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김희경 기자 / 사진 김강유 기자] 다부진 체격과 울림 있는 목소리는 그의 아우라를 더욱 단단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남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 같은 눈빛은 절로 사람을 긴장시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허나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모습에서는 의외의 따뜻한 면모가 포착됐다. 남의 장점을 부각시키거나, 무심한 듯 툭 내뱉는 말에는 배려가 깃들어 있었다.
최근 종영된 SBS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극본 윤현호, 연출 이창민)에 출연한 박성웅은 bnt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하면서도 특유의 위트와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을 드러냈다.
‘리멤버’는 ‘용팔이’를 이어 시청률 20%를 넘긴 SBS 드라마로 기록됐다. 오랜만에 공중파 드라마로 돌아온 박성웅은 높은 인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촬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청자들과 직접적으로 만난 기회가 없기도 했지만, 20%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의견.
“요즘에는 20%가 대단한 건지,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가 대단한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제가 ‘제빵왕 김탁구’를 할 땐 50%가 넘었는데.(웃음) 그게 6년 전인데, 지금은 워낙 많은 플랫폼이 있으니까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다는 느낌은 받고 있어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실감은 안 날 거 같지만 지금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느낌이에요.”
극중 박동호는 돈을 최우선으로 하던 깡패 출신 변호사에서 자신으로 인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서진우(유승호)를 위해 정의의 주먹을 들어보이는 인물로 등장한다. 초반 서진우를 배신하는 모습을 통해 선인과 악인의 사이에서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나 박성웅은 “박동호는 선인”이라며 확고한 목소리를 냈다.
“박동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죠. 초반에 동영상을 갖고 있었을 때도 ‘이걸 터트려도 판은 뒤집히지 않겠구나’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동영상을 버리기엔 아까우니 본인이 갖고 있고, 일호그룹의 내부자들이 되어 정황을 확실하게 알아내는 것을 선택했죠. 서재혁을 무죄로 만드는 것이 드라마의 목표였고, 박동호의 목표였죠.”
박동호는 부산 출신으로 사투리를 써야 하는 인물이었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그에게는 친절할 수 없는 관건이기도 했다. 박성웅 스스로도 “부산 분들에게 상욕을 먹었다”라고 고개를 저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작발표회에서 “서울 사람들만 속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듯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제 사투리에 억양이 너무 많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어릴 때 부산을 가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연습은 정말 많이 했어요. 부산 말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에게 제 대본을 찍어서 보내주면 그분이 그 대본에 있는 말을 다 녹음해서 음성메시지로 제게 보냈어요. 그래서 저는 대본에 억양을 표시하면서 몇 번 들으며 나름대로 제가 완성해나갔죠.”
“초반에는 정말 어려웠어요. 하지만 이창민 PD가 정말 똑똑한 친구라서 많이 도움을 받았죠. 촬영을 할 때도 제가 아니라 상대방 바스트를 먼저 찍는 식으로 제가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줬어요. 하지만 후반부부터는 ‘이젠 잘 하잖아’라면서 저를 먼저 찍더라고요.(웃음) 부산 분들이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다’라고 하면서도 ‘서울말은 안 나온다’라고 호평해주시기도 해서 저는 만족해요.”
그에게 드라마 촬영에서 느낀 고충은 단순히 사투리만이 아니었다. 홀로 변호를 할 경우 다른 캐릭터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대사를 외워야 했기 때문에 그에겐 늘 혼자와의 싸움이었다. 뿐만 아니라 극중 법정 장면은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했다.
“다른 캐릭터와 싸우는 장면은 그나마 괜찮아요. 상대방이 치고 들어오는 시간이라도 있으니까. 하지만 제가 혼자 최후 변론을 하는 장면은 A4 3장이 넘는 대사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게 혼자 변호할 때도 사투리를 해야한다는 중압감도 컸죠.”
“법정 장면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에 캐릭터를 다 따야 해요. 판사와 증인, 우리 편의 사람들과 방청객들의 리액션을 따는 건 8시간에서 10시간까지 걸릴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였을까, 박성웅뿐만 아니라 유승호, 박민영 등은 법정 장면에 있어서는 유독 긴장하며 연기를 했다. 법학과를 전공한 박성웅마저도 분위기에 압도돼 대사가 잘 나오지 않았다는 후문.
“법정 신 자체를 들어가면 그야말로 다들 멘붕에 빠져요. 머릿속에 작은 힌트라도 남아있으면 어떻게든 이어갈 텐데 마치 백짓장처럼 하얘지죠. 그 자리에는 판사님과 일반 방청객들도 다 앉아있으니까 분위기에 압도되는 공간이죠. 한 번은 승호가 계속 NG를 내서 제가 ‘너무 캐릭터에 심취한 것 아니냐’고 농담할 정도였죠.(웃음)”
‘리멤버’는 현대사회의 갑과 을에 대해 적나라한 이야기를 전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었다. 잘못된 점을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평. 박성웅 또한 “드라마의 모든 장면이 문제로 느껴졌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의 수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극중 남규만(남궁민)을 한 대도 못 때린 게 너무 억울해요. 매번 맞기만 하고.(웃음) 남규만이 나타나면 증거가 다 사라지고, 기사도 한 줄 나지 않았잖아요. 법조계에서도 판사까지 다 입을 닫는 걸 보고 격분했죠.”
“하지만 마지막에 남규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에서는 조금 불쌍하더라고요. 주변에 친구도 없고, 남규만의 엄마가 운전사 아들에게 돈을 줘가면서 친구해달라는 것도 나중에 알잖아요. 남규만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제일 나쁜 건 남일호(한진희) 회장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보며 제 아들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웃음)”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에게 잊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은 건 너무 많아요. 제 스스로 연기를 하면서도 남는 기억들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요. 제작발표회 당시에도 ‘절대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겠다’고 다짐도 했고요. 제 아들이 드라마와 같은 세상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무리 주변에 나쁜 기운이 있어도 의연하게 서 있길 바래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승호처럼만.(웃음) 이번 작품을 통해 정말 승호바라기가 된 것 같아요. 아마 기사 보면 승호 이야기가 절반일 걸요?”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어색하지 않는 박성웅. 대중들의 기대에 저버리지 않는 그의 연기는 남녀노소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는 조금 부담이 되지 않을까. 허나 박성웅은 자신의 스포트라이트에 대해 겸손하면서도 뚝심 있는 면모를 드러냈다.
“카메라 뒤와 앞을 구분해서 생각하진 않아요. 박성웅이라는 사람은 배우면서 남자, 그리고 남편이자 아버지이기 때문에 따로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 이전에 사람이고 사람 이전에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 모든 모습이 저니까요. 하지만 제가 잘나서 이 자리에 있기 보단 열심히 해주는 제 모습을 사람들이 알아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박성웅은 카메라 앞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에 대해 아쉬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악역 전문 배우’라는 말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바뀌어갈 것”이라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최선을 다한 자신의 연기에는 후회가 없고, 대중들의 시선을 제 앞에 놓인 과제처럼 생각한다고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제가 악역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전 작품을 인상 깊게 본 분들을 위해 천천히 바뀌어 가려고요. 갑자기 멜로를 했는데 상대 여배우를 향해 칼을 꺼내는 느낌이나, 사랑을 위장한 연쇄살인마 같은 느낌이 나면 안 되니까요.(웃음) 그리고 박동호라는 캐릭터는 그 변화의 가장 적절한 인물이었다고 봐요.”
“제가 완전 신인 때는 무명이었기 때문에 대사 한 마디 없이 서 있기만 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 당시에는 다른 선배들의 연기를 보고 너무 부러웠죠. 어떤 경우에는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리고 지금의 저를 보고 다른 후배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고 하기 보단 제가 되고 싶었던 순간을 살고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채찍질한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지금의 저에게 안주하면 안 되니까요.”
배우로 살아있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말은 식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앞으로의 10년, 그리고 20년을 약속하는 박성웅만의 또 다른 화법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필자는 더욱 두근거렸다. 남의 시선에 함부로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사랑받을 줄 아는 법을 아는 박성웅은 확실히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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