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희 기자] 적막이 찾아올 틈은 없었다. 인터뷰에서도, 그의 인생에서도.
2015 S/S 시즌으로 24번 째 컬렉션을 마친 곽현주 디자이너는 마라톤을 갓 끝낸 마라토너처럼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또 다른 마라톤을 위해.
그 때문이었을까, 런웨이는 이유 모를 쓸쓸함과 적적한 바람을 품고 있었다.
한층 성숙해졌다. 특유의 아이코닉한 그래픽 일러스트로 이루어진 패턴은 여전했지만 눈물을 머금은 컬러들은 세련미를 입고 전체적인 컬렉션에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언밸런스 스커트, 체크 패턴 롱재킷을 필두로 시작된 쇼는 발랄하면서도 잔잔한 향기로 마무리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준비한 질문은 쌓여있는데 그는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 지난 쇼가 되어버린 S/S 컬렉션과 그간의 근황에 대해.
얼마 전 2015 S/S 컬렉션을 마쳤다. 소감을 듣고 싶다.
‘눈물’을 주제로 풀었어요. 바쁜 일상 속에서 공허함, 회의 이런 감정을 느꼈고, 이것들을 긍정적으로 녹여내고 싶었어요. 초현실주의를 좋아해서 그 부분에 집중을 했고요.
만족하나.
쇼에 대해서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요,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잖아요. 나를 표현하기 위한. 지금까지 쇼를 하면서 단 한 번도 만족을 느끼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이번 컬렉션에서는 지난 시즌들과 다른 인상을 받았다.
어떤 분들은 “고급스러워졌다”, “성숙하다”, “다른 컬러감을 느꼈다”라고 하시고, 강한 옷을 찾으러 오신 분들은 “옷이 작년보다 세지 않다. 더 셌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세요.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반응이 나왔어요. ‘패션왕 코리아’ 방송을 하고 나서인지 어린 친구들도 많이 알아봐 주었고요.
클래식한 컬러감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 것 같다.
아무래도 기존보다? “성숙하다”는 평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웃으면서도 눈물이 흐르는 날이 많더라고요. 이 느낌을 서정적인 감성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비가 내린 후의 느낌이랄까. 그래서 컬러에서 많은 변화를 주었어요. 눈물에 젖은 듯한 바이올렛, 안개에 쌓여 있는 애잔한 하늘색과 같은.
‘애잔하다’라는 표현이 정말 좋다.
그 애잔함에는 기존보다 한층 더 부드러운 남녀가 뮤즈로 자리잡았어요. 핑크 컬러가 녹아든 체크 패턴이 그것을 표현해주었죠. 아, 물론 마지막 피날레에 버킷 햇(벙거지 모자)도요. ‘내 마음의 잔잔한 비를 막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어요.
프린트에는 어떤 바람을 담았나.
프린트는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에요.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나다운 표현을 위한. 디자이너는 비즈니스도 중요하지만 화가처럼 예술적인 요소를 표현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술을 통해 패션을 전공해서 그런지 그리면서 표현하는 게 좋아요.
현실적인 모습 속 예술가적인 감성이 있는 것 같다.
옛날에는 외골수여서 비즈니스적인 성향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런데 어느 순간 과감함과 추진력이 생기더라고요. 양면적인 것들을 많이 갖췄어요. 요즈음 세상에 현실성을 무시한다면 살아남기 어렵잖아요.
그 감성을 쇼에 담는 것인가.
쇼는 룩북이 아니잖아요. 현장에서 쇼를 관람하는 이들이 현장의 감성을 느끼는 게 쇼라고 생각해요. 모델과 감성이 하나가 되어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문화감을 느끼는 거요.
의상에 녹이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옷은 입고 싶어야 하고, 입었을 때 다른 사람을 매료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옷은 입었을 때가 더 예쁘고 라인감이 있어요. 남자 분이건 여자 분이건 이상하게 곽현주 옷을 입으면 이성 분이 질문을 많이 한다더라고요. 하하.
옷에 끼를 불어넣나 보다.
모델들도 우리 쇼는 자유롭게 하더라고요. 모델들도 한 번쯤은 꼭 서보고 싶은 쇼라고 해요. 즐기면서 할 수 있어서.
2014 F/W 시즌 컬렉션에서 모델 주영이 발랄하게 워킹을 해서 백스테이지에서 혼날까 괜스레 걱정을 했던 것이 떠오른다. 사실 벌써 20여 차례의 컬렉션을 진행한 디자이너에게 감히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인터뷰를 많이 하기는 했어요. 그래도 항상 하고 싶은 말은 많아요.
자카르타에 다녀왔는데 한국에 대한 한류에 대한 관심이 많더라고요. ‘우리나라가 빨리 아시아의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현재 우리나라 패션이 올라가려면 꺾어 내려지고를 반복하고 있어요. 전체 산업에 비하면 사실 패션은 작은 예산의 한 부분인데…. 문화 가치도 높고.
패션에 대한 대중들의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맞아요. 특강 다니면서 느끼는 거지만 24번의 쇼를 했는데 저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패션을 공부하는 분들도 어떤 모델이 있고, 어떤 디자이너가 있는지 잘 모르는 것이 늘 아쉬웠어요.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나 여자 디자이너는 더더욱. 여자 디자이너들은 조금만 올라가도 ‘독한년’이 되더라고요. 얼마나 독하면, 로비를 잘 했나 등의 인식이 있으세요.
어려운 일도 많았을 것 같다.
혼자 자수성가를 해서…. 그래도 이런 부분들을 보고 중고등학생 친구들이 멘토가 되어달라고 할 때면 힘이 나기도 해요. ‘누군가에게 내가 꿈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디자이너가 모든 것을 갖추는 것은 사실 너무 어렵잖아요. 받아들일 것은 빨리 받아들이고, 버려야 할 것은 빨리 버리고. 이게 정답인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달라.
선을 보는 여자가 남자와 결혼을 꼭 해야 하는데 그 남자가 패셔너블한 사람을 좋아하는 남자라면서 그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며 찾아오신 분이 있었어요. 10번의 데이트룩 디자인으로 결혼에 성공했어요. 10번의 만남으로 매력을 발산한 거죠. 이럴 때 디자이너로서 참 재미있고 뿌듯해요.
그렇다면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황당한 질문은.
셀러브리티가 갖춰야 할 소양에 대해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셀럽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에요. 일단 저를 셀럽이라고 생각하고 대답했어요. “해외 셀럽들이 자기 감성과 맞는 디자이너들의 옷을 많이 입는데 우리나라 셀럽들도 브랜드보다 디자이너를 많이 찾고, 하이 브랜드와 로우 브랜드의 믹스매치도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라고요.
방송의 힘인 모양이다. 방송 출연을 통해 얻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정말 많은 것을 얻었죠. 패션하는 사람들은 다 봤다고 생각해요. 포토그래퍼, 광고 등 관계 업자들도 많이 봤더라고요. 인지도를 많이 넓힌 것 같아요. ‘패션왕’ 파이널 전에는 가게 앞에 지나가던 남자 아이들이 화이팅하라면서 일등 기원한다고 많이들 해줬어요. 광희랑 배 타러 갔을 때도 여학생들이 많이 호응해주고요. 곽현주 디자이너가 저런 옷을 한다는 것을 알린 것이 굉장히 큰 소득이에요.
잃은 것도 있는지.
잃은 것은 시간이에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준비하느라 시간이 많이 촉박했어요. 파이널에, 컬렉션에, 테이블 스타 확장까지. 너무 바쁜 스케줄 때문에 체력적인 면이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눈물이 났나. 하하.
테이블 스타 확장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12월, 코엑스에 테이블스타가 확장 오픈해요, 2호점으로. 남자 모델까지는 아니더라도 훈훈한 알바생들을 주로 고용할 예정이고 새로운 레시피 역시 개발할 예정이에요. 더욱 다양해진 공간으로 확장될 예정이에요.
컬렉션이 끝나고도 여전히 바빠 보인다.
그 모습이 지금의 곽현주와 곽현주 컬렉션 그리고 테이블 스타를 만들었으니까요. 하하.
(사진출처: JTBC 예능 ‘탑디자이너 2013’ 시즌2, SBS 예능 ‘패션왕’ 방송 캡처, bnt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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