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률 기자] 관악산에도 바윗길이 있다는 이야기는 벌써부터 들어왔지만 정작 그 바윗길의 이름이 무엇이며 난이도가 어떤가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인수와 선인 그리고 설악을 포함한 지방의 바윗길만 가기에도 시간이 아쉬운 판에 관악산의 바윗길 정도야 특별한 기회가 온다면 모를까 굳이 시간을 낼만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관악산의 바윗길, 즉 관악산 하늘길 등반은 그러나 예상외로 빨리 왔다. 계곡을 따라 잔설이 제법 쌓여있는 2월 중순의 어느날. 맹추위에 움추렸던 몸이 기지개를 펴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사실 2월과 3월에 바위꾼들은 주로 암장에서 몸풀기에 전념한다. 암벽등반을 하기에 2월과 3월의 날씨는 춥다. 바위를 만지거나 빌레이를 볼 때에도 손이 시려워 호호 불어야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는 능선과 정상에 서도 바람은 아직 차갑기만 하다.
그렇게 올해 몸풀기 등반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관악산 하늘길이었다. 하늘길은 스카이 락 알파인 클럽이 2008년 2월6일부터 3월8일까지 약 한 달여 기간 동안 공을 들여 만든, 최근에 만들어진 바윗길 중의 하나다.
관악산 하늘길은 모두 9개의 피치로 구성되어 있으며 등반시간은 3인1조에 5시간을 잡는다. 관악산 하늘길은 접근성이 좋아 시즌에는 만만치 않은 바위꾼들이 붙기 때문에 등반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하늘길은 쉽게 보고 등반을 시작했다가 의외로 완등을 못하고 하산하는 경우가 많다.
어프로치는 대개 과천종합청사역에서 시작한다. 6번 출구로 나와 계속 직진하면 청사 끝의 국사편찬위원회 옆 등산로로 들어서서 문원폭포까지 올라간다. 문원폭포 바로 위 너른 공터에서 땀을 한번 식혀주고 좌측길로 들어서면 문원폭포 보다도 더 멋진 폭포가 나타나는데 이 폭포 직전에 좌측길로 접어드는 것이 포인트. 여기에서 6봉능선을 향해 계속 나가다가 소나무 전망대 바위 못미쳐서 이정표 좌측으로 50미터 정도를 더 들어가면 어프로치가 끝난다.

첫째 마디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완만한 슬랩을 확보 없이 오른다. 아직 몸들이 풀리지 않은 상태여서 고정 자일을 하나 깔아 놓는다. 그렇게 도착한 첫째 마디. 오늘 기자의 등반순서는 맨 끝번이다. 아직 선등을 할 능력도 안되고 선등 빌레이를 많이 본 것도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된 등반순서다.
관악산 하늘길은 아직 마디별로 난이도가 매겨져 있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최고 난이도가 약 5.10b~5.10c(여섯째 마디)가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만만하게 볼 바윗길은 아닌 셈이다. 다만 6피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5.9~5.10 정도의 난이도로 보는 것이 맞다.
첫째 마디는 슬랩에서 이어지는 크랙길이다. 완만한 슬랩을 부담 없이 오르다보면 약간의 오버행 성격이 있는 짧은 크랙길이 나오는데 홀드를 잘찾아 잡고 오르면 무난하게 돌파할 수 있는 구간이다. 길이는 25미터에 볼트가 3개 고정되어 있다.
둘째 마디는 길이 10미터의 오버행 크랙 구간이다. 관악산 하늘길은 이렇게 각 마디별 거리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등반선이 가팔라서 약간 긴장을 하게 되지만 홀드가 양호해서 큰 부담은 없다. 사선크랙 등반을 마치면 바로 소나무 전망대 바위가 나온다. 둘째 마디 등반이 끝나면 약 50미터를 걸어가야 셋째 마디와 만나게 된다.
셋째 마디는 좌측으로 일반등산로와 출발지점이 같다. 시즌에는 대개 첫째와 둘째 마디는 릿지화로 등반을 하고 셋째 마디에서부터 암벽화로 갈아 신는다고 한다. 난이도가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완만한 슬랩을 올라 크랙을 넘어서는 바위길이다. 원래 좌향 벙어리크랙을 오른 후 언더사선크랙으로 진입해서는 오버행에서 인공등반으로 넘어서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셋째 마디에는 잔설이 만만치 않다. 슬랩길에는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있어 정상적인 등반은 할 수가 없다. 바위도 얼어 있다 보니 선등자가 미끄러져 약 7미터 가까이 추락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추락을 유발시켰던 눈이 이번에는 완충역할을 해줘서 다행히 별다른 부상은 입지 않았다. 암벽화를 신는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보여서 그냥 릿지화를 신고 등반한다. 이런 것이 후등자의 권리가 아니냐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넷째 마디는 슬랩길을 따라 오르다가 날등을 타고 오르는 20미터 길이의 바윗길이다. 출발을 할 때에는 가로로 길게 서있는 양호한 홀드를 잡고 우측으로 이동한 다음에 홀드를 잘 사려밟고 올라가면 된다.
넷째 마디를 마치고 다섯째 마디로 이동하면 출발선상에서 보이는 난이도는 이 구간이 하늘길의 크럭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압감을 주는 암벽이 나타난다. 15미터의 직벽을 직상하는 다섯째 마디는 두 번째 볼트 이후가 좌향 벙어리성 크랙이다. 다섯째 마디는 그러나 막상 붙어보면 홀드가 양호해서 큰 어려움 없이 등반할 수 있다.
다섯째 마디 등반을 마치고 관악산 6봉 중 1봉을 릿지로 오르고 2봉 안부로 진입하면 관악산 하늘길의 크럭스라고 할 수 있는 여섯째 마디와 만난다. 이 구간은 등반후 바로 짧은 하강을 하고 바로 이어서 왼쪽 아래편에 위치한 일곱째 마디로 이동하기 때문에 배낭을 두고 등반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등반선이나 난이도를 맞추기 위해 구성된 바윗길 같지만 바로 이 여섯째 마디에 관악산 하늘길의 묘미가 있고 등반성이 있으니 찬찬히 생각해보면 적절한 구성이 아닌가도 싶다.

여섯째 마디의 난이도는 5.10b~5.10c 정도로 추정된다. 수직의 페이스 등반으로 첫 번째 볼트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지만 둘째 볼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중급자 이상의 완력과 발란스를 필요로 한다. 둘째 볼트 통과가 어렵다보니 몸은 자꾸 오른쪽으로 가게 되고 우측으로 돌아서 등반을 마치면 5.9정도의 난이도 밖에 되지 않는다.
기자도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암벽화를 갈아 신고 등반을 해보는데 부끄럽게도 둘째 볼트 직상이 만만치 않다. 능력부족인지 요령부득인지 결국 직상을 포기하고 우측 쉬운 길로 올라 2봉정상에 서본다.
일곱째 마디는 기존에 있던 작은 규모의 암장에 위치해 있다. 3봉 바위의 좌측슬랩으로 암장의 첫 번째 길을 직상하는 길이다. 출발은 90도로 선 페이스 등반이지만 이곳 역시 둘째 볼트만 통과하면 슬랩길은 무난하게 오를 수 있다.
일곱째 마디가 시작되는 작은 암장에는 선등연습이나 탑로핑으로 등반연습을 하기에 적절한 코스들이 몇 개 있다.

하늘길은 다시 여덟째 아홉째 마디로 이어진다. 여덟째 마디는 일곱째 마디 등반을 마친 다음 다시 릿지화를 갈아 신고 4봉 직전에서 왼쪽으로 스카이락 인식표를 따라 이동한다. 여덟째 마디는 거리가 약 30미터로 관악산 하늘길에서는 가장 긴 구간이며 고도감 또한 만만치 않다. 홀드는 양호한 편이다.
여덟째 마디를 마치면 다시 하강이다. 하강은 두 번에 나누어서 해야 하는데 1차로 20미터를 하강하면 2차 하강링을 만나게 되고 여기에서 다시 약 25미터의 오버행 하강을 하게 되면 완료된다. 60미터 자일을 연결하여 한 번에 하강하는 수도 있겠으나 굳이 두 번에 나누어서 하강하는 이유는 이렇게 할 경우 자일 회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년 전 인수봉 동양길을 60미터 자일로 하강하다 자일이 회수가 안되어서 식은땀을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완전히 어두워진 밤에 자일을 풀기 위해 다시 등반을 해서 올라갔고 어둠 속에 자일을 회수하여 다시 60미터를 꺾어 두 줄 하강으로 등반을 마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아홉째 마디는 여덟째 마디를 마치자마자 시작된다. 길이 20미터의 크랙구간이며 등반할 수록 고도감이 세어진다. 홀드는 양호하지만 초급자라면 주의가 필요하다.
이날 기자와 일행은 아쉽게도 일곱째 마디 등반을 끝내고 하산을 하기로 했다. 잔설때문에 등반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거니와 등반성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대신 작은 암장에서 연습을 하며 지난 겨울동안 녹이 슬었을지도 모를 신체의 구석구석에 활력을 불어넣기로 했다.
하늘로 열린 관악산 하늘길. 개척자의 숨결이 아직도 살아서 숨쉬는듯한 이 바윗길은 서울과 과천의 클라이머들에게는 즐거운 바윗길이요 봄을 기다리는 클라이머들에게는 긴 잠에서 깨어나 아침햇살을 기다리는 순간처럼 희망을 노래하는 희망길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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