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희 기자] “몸단장을 하지 않고 외출하는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 오늘이 당신의 운명의 상대와 만나게 되는 날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무수한 명언들을 남긴 가브리엘 샤넬. 그의 말처럼 그는 떠났지만 스타일은 진주 목걸이,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 블랙 앤 화이트 컬러, 트위드 재킷, No.5 등 수많은 수식어를 남기며 지속되고 있다.
현대 여성들의 패션은 그의 존재 전후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그를 기점으로 당시 여성들의 의복뿐만 아니라 의식의 자율화까지 일어났기 때문.
패션 디자인의 새로운 체계를 도입시킨 장본인이자 여성들의 패션에 자유를 선사한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 1954년 화려한 장식이 트렌드였던 시절 그만의 스타일로 소재들을 변형시켜 심플하고 감각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의상을 디자인한 용감한 디자이너 ‘샤넬’에 대해 알아보자.
■ “나를 짓누르는 돌이 없기를”_가브리엘 샤넬
많은 이들은 그를 보고 말한다. 그가 만진 것은 무엇이나 황금이 된다고.
하지만 샤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맹렬하게 일했다. 이는 바로 돈이 없으면 사람은 아무 가치도 없다는 어린시절 고아원에서의 깨달음 때문이다.
평소 청소, 바느질 그리고 춤과 노래가 좋았던 샤넬은 낮에는 양재 보조로 밤에는 싸구려 바에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코코’라는 애칭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시기 에티엔 발상을 만나 상류층 예절을 배운다. 이 때 당시 그는 남성용 승마 바지를 여성용으로 개조하는 말도 안되는 발상을 하고 이를 실현시킨다. 샤넬의 자유분방함은 한 남자에게 종속되는 것을 거부하며 에티엔 외에도 수많은 부유하고 매력적인 남자들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던 도중 샤넬은 자신을 위해 살롱과 의상실을 열 수 있는 돈을 지원해주며 모자 디자이너가 될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준 사람이자 꿈꿔오던 사람인 영국인 사업가 보이 카펠을 만난다. 그리고 우연히 입은 애인의 셔츠가 그를 여성복의 세계로 이끈다.
당시 남성의 속옷 재료로만 쓰이던 저지 소재를 사용해 편안하고 실용적인 여성복을 디자인함으로써 코르셋과 페티코트에 갇혀 있던 여성의 몸을 해방시킨 것. 그는 그렇게 혁신적인 디자이너이자 미래에 속한 파리의 여왕이 되었다.
하지만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고 카펠은 갑작스런 사고로 맞이한다. 샤넬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보였지만 그의 삶은 계속된다.
그 후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손자 드미트리 대작을 만났고 마드모아젤 컬렉션에 러시아 대초원의 바람을 불어넣는다. 또한 그 덕분에 왕실의 조향사를 만나 샤넬 No.5를 선보이게 된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오래가지는 못하고 샤넬은 브랜드 트레이드 마크인 트위드 재킷과 스웨터에 영감을 불어넣어 준 당시 영국의 최고 부자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만났다 헤어진다.
후에 샤넬은 화려한 옷이 가득한 극장에서 “이 여자들을 블랙으로 정복하리라!”고 다짐한다. 그 때까지 하인의 의상에만 쓰이던 블랙이 완벽한 컬러로의 변신에 성공했고 그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리틀 블랙 드레스가 등장하게 된다.
승승장구하던 샤넬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의상의 시대’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덜함의 미학’이라는 블랙의 심플함을 남긴 채 문을 닫는다.
■ “나는 미래에 속한 사람이고 싶다”_가브리엘 샤넬
샤넬은 걸어다니는 브랜드이자 CEO이자 뮤즈였다. 자신이 브랜드의 모든 부분을 관할할 뿐만 아니라 옷, 액세서리, 향수 등의 토털 패션의 개념을 도입시켰기 때문.
1954년 이후 공백기를 깨고 패션계에 복귀한 샤넬은 자신의 컬렉션을 열었다. 이에 프랑스 언론은 혹평을 보인 반면 미국 언론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세계를 펼쳐 나갔다.
또한 그는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막스 자코브 등 당대의 최고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돕기도 했다. 피카소는 그를 “유럽에서 가장 감각 있는 여자”라며 언급한 바 있으며 앙드레 말로는 “샤넬, 그녀는 드골, 피카소와 더불어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언급한 바 있다.
그는 확실히 과거에 속한 사람이 아닌 미래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말처럼 패션은 사라져도 그의 스타일은 영원할 것이다.
■ “옷에 대해 죄를 느끼는 것은 정말로 불필요한 일이다”_칼 라거펠트
20세기 가장 축복받은 디자이너로 꼽히는 칼 라거펠트. 그는 샤넬을 전성기로 다시 한 번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고유의 클래식함에 자신만의 트렌드를 접목시켜 브랜드를 최고의 경지에 올려놓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 이제 그는 그 자신도 누군가의 뮤즈가 되었다.
샤넬이 수많은 사랑으로 디자인의 영감을 얻었다면 그는 독서와 골동품 등에서 수많은 영감을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머리 속에는 패션 역사를 아우르는 수많은 자료들이 담겨있다.
이는 그가 샤넬만의 화려하지만 무거운 검은색, 환상을 심어주는 금속 액세서리를 놓치지 않고 액세서리로 혹은 부속품으로 활용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는 “꼭 샤넬의 옷을 입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샤넬에게 마음 깊이 감사해야 한다. 현대 디자인의 문을 연 독일의 바우 하우스와 비견되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샤넬을 최고의 경지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샤넬을 그만의 철학으로 이해하고 존경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출처: 샤넬 공식 홈페이지 내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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