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영 기자]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버렸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누군가는 그것까지도 지켜보고 있다.
조의석 김병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설경구 정우성 한효주가 호흡을 맞춘 영화 '감시자들'은 얼굴도, 단서도 남기지 않는 비밀스러운 범죄설계자 제임스와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감시반, 이 두 집단이 펼치는 추적 액션 영화다.
CCTV와 스마트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모든 순간순간이 감시되고 있는 2013년 대한민국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범죄에 대한 '감시'만을 담당하는 경찰 내 특수 조직, 감시반이라는 소재를 최초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일까. 가장 직접적이고도 정확하게 소재를 뽑아낸 '감시자들'이라는 제목이 사실은 처음으로 등장한 소재임에도 다소 지루하게 들리지만 이 영화, 119분의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재밌다.
내용은 이렇다. 어떤 상황을 카메라로 영상을 찍듯이 기억하는 하윤주(한효주)가 감시반에 들어가기 위해 감시반 리더 황반장(설경구)에게 테스트를 거치고 같은 시간, 제임스(정우성)는 고층 빌딩 옥상에서 은행 강도 사건을 진두지휘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머릿속 상상 시뮬레이션만으로도 정확히 모든 상황을 그려낼 수 있는 치밀한 제임스였지만 조직의 일원이 순간적으로 사사로운 욕심을 부리면서 일이 틀어져 버린다. 이러나저러나 일은 잘 마무리됐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결국은 그 때문에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 그림자(제임스)를 찾기 시작한 감시반에게 쫓길 여지를 주고 만다.
동물적인 직감과 본능으로 범죄를 추적하는 황반장 아래서 꽃돼지 하윤주는 하루 종일 컴퓨터를 두드리는 수사관들보다 훨씬 더 빠른 두뇌로, 민첩한 다람쥐(2PM 이준호)는 이름처럼 날렵한 행동으로 점점 제임스를 조여간다.
하지만 내내 쫀쫀하게 쫓고 쫓기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헐거워진다. 누군가의 희생은 반드시 보상받아야겠고 일은 너무나 크게 벌어지고 만 걸까. 결국 제임스는 중요한 순간에 꽤 느린(?) 행보를 보이면서 허술한 모습을 드러낸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으나 숨 막히는 액션과 배우들의 호연은 단연 빛을 발한다. 강남 테헤란로, 이태원, 청계천 등 눈에 익은 광경에서 벌어지는 추격은 공간적 리얼리티가 더해지며 흥미를 배가시키고 탄탄한 근육질 몸을 잠시 공개했던 제임스는 좁은 골목에서 10명이 넘는 상대를 간단히 해치우며 잔혹함을 과시한다.
특히 각각의 캐릭터는 마치 배우 자신처럼 잘 입혀졌다. 설경구는 겉보기엔 나사가 빠진 듯 흐리멍덩한 눈빛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엄청난 직관력으로 사건을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깨알 같은 말장난과 유머는 극장의 웃음을 책임질 예정.
데뷔 이후 처음으로 악역으로 변신한 정우성은 가차없이 상대의 목을 찌르고 얼굴을 테이프로 감은 뒤 펜으로 입을 찢는 등 그야말로 냉혹한 킬러지만 잘생긴 외모 덕인지 도리어 '안 붙잡혔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거듭났다.
'감시자들'은 특히 한효주의 필모그래피에는 절대 뺄 수 없는 소중한 한 줄이 될 것 같다. 꽃사슴이 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이 믿어왔던 현실과 조직의 행동수칙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면서 조직원들과 부딪치지만 특유의 뛰어난 감각으로 팀에 융화돼간다. 무엇보다도 일단 사람은 예쁘고 봐야 한다. 수수한 옷차림과 옅은 화장에도 삐져나오는 미모에 주변인들은 꽤 너그러워지니까.
이번 영화로 처음 연기에 도전한 이준호는 '아이돌 출신'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편견은 버려도 좋다. 짙은 아이라인을 지우고 무대가 아닌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능청스러운 감시반의 한 사람으로서 완벽히 녹아든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7월3일 개봉. (사진출처: 영화 '감시자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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