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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부자들’ 이병헌,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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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t뉴스 김희경 기자]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지는 배우에게 있어 부담감이 들지 않아요. 결국 배우로서 또 다른 행복감을 찾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11월19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에 출연한 이병헌은 최근 bnt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비친 묵직한 목소리와 깊은 눈동자는 어떤 특별한 미사여구보다 인상적이었다.

‘내부자들’ 속 이병헌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을 돕는 정치깡패로 등장,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복수를 준비하는 안상구 역을 맡아 열연했다. 연기력으로 큰 논란을 빚어본 적이 없는 명실상부 톱배우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병헌. 하지만 영화에 대한 흥행을 묻자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조심스럽지만 제가 해야 될 일이고, 완성된 작품은 개봉을 해야 하니까요. 저와 함께 일한 분들에게 적어도 피해는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어요. 제 책임감입니다.”

“정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모르겠어서 모르겠다고 말해요. 제가 캐릭터에 동화되기 시작한 이상 객관성을 잃을 수밖에 없거든요. 특히 배우나 감독은 자기 작품에 대한 객관성이 많이 떨어져요.”


극중 안상구는 대한민국 정치를 뒤흔드는 이들의 곁에 서서 악의 주동자로서 활약하지만, 후에 자신을 배신한 이들을 향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정의의 주먹을 들어 보인다. 원작 속 진중하고 거친 상남자 안상구와 달리, 영화 속 안상구는 자신의 편에 있는 이들에게는 콩 한 쪽도 나눠먹는 정신을 발휘하는 따뜻한 인간미를 보이다가도 어딘가 2% 모자란 백치미를 드러낸다. 이런 매력적인 안상구의 발견은 이병헌과 감독의 끊임없는 연구 끝에 발굴된 것이었다.

“영화 촬영을 끝나고 나서 조승우 씨, 감독님과 맥주 한 잔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감독님이 저에게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에 말했던 첫 마디를 기억하냐’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그때 ‘안상구가 여기서 제일 매력 없는 캐릭터네요’라고 했대요. 당시 정확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영화가 가진 힘이 너무 세서 쉴 새 없이 전개가 몰아붙이니까 보는 관객이 힘들어할 것 같은 생각은 확실히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인물 하나에게 관객이 쉬어갈 수 있는 유머 코드를 주던가, 완벽한 부품에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빈틈을 준다면 관객들이 보기가 편할 것 같았죠. 결국 단순화된 안상구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리는 게 효과적이었고, 이런 안상구 덕에 관객들 입장에서는 보다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나지 않았나 싶어요.”

2시간을 웃도는 ‘내부자들’ 속 캐릭터들은 정치의 어두운 면과 인간의 악랄함, 그리고 끈질긴 두뇌싸움이 치열하게 매듭을 이어간다. 어색한 부분은 없었지만 기가 센 세 배우들의 모습에 관객들이 피곤함을 느끼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다. 허나 이병헌은 “원래 영화는 그것보다 훨씬 길었다”며 도리어 편집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130분이라는 시간을 위해 잘라내야 했던 많은 장면들을 언급하며 “정말 아까운 것들이 많다”고 입을 열었다.

“3시간40분 정도 되는 길이를 2시간10분 정도로 많이 줄여야 하니까 편집 과정에서 고민도 있었죠. 내부적으로 관계자들과 캐릭터 위주의 편집, 스토리 위주의 편집을 여러 번 의논했어요. 그렇게 여러 회의를 거치고 나니까 사건 위주 스토리가 스피디하고 힘이 있다고 결론 내렸죠. 캐릭터 위주 편집은 각각 인물의 풍요롭고 입체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분명한 단점도 있었죠. 시간의 흐름이 일정하지 않고 현재와 과거의 시점을 끊임없이 오갔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는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어요. 배우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한 것 같아요.”


“내부적으로는 투자사에서 3시간40분짜리 영화를 너무 좋아했어요. 농담 삼아서 ‘영화를 두 편으로 나눠서 내보낼까’라고 할 정도로.(웃음) 현재 완성본은 사건 위주에요. 만약 감독 버전으로 캐릭터 위주의 영상들이 나온다면 배우의 입장에선 아까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씬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올 거예요. 저 또한 너무 보고 싶고요.”

극중 안상구는 범죄 영화에서 보여진 캐릭터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완벽한 악의 축에서 버림받은 그는 복수심에 불타 정의를 향한다. 설령 그것이 자신이 기피하던 정의였고, 정의를 외치며 손을 뻗는 우장훈(조승우) 역시 투명한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말이다. 안상구는 과연 어떤 캐릭터였을까. 이병헌은 우리의 물음표에 있는 영화적 편견을 한 꺼풀 벗겨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악이냐 선이냐의 이야기는 캐릭터적인 면모로 봤을 땐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제가 절대 악으로 연기한 건 따지고 보면 ‘놈놈놈’ 밖에 없어요. 안상구는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과 선 사이 모호한 지점에 있다고 봐요. 직업적으로 안상구는 정말 나쁜 일을 많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좋은 마음을 가졌거나 좋은 일을 하는 모습이 중간 중간 드러나요. 이젠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도 안상구 같은 현실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지면서 영화가 조금씩 더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우리 영화 속 절대 악은 백윤식 선생님이지만, 절대 악은 드문 법이죠.”


이병헌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무대로 배우의 뜻을 펼치는 것은 단순히 한류의 바람만은 아니다. ‘악마를 보았다’(2010)‘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지 아이 조2’(2013) 등 수많은 작품 속에 담긴 이병헌은 캐릭터에 뛰어난 몰입감을 보이면서도, 전작에 맡은 캐릭터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연기 습관을 보였다. ‘내부자들’ 속 이병헌은 묵직한 카리스마를 조금 내려놓고 망가질 때는 확실히 망가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중년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톱스타 이병헌에게 망가지는 연기는, 자신의 직업이었기에 우습지 않았고, 끊임없이 동화돼야 할 또 하나의 자신이었다.

“제가 무당이 아니고선 그 사람이 될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 캐릭터를 가까이 하려고 하고 젖어 드려고 하는 건 있어요.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끝날 때까지 무의식적으로 되게끔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내면의 싸움이죠. 그렇게 연기를 하면 제 아이디어가 아니라 캐릭터로서의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해요.”

이병헌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중들의 많은 이목을 받고 있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어떤 말보다 이병헌을 가장 온전히 판단할 수 있는 잣대는 우리가 가장 많이 보고 익숙한 그의 연기다. 과거는 이미 엎질러졌지만, 앞으로 보여줄 그의 향후가 궁금하지 않다고 하는 건 분명 거짓말이니까. (사진제공: 호호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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