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최송희 기자]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서 제일 부질없는 것이 연예인 걱정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성웅이 살인자 역할을 맡았다는 소식에 조금 걱정을 했었다. 영화 ‘신세계’에 이어 ‘황제를 위하여’까지. 연달아 너무도 강렬한 캐릭터를 선보였던 것이 이유였다. ‘신세계’ 이중구가 ‘황제를 위하여’ 상하까지. 이제 더 보여줄 게 있을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 ‘살인의뢰’를 본 뒤였다.
최근 영화 ‘살인의뢰’(감독 손용호) 개봉 후 한경닷컴 bnt뉴스와 만난 박성웅은 스크린에서 맞닥뜨렸던 섬뜩함을 지우고 위트와 여유로움으로 무장한 채였다. 모든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되 초조해하지 않는 태도는, 이제까지 그가 완성해온 필모그래피들과 닮아있었다.
연달아 강한 캐릭터들을 선보여왔다. 그런 남성적인 캐릭터들을 선호하는 편인가?
그런 건 아니다. 일단 들어오는 것이 그런 류다. (웃음) ‘신세계’는 진짜 하고 싶었던 영화였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쟁쟁한 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정말 정말 설렜다. 꼭 캐스팅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었다.
정말 셌다. ‘신세계’ 이후부터 더 센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은 없었나?
압박과는 달랐다. ‘신세계’가 가장 잘 되다 보니 패러디도 많이 되고 가장 많이 언급된다. 벗어나야 할 인물처럼 느껴졌다. 물론 잘 돼서 좋다. (웃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긴 게 ‘살인의뢰’ 조강천이었다. 물렁물렁한 캐릭터가 아니라 정말 긴장감이 높고, 정말 센 캐릭터였다. 악하게 나와서 밑도 끝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 찍으면서 여기가 악의 끝이겠구나 생각했다. 이제 악역은 잠시 보류할 생각이다.
정말 악랄했다. 스스로도 나쁜놈처럼 느껴졌던 장면이 있었나?
피해자 가족들을 계속 조롱하는 장면. 찾아보라며 이건 게임이니까 라고 이죽거리던 것이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초콜릿 장면이 정말 얄미웠다
(웃음) 아무 생각 없이 찍었다. 일차원적으로. 그냥 앞에 있는 초콜릿을 맛있게 먹었다. 조강천은 감옥 안에서 먹지 못했던 단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 하는 거다. ‘아 맛있다. 그런데 더 이상 없네’라는 식이었다. 취조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상경에게 맞을 땐 아들 생각을 했다. 가장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으로. 아들을 일주일이나 못 봐서 더 해맑게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스토리를 붙여놓고 보니 완전 나쁜 놈인 거다. 그냥 최대한 순진하게 그리려고 했다. 난 그냥 내 세계에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가장 순수한 악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맞다. 성악설의 모습이랄까.
감독님은 조강천에게 전사를 부여하지 않았다. 박성웅도 마찬가지인가?
캐릭터 전사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유년기, 학창시절, 20대까지 모두 이야기를 만들어왔었다. 그렇게 해야만 매끄럽게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송 감독에게 ‘감독님 플래시백으로 조강천의 어린시절을 보여주는 게 어떤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런 것이 없는 게 콘셉트라고 하더라.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그게 처음엔 이해가 안 갔는데 오히려 연기하기는 편했다. 나중에 완성본을 보니 송 감독의 의도를 깨달았다. 더 공포스럽고 강력하게 다가오더라.
비를 맞는 신이나 샤워하는 걸 보면서 조강천만의 이유나 계기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일차원적인 행위인 것 같다. 이유 같은 건 없는 거다. 피가 묻었고 비가 내리니까 기분이 좋은 상태처럼. 감옥에서 샤워하는 모습은 살인의 추억 같은 거랄까. 손맛을 못 봤으니 과거를 상상하는 것처럼.
살인의 추억이라니. 섬뜩하다
섬뜩하죠. (웃음) 조강천은 인터뷰 내내 말했지만 그 피해자 여성들을 사랑한 것 같다. 나만의 사랑 표현인 거다. 강한 짝사랑이랄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를 풀어낸 것 같다. 앞마당에 묻어두고.
하고 싶은 대로,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게 정말 어린 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짧게 지나갔지만 검거 후 현장 재연을 할 때, 성의 없이 종이 삽으로 땅 파는 흉내를 내는 모습이라거나
그걸 봤나? (웃음) 의도한 바다.
그럼 그 장면 말고도 의도한 장면들이 더 있나?
피해자 가족들이 울고불고 하는데, 그들에게 장난스럽게 ‘으씨’라고 겁주는 장면이 있다. 대사가 없으니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많이 넣었다. 성균이가 칼을 들고 찾아왔을 때도 그를 가만히 구경한다. 조강천은 승현(김성균)이 너무 궁금한 거다. 그리고 취조실 장면에서도 그랬다. 유난히 두리번거리는 모습이나. 취조실은 처음 왔으니 신기했던 거지. (웃음)
살인마 역을 연기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힘들기도 했지만 촬영 끝날 때 쯤엔 ‘무뢰한’으로 넘어가서 그 역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살인의뢰’가 개봉하니 또 다시 몰려오더라.
감독님이 말하기를 응급실에서 경찰들을 살해하는 장면을 찍고 정말 힘들어 했다던데
인조피부를 붙인 다음 가운데를 째는 거다. 쿡 찌르고 땡기는데 정말 피부처럼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한 번만 찍는 게 아니라 여러 번 찍으니까…. 정말 나중에는 정신이 피폐해지는 거다. 잠을 못 잤다.
전작에서는 늘 보스였기 때문에 직접 나설 필요가 없었는데 ‘살인의뢰’에서는 직접 몸을 써야 했다
어휴. 이전에는 편했다. (웃음) 애들을 시키면 알아서 했는데 이번엔 직접 했다. 몸도 많이 써야 하고.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목욕탕 액션이겠지 싶다
18시간을 찍었다. 그 동안 물도 못 마셨다. 전날부터 그랬으니까 거의 42시간 정도. 액션 신을 18시간 동안 찍으면 쉬는 시간에도 근육이 쉬면 안 돼서 계속 펌핑하는 운동을 했다. 3개월을 그렇게 고생했더니 그 신을 찍을 땐 정말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 한 잔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가글 하고 뱉을 정도였다.
김의성 배우와 호흡도 좋았다. 한국적인 액션신이라는 말이 딱이었다
지금 말하지만 의성이 형이 액션엔 정말 쥐약이었다. 형이 연기생활 30년 만에 액션이 처음이라고 하더라. 체육관에 가서 기본 체력이나 동작을 체크하는데 어우…. 속으로 이거 개고생이겠는데 싶었다. (웃음) 무술 감독도 형님에게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오라고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촬영장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 완전 이건 180도 바뀐 게 아니라 540도 정도였다. 정말 훌륭하게 변해서 오셨더라. 덕분에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마지막 신은 어땠나? 웃는 장면을 보고 임팩트가 너무 강한데 생각했는데
에이. 아닐 텐데. 목욕탕 장면도 잊을 만큼? (웃음) 마지막 엔딩 장면을 보고 번뜩 떠오르는 게 있어서 크랭크인 전, 송 감독에게 3개월 간 내가 준비하겠다고 말해놨었다. 지문에는 총에 맞아 죽는다가 전부였다. 그런데 제가 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더라. 총에 맞고 씩 웃는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태수와 게임을 한 건데, 내가 이겼다 싶은 거다. 네 동생이 어디 묻혀있는지 난 말 안했어 싶은 것. 그리고 관객들에겐 조강천의 마지막 모습을 각인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악마적인 미소를 짓자고 결론을 내렸고, 현장에서 두 번만에 그 장면이 완성됐다.
원하는 바를 이룬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관객들이 엄청나게 술렁거리더라
VIP 시사회 때는 내가 총에 맞으니 관객이 막 박수를 치더라. 기분이 진짜 좋았다. (웃음) 정말 재밌는 반응이었다. 내가 총에 맞고 막 박수를 치면서 웃더니, 내가 웃으니까 바로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더라. 그 짧은 찰나에 관객이 많은 반응을 보여주는데 전율이 쫙 올랐다.
정말 강렬한 최후인 것 같다. 그럼 조강천을 끝으로 한동안 박성웅 표 ‘센 캐’(센 캐릭터)는 못 보는 건가?
당분간은. 뭐 이렇게 대답하고 작품이 마음에 들면 이다음에도 도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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