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김희경 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필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박효주는 훨씬 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본인의 의견과 대비되는 이야기에도 미소를 지으며 제 의견을 피력하거나, 자신의 내면을 흔치 않은 어휘력으로 구사하는 모습은 박효주를 훨씬 더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만들었다.
최근 bnt뉴스는 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극본 이지승)에 출연한 배우 박효주와 인터뷰를 가졌다. 단정한 듯 자유로운 짧은 헤어컷은 박효주의 묘한 분위기와 상냥한 말투에 꼭 들어맞았다. 그의 여성스러움이 부각되는 순간, 그는 생각보다 꽤 강한 생각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정의를 정의라 부르지 못하고
‘섬, 사라진 사람들’은 공정뉴스TV 이혜리(박효주) 기자가 염전노예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던 중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사건 목격 스릴러.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캐릭터들의 움직임에 따라 앵글이 생생하게 움직이고, 캐릭터가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영화의 상황과 이야기를 알게 된다. 이처럼 새로운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인만큼 박효주도 호불호가 갈릴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작업들이 들어가요. 사실 이 기법이 영화에 아예 없던 방식은 아니지만, 60분이 넘도록 그 장면을 넣음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몰입을 최고조로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몰입할 수 없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지럽다고 하실 분들도 계시겠죠.”
극중 사건이 전개될수록 사람들은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 원인과 대책법보단 사건을 일으킨 잔혹한 범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인 만큼 상당히 무거운 주제이기에 관객들에게 사건의 해결보단 생각의 자극을 더 요구하는 작품이 될 염려도 있는 터. 이 점에 대해 박효주는 “저도 사람이니 보고 듣는 게 있다”는 묘한 말로 운을 뗐다.
“‘섬, 사라진 사람들’에서는 한 인권을 비롯해 피해자가 있고, 그 피해자를 가한 가해자가 죽이고 살리는 것에만 몰입하죠. 인권에서 시작해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모두가 그 범인을 잡기에만 혈안이 된 모습이 현재 사회의 시선과 닮아있다고 봐요. 꼭 인권이 무너진 제도를 돌아보자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범인이나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마녀사냥에만 치중돼 중요한 사건이 금방 끝나버리는 아쉬움에 대해 재조명하고 싶었어요. 이 작품이 대중들에게 어떤 주장을 피력할 수 있을 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 또한 이 작품을 하며 이슈나 사회문제를 접하는 저 또한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지 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된 건 사실이에요.”
그는 영화를 통해 뉴스나 기사를 보는 시각에 변화를 느꼈다기보다 영화가 던지는 주제에 함께 고민하게 됐음을 밝혔다. 왜 진실이 묵살되어야 하고, 우리가 모르는 진실을 밝히는 게 어려운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다소 어두운 의문 속에서 많은 공감과 아픔을 느꼈다고.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염전노예와 같은 인권을 다시 한 번 상기해서 돌아보는 시각만 가져준다면 충분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꼭 ‘이런 이야기니 이렇게 행동해야 합니다’라는 주장은 없어요. 진실은 생각보다 불편한 게 많아서 덮여진 것들도 많고, 제 스스로도 무관심해졌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화두에 사람들이 같이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누길 바라는 바람이에요. 그것만으로도 소통이 잘 됐다는 거니까요.”
박효주가 연기하는 이혜리는 현실의 타협점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신념을 악착같이 지켜내며 살아가는 정의로운 인물로 등장한다. 극이 전개될수록 본인의 이득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흘러감에도 “진실은 밝혀져야 된다”라는 주장은 변함이 없다. 이제는 그다지 많이 찾아볼 수 없는 혜리의 정의감이기에 관객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캐릭터로 느껴질 수 있는 바. 이러한 의문점에 박효주는 이해심이라는 단어를 내세웠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먼저였죠. 저는 혜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이유와 정당성, 혹은 압박이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야 관객들도 혜리의 행동에 이해를 하고 연기를 하는 저도 편할 것 같았죠. 하지만 감독님께선 ‘아주 단순하게 정의롭다는 인물이 이렇게 낯선 인물이 되어버렸나요?’라고 물어보셨죠. 그게 오히려 혜리를 이해하는 부분이 됐죠.”
“혜리와 저의 직업은 다르지만, 저도 10년 넘게 연기를 한 입장으로서 정말 무모한 도전을 할 적도 있고, 제가 제 스스로를 몰랐던 점을 이해하던 배우로서의 모든 모습들이 혜리가 취재를 나가는 열정과 비슷한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직업이든 그 신념이 확실하다면 제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혜리와 저 사이의 단추가 맞춰졌죠. 이후에 연기할 땐 사회의 마지막 남은 정의를 갈망하는 인물로 더 이해하기 쉬웠어요.”
여배우, 그 뿌리 없는 허울을 벗기까지
극중 이혜리는 다른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독특한 인물로 등장한다. 수수한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인한 기운과 선비 같은 마음가짐, 그리고 주눅 들지 않는 단단한 눈빛은 확실히 진보된 여성성이라는 평을 받기 충분했다. 하지만 박효주가 영화에서 가장 크게 매력을 느낀 것은 원톱 주연도, 주체적인 여성상도 아니었다.
“제가 영화에서 느낀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원 테이크 촬영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거였죠. 감독님이 제게 주신 시나리오 맨 마지막에서는 직접 메모를 하신 글이 있는데, ‘어떤 배우든 이 역을 하면 쉽지 않을 거다’라는 말이었어요. 저는 그 메모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쉽지 않다는 것을 도전해보고 싶었고, 끊지 않고 연기하는 건 연극 무대에서나 해봤지 움직이는 장소에선 해보지 못했거든요. 충분히 매력은 있었지만 그만큼 매일 긴장이 됐던 것 같아요.”
“작업은 하는 만큼 예민해진다”고 말하는 그는 ‘섬, 사라진 사람들’을 찍으며 많은 몰입과 집중을 필요로 했다고. 한 번은 담을 넘는 장면에서 담을 넘던 중 외우던 대사가 백짓장이 돼버린 사건 이후 박효주는 매 순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연기는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스며들어 관객의 마음을 투영할 수 있게 만드는 존재였던 셈.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촬영장을 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촬영을 들어가서 한 번에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뿌듯했죠. 간혹 가다 4분 넘게 진행되는 부분을 쭉 가면 정말 재밌더라고요. 결국 그 부분들이 쌓여서 매 순간에 보람찼던 것 같아요. 찰나의 순간들을 담을 수 있는 짜릿함이 매번 있어서 저 스스로도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녁에는 뿌듯함을 느끼며 잤죠.(웃음)”
배우에게 이미지란 연기를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연기를 온전히 할 수 없는 족쇄와도 같은 묘한 존재다. 박효주는 도회적인 이미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지만, 스스로가 느끼는 본인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이 점에 대해 그는 “이미지 변신은 배우에게 의미가 없다”며 조곤조곤 자신의 말에 살을 붙여나갔다.
“모든 배우들은 변화에 대해 갈망해요. 한 작품이 끝나면 당연히 다른 걸 하고 싶죠.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렇게 되길 바라니까요. 그리고 그 변신이 너무 재밌어요. 제가 더욱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박효주는 “오히려 감독님들이 전작과 반대되는 이미지를 찾아주신다”며 긍정적인 생각을 밝혔다. 자신의 이미지가 갇혔다는 생각이 들 때는 항상 스스로 다른 장르를 개척하거나 연극을 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딜레마의 늪을 피해갔다고. 그만큼 그에게 도전은 질리지 않는 즐거움이었다.
“뻔하지 않는 걸 한다는 건 정말 재밌는 것 같아요. 이번 작업을 할 때도 마치 스케일링을 받은 기분이었달 까요.(웃음) 스스로 타성에 젖거나 익숙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것들이 싫었거든요. 어떻게든 인지하고 버리려고 했던 부분들이 이혜리를 통해 더 확실해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전 풀샷 안에서 있는 모습이 익숙해졌더라고요. 배우들에게 익숙한 연기는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하며 충치를 발견한 느낌으로 아주 시원했죠.”
“배우라는 직업이 좋은 건 어떤 감정이든 쓰일 곳이 있다는 거예요. 모든 배우들은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연기를 할 때 ‘이런 감정을 알게 됐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이 있어요. 좋은 일을 겪을 때도 마찬가지죠. 모든 경험은 배우에게 있어 큰 자산이에요.”
박효주의 인터뷰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정의와 여배우라는 두 단어로 할 수 있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영화에 출연한 만큼 그에게 정의라는 단어는 필수적이고, 데뷔 이래 그의 이름 앞에 빠진 적 없던 여배우라는 말은 더더욱 빠질 수 없는 이야기다. 다소 가볍지 않은 인터뷰였음에도 필자가 글을 적어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는 그의 무거운 이야기들이 꽤나 반가웠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말들의 연속이었음에도 그 속의 진정성이 흔치 않게 느껴지는 건 박효주만의 인생이 아주 특별하기 때문은 아닐까.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