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가 떠오르고 있다. 금융위기와 각종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성장세가 꾸준하다. 덕분에 그간 SUV를 외면했던 프리미엄 브랜드도 SUV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SUV의 득세는 단순히 디젤을 연료로 활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그리고 지형적 이유도 한 몫 한다.
실제 국내 완성차 5사의 1-3월 내수 판매에서 주목할 점은 '세단의 감소 및 SUV의 증가'로 요약된다. 세단은 전년 대비 7.6% 줄어든 반면 SUV는 21.2%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다. IHS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SUV 증가세가 43%에 달했고, 미국은 12%, 브라질은 5.7%였다.
SUV 판매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지형적 요인이 꼽힌다. 특히 신흥 시장 중심으로 소득 수준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찾기 시작했고, 큰 차를 선호하는 과시 현상도 SUV 인기를 부추겼다. 실제 IMF에 따르면 브릭스로 대표되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최근 3년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7%에 달한다. 특히 중국은 지난해 7.8%를 기록, 글로벌 평균 3.2%의 두 배를 넘었다. 그만큼 소득 수준에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집과 자동차로 시선을 돌리기 마련이다. 남에게 과시하고픈 욕망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와 집은 크기를 줄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일단 크기에 익숙해지면 그보다 작은 공간은 답답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SUV 강세도 마찬가지다. 세단형 승용 대비 넓은 실내 공간, 높은 운전석 시야 등이 운전자로 하여금 상대적인 우월감을 갖게 만든다. 또한 SUV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진동과 소음이 줄고, 좌우로 지나치게 흔들리던 롤링이 억제되며 승차감이 향상된 것도 한 몫 거든다.
또 다른 이유는 지형이다. 글로벌 시장 내 SUV 성장이 가장 컸던 곳은 흔히 말하는 신흥시장, 그 중에서도 브릭스(Brics)로 대변되는 국가들이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포장도로의 비중이 여전히 낮다는 점이다. 설령 포장이 돼 있어도 거친 노면이 많고, 일부 지역은 겨울철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따라서 4WD 시스템이 기본으로 제공되는 SUV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 경제 위기로 잠시 주춤하지만 쌍용차가 그간 러시아에서 승승장구했던 것도 겨울 내내 눈이 쌓이는 러시아의 기후 특성과 무관치 않다.
그런데 최근에는 성장률이 높은 국가와 달리 선진국에서도 SUV의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신흥국이 경제적 여유로 과시성이 짙다면 선진국은 소비자들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또 다른 즐거움을 찾는 것처럼 선진국에선 각종 레포츠가 성업 중이다. 과거의 여가가 단순 자유 시간 또는 자유로움을 의미했다면 현대 사회에선 여가와 스포츠가 합쳐진 '레포츠'로 모아진다. 더불어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극한을 경험하려는 이들도 동반 증가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오토캠핑이 일상화되면서 SUV 판매량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오토캠핑 인구만 250만명이 넘는다. 덕분에 SUV가 주력인 쌍용차는 올해 1~3월 국내 판매량이 2만대를 넘어섰다. 지난해 대비 29% 증가에 달할 만큼 폭발적이다. 쌍용차 외에 현대기아차, 한국GM과 르노삼성 등 국내 5개 완성차회사의 1-3월 SUV 판매는 10만9,000여대로 집계됐다. SUV가 국내 최다 판매 차급에 오른 셈이다.
중요한 것은 SUV 성장세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소득의 증가 속도가 둔화될 수는 있어도 결코 줄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득이 늘면 여가를 즐기게 되고, 최근 여가는 가족중심의 문화로 일관된다. 게다가 신차와 맞물리는 중고차도 SUV를 견인하는 대목이다. 중고 SUV 수요가 늘면서 신차 구입 후 되팔 때 가치 하락 부담이 그만큼 감소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갖가지 상황을 감안할 때 SUV의 강세는 당분간 지속이 불가피하다. 국산과 수입을 가리지 않고 브랜드마다 앞다퉈 SUV 전쟁에 뛰어드는 배경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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