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동차 부품을 활용해 자동차와 만들어온 추억을 되살려주는 '브릴리언트 메모리즈(brilliant memories)'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오래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폐차하거나 중고차로 팔더라도, 그동안 자동차와 쌓아온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두 번째 주인공은 30년 동안 그랜저 택시를 운전해 온 택시 기사의 이야기다. 게다가 이번 사연을 작품으로 제작한 아티스트 '칸'은 자동차 수리업체 대표라는 특이한 이력을 소유해 관심을 끌고 있다. 자동차 생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아티스트 '칸'을 만나 작품 이야기를 나눴다.
-조형 작가이면서 자동차 수리업체를 운영하게 된 사연이 있나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셨다. 등하교 때 정비공장을 항상 지나야했는데, 등교할 때 망가져있던 차가 집에 돌아오면 말끔하게 원상 복구돼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동차와 친숙해졌고, 이후로는 자동차와 서로 대화하는 친구가 됐다. 자연스럽게 자동차와 친밀감이 생겼다.
하지만 항상 수리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도 했다. 아픈 곳을 고쳐 원상 복구하는 것보다 아예 새롭게 만들 수 없을까를 고민했다. 여기에 나만의 이미지를 삽입해 만들어낸 것이 바로 내 작품들이다"
-첫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
"폐차장에 처박혀있던 차가 눈에 띄었다. 앞쪽은 완전히 찌그러졌지만 형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평소에 동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폐차를 앞둔 차에서 마치 주인에게 버림받은 유기견과 같은 심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차를 다시 한 번 건강하게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에 첫 작품을 제작하게 됐다"
-자동차 부품을 활용해 만든 작품엔 어떤 것들이 있나
"찌그러지거나 구멍 난 보닛으로 벽에 걸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 엔진룸을 떼어내 기계가 가진 규칙적인 아름다움을 또 다른 작품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개인적인 대표작은 차 후면부를 절개해 드러낸 월풀 욕조다. 빨간 차에 월풀 욕조를 삽입해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향후에는 산모를 위한 요람을 만들어보고 싶다"
-자동차를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동차가 차주 또는 관객에게 평면의 감동을 넘어서는 힐링의 도구가 될 수 없을까 고민했다. 자동차 잔존물이 녹아서 새로 태어나는 것은 단지 고철일 뿐이다. 하지만 아티스트로서 입장을 바꿔 자동차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 버려진 폐기물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지 전달하고 싶었다. 소멸하지 않고 다시 명품으로 돌아오는 것, 차주를 비롯한 관객들에게 힐링의 시간과 도구가 돼서 보답하는 게 내 작품의 컨셉트다"
-작품 활동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어딘가
"자동차의 사연을 먼저 따진다. 소재로 사용할 자동차를 보고 차주의 성별과 연령을 짐작해본다. 차주가 어디에 살았으며, 무슨 일을 했을까, 어떻게 사고가 났을까, 어디가 망가진 걸까, 왜 버려졌을까하는 구구절절한 히스토리가 작품의 재료가 된다. 자동차를 기계적으로 잘 알다보니 차 상태를 보면 궁금한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나의 오브제는 사연과 잔존물로 전락한 자동차를 결합하는 것이다"
-그랜저 택시에 얽힌 사연을 소개해달라
"사연자인 택시 기사는 30년 간 70만㎞를 주행했다고 한다. 3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사연자와 자동차 사이에 많은 스토리가 있었을 것이다. 일반 자가용이 아닌 택시라는 특성도 반영됐다. 먹고 살기위해 운전했을 것이고, 새벽에는 잠도 잤을 것이다. 그야말로 차와 함께 30년을 온전히 함께해 온 애정과 애착이 묻어있는 것이다.
차주가 전해온 영상은 ‘이제 훌훌 털어버리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차를 보내면서 섭섭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 나 또한 몇날 동안 계속 동영상을 봤다. 그리고 사연자의 택시에게 말했다. "너의 주인은 지금 네가 폐차장에서 고철덩어리가 됐다고 생각할거야. 조금만 기다려봐. 너를 멋진 작품으로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해줄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편히 쉴 수 있는 의자다. 택시 기사로 30년 평생을 운전석에서 고생했으니 이제는 뒷좌석을 내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미스터 택시(MR. TAXI)'다. 사연자에게 일터이자 쉼터였고, 소중한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이번 작품에는 사연자 자동차의 부품이 어떻게 활용됐나
"사연자의 그랜저 택시는 안타깝게도 사람의 심장에 해당되는 엔진과 사람의 팔·다리로 볼 수 있는 하체 서스펜션 및 타이어가 너무 노화돼 있었다. 사람의 눈인 헤드램프와 코에 견줄 수 있는 라디에이터 그릴 역시 오랜 주행으로 인해 상처가 많았다. 또한 입에 해당하는 흡기라인과 장기 및 항문과도 같은 흡기 및 배기라인 등도 구멍이 난 상태였다. 그나마 차체 트렁크만이 모진 풍파를 견뎌내고도 양호한 상태였다. 그래서 자동차 뒤쪽 프레임에 시트를 장착하고, 사연자의 30년 추억을 재료 삼아 작품을 만들었다"
-오직 사연자의 자동차 부품만 활용한 것인가
"물론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바로 그 부분이다. 다른 작품은 내가 원하는 재료와 이미지를 채택해 순수하게 나의 아트워크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캠페인은 작품을 선물하는데 있어 다른 재료들이 가미되지 않는 게 조건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부품과 재료를 사용하다보니 애로사항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반영된 그랜저의 차체 색상 그대로를 살리고, 헤진 시트 가죽도 오롯이 장착했다. 손때 묻은 오디오와 빛바랜 리어램프도 모두 사연자의 그랜저에서 가져왔다"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사연자는 이 차가 폐차된 줄 알고 있었다. 자동차에 붙어 있는 사연자의 흔적을 꼼꼼하게 찾아 작품에 근사하게 적용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테나가 보이질 않았다. 알고 보니 사연자가 자동차를 떠나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안테나를 떼어간 것이다. 작업하는 내내 비어있는 안테나 공간을 보면서 사연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동차의 운명을 가장 가까이서 함께하고 있는데… 자동차와 사람의 인연을 이어주는 브릴리언트 메모리즈의 컨셉트를 어떻게 생각하나
"깜짝 놀랐다. 제안이 처음 왔을 때 내가 추구하는 작품의 컨셉트와 너무 닮아있었다. 기존의 상품들은 고급스러운 디자인, 새로운 기능과 메커니즘 등을 보여주고 광고하는데 급급했다. 그러나 이번 캠페인은 굉장히 인간적이고 감성적이다. 기계의 결합체인 자동차가 자연과 동화될 수 있는 참다운 프로젝트라는 생각이다"
이번 이벤트는 현대차가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한 프로젝트 일환으로 마련됐다. 본인 외에 가족이나 지인의 자동차와 사연에 대해 응모할 수 있으며, 참여를 원하는 소비자는 11월14일까지 캠페인 웹사이트(brilliant.hyundai.com)에 사연을 남겨 응모할 수 있다. 당첨자는 11월21일 캠페인 사이트에서 공지한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
▶ [인터뷰]현대차 싼타페가 예술로 승화된 이유
▶ [인터뷰]시트로엥, '좋은 느낌' 디자인이란?
▶ [인터뷰]르노 디자인 총괄, "사람 냄새 나는 차가 목표"
▶ [인터뷰]현대차 연구원, "소비자 요구가 곧 아이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