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화석유로 불리는 LPG가 국내에서 자동차 연료로 사용된 때는 1960년대 후반이다. 특히 한국에서 LPG가 본격 생산된 이후 개조를 통해 자동차에 사용됐고, 이후 1970년대 LPG 연료가 택시에 사용될 수 있도록 법적 정비가 완료된 후 1982년 자동차회사가 LPG 전용 엔진을 처음 만들어 판매했다. 그러니 한국 내 LPG자동차의 역사도 벌써 50년이 훌쩍 넘은 셈이다. 덕분에 LPG엔진 기술은 한국이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에 본지는 그간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LPG자동차의 한국 내 역사를 정리해 보려 한다<편집자>.
LPG의 주 사용처는 단연 운수업계, 즉 택시였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1972년 휘발유 가격은 1ℓ에 40원이었던 반면 자동차용 부탄은 ㎏당 30원에 머물렀다. 두 연료의 가격은 1974년 석유파동으로 가파른 격차를 보였는데, 휘발유 가격이 148원으로 치솟을 때 LPG는 부탄이 87원, 프로판이 121원에 머물렀다. 그렇다보니 택시를 중심으로 LPG의 자동차 연료 수요 욕구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최초의 가스택시가 서울에 등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동일운수가 주인공인데, 뉴코로나택시 95대 중 70대에 '부탄가스' 내연기관을 달아 운행을 시작했다. 당시 내용은 매일경제신문 1972년 11월10일자에 기록돼 있으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동일운수 이필우 사장에 의하면 동사가 가스택시에 착안한 것은 서울과 대기오염도가 비슷하다는 일본 동경에선 70만대의 영업용택시의 전부, 그리고 大阪(오사카)의 경우 95%가 부탄가스로 운행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부터였다.
동사는 지난 4월(1972년)부터 일본 가스택시의 모형도를 입수, 동사 소속 택시 3대를 시험 삼아 부탄 가스택시로 바꾸었다. 일반택시의 휘발유용 내연기에 기화기와 가스를 내보내는 ‘소리노이드·시피’를 부착하고, 뒤트랑크에 70ℓ 들이 가스통(560㎞ 주행 가능)을 설치하는 간단한 작업이 진행됐다. 총 비용은 1대당 7만원꼴."
물론 동일운수의 시험주행 결과는 놀라웠다. 그리고 이필우 사장은 자신의 시험 결과를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해 강조했다. 먼저 부탄가스의 옥탄가가 휘발유의 80보다 15나 높은 95로서 엔진 성능 면에서 우수했으며, 링겔만 차트(배기가스 농도측정표)에 전혀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매연이 없는 데다 냄새도 없고, 엔진 마모가 없어 휘발유의 경우 1년에 한번 하던 보링을 3년 만에 한번 하면 족할 정도이고, 연료 값이 휘발유보다 싸서 한달 1만2,000원꼴이 절약된다는 게 요지였다.
그러자 택시 업계를 중심으로 기존에 운행되던 휘발유 택시의 급격한 LPG 전환이 이뤄졌다. 그리고 1974년 운수업계는 이를 계기로 정부에 LPG 사용 확대를 강력하게 건의까지 했다. 경영개선과 사업 육성을 위해 휘발유 가격의 40%에 불과한 LPG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운수업계는 근거로 동일운수 이필우 사장과 마찬가지로 당시 일본의 사례를 들었는데, 일본은 1961년부터 LPG차를 사용해 74년 당시 20만대의 LPG 택시가 운행됐고, 이 가운데 85%가 영업용 택시였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1972년부터 LPG 연료 사용 전환을 추진했지만 정부가 1973년 8월 이후 LPG 사용을 강력히 규제해오고 있었던 만큼 시정을 건의했던 것이다.
그런데 LPG의 자동차 연료 사용이 제한된 이유는 바로 휘발유소비 감소를 걱정하는 정유사의 반대였다. 당시 교통부는 도시공해 방치, 영세택시사업자의 수익성보장 및 외화 절약 등을 이유로 사용을 허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상공부의 반대로 번번이 가로막혔다. 이에 따라 1973년 8월까지 신청했던 600대에만 전환을 허가했을 뿐 나머지는 여전히 제도에 가로막혀 있었다.
하지만 LPG로 바꾸는 택시는 늘어만 갔다. 1976년 전국에 운행되던 영업용 택시는 모두 2만9,000대였는데, 그 가운데 40%가 LPG로 운행됐다. 차종별로는 브리사 1만2,349대, 시보레 4,319대, 코티나 4,319대, 코로나 3,989대, 포니 2,232대, 기타 907대였다. 특히 택시로는 단연 브리사의 인기가 높았다.
브리사(Brisa)의 인기가 많았던 데는 자가용과 영업용을 분리, 판매한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1975년 1월 등장한 브리사 자가용은 985㏄ 휘발유 엔진 기준으로 자가용이 159만원8,500원이었던 반면 영업용은 그보다 낮은 가격에 내놨다. 이를 통해 시보레 1700 및 뉴코티나와 더불어 승용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러자 운수업계는 기아차에 LPG 전용 엔진 장착을 요구했다. 동시에 정부는 점차 택시에 LPG 연료 사용 확대를 적극 검토하는 중이었는데, 결국 기아차는 1977년 12월초 브리사에 1,300㏄ LPG 엔진을 장착해 출고했다. 그 탓에 가격은 휘발유차와 비슷해졌지만 연료비는 휘발유보다 ℓ당 71원이 적게 들었다. 다만, ℓ당 주행 가능거리가 휘발유보다 1~2㎞ 짧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운수업계를 중심으로 브리사 LPG는 적지 않게 팔려나갔다.
하지만 브리사를 견제한 차종이 등장했으니 바로 현대차 포니였다. 1976년 1월부터 판매에 들어간 포니는 1,238㏄ 휘발유 엔진으로 최고 80마력을 발휘했지만 택시에선 LPG 개조가 활발했다. 제도적으로 개조가 허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정부는 지속적으로 LPG 택시 운행 대수를 늘려가는 중이었던 만큼 개조를 한 이후 일정 시기 때 일괄 허용되는 방식이 반복됐다. 한 마디로 기아차 브리사처럼 완성차회사가 LPG 시장에 완제품으로 뛰어들 만한 시장이 점차 조성돼 갔던 셈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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