 들으며 눈물을 보였다.
앨범을 5년 만에 준비하면서 너무 기쁘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게 올해 초인데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다. 다시 마음을 먹으면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회사 대표님에게도 도와달라고 적극적으로 말하며 망하더라도 최선을 다해보려고 하고 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이대로 묻혀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많은 상황인데 그런 두려운 마음이 있는 상태에서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내 마음을 위로 받는 기분이었다. 똑같이 누구나 힘들고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더라. TV에는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노래가 끝날 때까지 계속 눈물이 흘렀다.
Q. 이번에 새로 나온다는 앨범에서 작사, 작곡에도 참여한 것인지
긴 시간 동안 쉬면서 작곡, 작사를 많이 했다. 고난과 힘든 시기를 거치다 보니 한스러운 감정들이 잘 묻어난 가사들이 나오더라. 작곡이나 편곡하는 과정에서도 함께 수정하면서 참여를 많이 했다.
Q. KBS 2TV '노래싸움 승부'에서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7:0으로 우승을 했더라
내 인생 방송 무대에 있어서 첫 우승이었다(웃음). 다른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무대이고 행복했다. 인터뷰는 다음주 방송이 나간 후에 나갈테니 말하는 건데 다음 무대에서는 이현과 붙어서 내가 떨어진다. 그 프로그램이 떨어지는 과정이 좀 독특해서 떨어지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Q. 뮤지컬 ′셜록홈즈′에서 루시 존스 역
노래만 할 때보다 연기도 함께 가미해야 하다 보니 어렵기도 했고 제대로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선뜻 함부로 무대에 섰다는 것 자체가 후회스럽고 그 공연을 보러 오신 분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좋은 계기는 되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영광스러운 무대를 선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 노래를 조금 한다는 이유로 너무 큰 자리를 얻게 되었는데 과정을 잘 모르고 시작해 당황스러웠던 만큼 다음 뮤지컬에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하려고 했다.
Q.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에서 감정 소모가 큰 역할을 연기했다. 소감
나는 사실주의자이다. 망상 같은 것을 안 하는 성격이고 심지어 소설책도 잘 못 읽었다. 뮤지컬 연기는 내가 사는 실제 모습과 너무 상반된 모습이다 보니 경험하지 않을 것들을 연기하는 게 힘들더라. 어떻게 하면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을 사실에 가깝게 연기할 수 있을까 고민을 참 많이 했고 최대한 비슷한 감정을 끌어오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 때문인지 남들보다 더 많은 감정 소모와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사벨 역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평 중에 하나가 그 전과는 다른 노선의 이사벨의 모습을 봤다며 정말 새장에 갇혀 있는 사람 같았다는 말이다. 새장에 갇혀 있는 연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가려고 하는 모습으로 표현하지만 나는 갇혀있다면 어느 정도는 수긍하고 익숙해질 것 같더라. 그래서 공연이지만 그 속에서 연극적인 요소를 빼고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줬더니 많은 분들에게 진심 어린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Q. 로이킴과 ‘너를 만나기 위해’라는 곡의 유기견 지원 음반을 냈더라. 계기
사실 그게 한 게임 회사의 광고였는데 내가 활동하고 있는 동물자유연대라는 단체와 함께 손잡고 만든 프로젝트라서 참여하게 되었다. 그 게임을 사람들이 하면 거기서 일어나는 수익의 몇 퍼센트가 유기견들을 위해 지원이 되는 것이다. 로이킴도 워낙 반려견에 관심이 많은데 내가 알기론 ‘슈퍼스타K4’ 우승 상금을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 로이킴은 개구지고 밝고 똑똑한 사람이다. 개그를 해도 굉장히 하이 유머 감각을 가진 친구다(웃음). 그리고 실제로 라이브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을 정도로 음색이 좋더라.
Q. 동물 보호 관련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대학교 때 한 다큐멘터리에서 개고기 관련 내용을 다루는 것을 봤다. 그때 나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는데 너무 잔인한 도살 과정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먹는 음식 이면의 모습엔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끔찍한 과정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개고기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도 이런 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인간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동물 보호 단체에 가입을 해서 정보를 얻고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더 폭을 넓히기 위해 동물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있어서 좀 더 인도적인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 나가고 있다.
Q. 재작년 SBS ‘TV 동물농장’에 나왔던 준팔이의 새주인이 되었는데 입양 과정에서 약간의 오해와 논란이 있었다.
일단 ‘TV 동물농장’에서 나에게 몇 번의 섭외 전화가 왔었다. 공개적으로 보이지 않은 뿐이지 나에겐 동물 입양, 임시보호, 구조들이 나의 삶에 일부분이다. 차 타고 가다가도 중앙선에 동물이 있으면 바로 트렁크 열고 목장갑 끼고 구하러 가곤 할 정도로 매일 밥 먹는 것과 같이 내 일상 모습 중 하나이다.
그런데 임시보호는 절대로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아이가 입양이 되지 않았을 경우 내가 직접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준팔이 입양과 관련해 섭외가 들어왔을 때 임시보호를 하다가 입양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한 것이었다. 처음 준팔이 상황은 많이 좋지 않았는데 10년을 넘게 이런 상황들을 봐오다 보니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나를 만난 이후로 밥을 먹기 시작하더라. 밥을 먹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한두 달을 병원에 있어야 했다. 그런 동안에 입양 가지 않고 병원에 있다는 모습만 보고 논란이 된 것이다. 내가 준팔이를 살려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그 아이를 내 가족으로 받아들일 모든 각오를 다 하고 시작한 것이고 지금 나와 함께 너무도 잘 지내고 있다. 어떤 오해의 이야기가 돌던 준팔이가 건강하게 지내고 가족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Q. 현재 배재대학교 실용음악과 겸임교수로 있다. 계기가 궁금하다
새로운 겸임 교수를 찾는 과정에서 음악적인 기초를 쌓아왔고 대중적으로 다양한 활동해왔던 사람을 원했는데 한때 CCM을 같이 했던 작곡가님이 나를 추천을 해줬다. 학교에서 좋은 반응을 보여서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Q. 학생들에게 어떤 교수인가
엄하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다정다감하게 대하지도 않는다. 학생들에게 당장 눈앞에 놓인 일들만을 생각하기보단 먼 훗날의 비전을 심어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노래 실력도 중요하지만 가는 길의 방향을 정확히 잡아줄 수 있는 멘토가 있다면 큰 힘이 되기 때문에 선생님, 교수님이라는 호칭은 부담스럽고 좀 더 살아본 입장에서 좋은 길을 제시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Q. 사진작가로도 활동했던데
2012년에 필름 수동 카메라를 선물 받았는데 내가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이 재미있더라.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한 것은 아니고 취미로 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인 양준모 오빠의 앨범 재킷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우리만의 감성으로 즐겁게 찍었던 기억이 있다.
Q. 샤이니 태민과 닮은 꼴로 화제가 된 적이 있지 않나
그 사진을 보고 내가 봐도 닮아서 놀랐다(웃음). 저번에 우연한 기회로 태민을 본 적이 있는데 나보다 예쁘게 생겼더라. 그래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더욱 예뻐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웃음). 사실 그때 당시에 태민 이외에도 슈퍼주니어 김희철씨 닮았다는 소리도 꽤 들었다. 주로 닮은 꼴이 남자인 것 같다.
Q. 공개연애 경험이 있지 않나. 공개연애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결혼할 사람이라면 공개연애를 할 것이다. 그때 당시는 결혼할 사람이라서 공개했다기보다는 굳이 거짓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굳이 숨길 마음은 없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것 같긴 하다.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오랫동안 연애를 안 하고 있는 상태라 이런 말들이 술술 나오나 보다(웃음).
Q. 결혼은 언제쯤
시기는 중요하지 않고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게 하고 싶진 않은데 아이가 너무 예뻐서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Q. 연예계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
일단 선우와 친하고 배우 윤승아와도 동갑이라 친하다. 무열 오빠와 승아를 연결해준 계기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웃음). 정식으로 만나보라고 작정하고 소개를 시켜준 것까진 아니지만 나로 인해 처음 안면을 트게 되었다. 배우 이영진 언니, 가수 테이, SG워너비 이석훈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Q. 연애설이 터졌던 빽가와는 친하게 지내고 있나
예전부터 정말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요새는 오빠도 너무 바쁘고 해서 자주 연락하지는 못한다. 처음 바닐라루시 데뷔할 때 앨범 재킷을 찍어주고 스타일리스트를 해줬던 오빠라 멤버와 함께 다 같이 친했었다. 이루마와도 함께 곡 작업한 적도 있는데 그것도 빽가의 소개로 알게 된 것이다.
Q. 요리 실력이 뛰어나던데
어머니에게 20살 때부터 배워왔지만 요리를 막 즐겨서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집 꾸미는 것은 너무 좋아해서 가장 큰 취미 중 하나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 구조를 다 바꾸곤 한다.
Q. 과거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많이 줬더라. 관심이 많은 편인가
어렸을 적엔 관심이 정말 많았다. 30대 들어와서는 안 그러는데 그때 당시엔 에너지도 넘쳤던 시기라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열정이 받아들여지진 않았던 것 같다(웃음). 내 안에 있는 클래식, 종교, 가족이라는 틀을 벗어나고자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머리로 제2의 사춘기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Q. 평소 성격
단순하고 털털한 성격이다.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모습도 있는데 그런 모습은 내 작은 일부의 성격 중 하나일 뿐 전반적으로는 털털하고 어떻게 보면 남자 같은 성격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문제가 닥치면 감정적인 소모를 하기보다는 해결하려고 애를 쓰곤 한다.
Q.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
연기하는 게 재미있더라. 카메오로는 몇 번 출연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Q. 롤모델
성시경과 이소라, 윤종신 선배님이다. 공통점은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음악을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공감을 준다는 점이고 나도 그렇게 아름다움을 가진 음악을 하고 싶다. 특히 성시경은 나에게 유일한 연예인이다. 다른 분들은 존경하는 선배님이라는 성시경은 정말 팬이다. 꼭 한번 함께 듀엣으로 호흡해보고 싶다.
Q. 이효리 광팬이었어서 별명이 배효리였다던데
내가 가지지 못한 이미지를 갖췄기 때문에 끌렸던 것 같다. 내 안에 그런 욕망과 열정, 자유로움이 있는데 나에겐 어울리지 않고 그런 음악과 인생을 살 수는 없으니 효리 언니를 보면서 항상 대리만족을 하고 동경하면서 응원했던 것 같다.
Q. 목표
좋은 엄마가 되어있었으면 좋겠고 노래 잘하는 가수도 좋지만 먼저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좋은 수식어도 많겠지만 배다해라는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 음악을 대하는 모습 등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바란다(웃음).
기획 진행: 황연도
포토: bnt포토그래퍼 김연중
의상: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스티브제이앤요니피, SJYP
슈즈: 아키클래식, 알도
헤어: 김청경 헤어페이스 아 빈 실장
메이크업: 김청경 헤어페이스 원하나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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