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류·하역 거부 등 '물류대란'…정부 대책은 미진한진그룹 '핑퐁 게임' 끝에 등 떠밀려 자금 수혈 논의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에 따른 '물류대란'이 현실화되면서, 당사자인 한진해운은 물론이고 금융당국과 채권단 등 관련 기관도냉정하게 후폭풍을 대비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과 채권단, 정부는 줄곧 '신규자금 지원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 법정관리 가능성을 암시하면서도 법정관리 이후 구체적인 시나리오와 대응 방안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 피해 '눈덩이'…대란 없다던 채권단 "중장기 전망이었다" 6일 정부와 금융권,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4일 오후까지 한진해운의 운항 선박 128척 가운데 운항에 차질을 빚는 선박은 60%가 넘는 78척까지 늘어났다.
3일 53척이던 비정상 운항 선박은 4일 오후 2시 기준 68척으로 늘어났고, 다시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10척이 추가됐다.
선주협회는 2∼3일 내로 한진해운의 모든 선박의 운항이 중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입·출항을 하지 못해 선박들이 외항에서 무기한 대기하면서 선원들이 마실 물과 식료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물류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호소하는 업체도 갈수록 늘어나 한국무역협회에 접수된 피해신고가 1천100만 달러를 넘어섰다.
당장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등 9∼10월 특수를 앞둔 국내 제조업에 타격이 올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피해에 대한 예측은 과소평가됐다.
해운업계에서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거쳐 청산될 경우 17조원의 손실과 2천300여개의 일자리 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채권단의 신규자금 지원 거부 결정이 내려진 지난달 30일 "그런 상황까지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채권단은 또 물류대란 우려에 대해 "세계 해운시장에서 화물은 적고 선박은 많은 상태"라며 "선박이 없어서 화물 운송에 차질이 빚어질 상황이 아니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물류대란이 현실화 되자 채권단을 말을 바꾸었다.
채권단 관계자는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단기적인 후폭풍이 없으리라고 본 것은 아니다"라며 "중·장기적으로 정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지는 3개월 이상지나 본 다음에 오판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정부 대응 수준 이하…부처간 '네탓 공방'만 더 큰 문제는 줄곧 '충분한 자구안이 없으면 추가지원은 없다'는 원칙을 천명해온 정부가 정작 법정관리 이후 대응에는 미진했다는 점이다.
채권단의 법정관리 결정 이후 정부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물류 대란이 현실화되자 "컨테이너선사 법정관리는 처음"이라는 핑계를 댔다.
금융당국은 채권단의 지원 불가 결정이 난 30일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 다각적으로 대응책을 검토했다"고 밝혔으나, 실효성 있는 대응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후폭풍만 커졌다.
해양수산부에서 운영하는 비상대응반이 '관계부처 합동 대책 태스크포스(TF)'로확대 개편된 것은 9월 4일에 이르러서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컨테이너선 법정관리는 처음"이라며 "전례가 있었다면 복기해보고 챙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에 따른 후폭풍을 예측하는 데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자인한 셈이다.
해양수산개발원 김우호 해운해사연구본부장은 "금융논리에 따른 원칙을 앞세우다 보니 글로벌 해운업계의 동향은 살피지 않은 것 같다"면서 "글로벌하게 움직이는회사에 대해 '집안 사정'만 생각하며 메스를 들이댄 셈"이라고 평가했다.
금융논리에 따른 구조조정에 문제가 있다면, 이에 제동을 걸고 산업 전체의 향방을 고민했어야 하는 해양수산부의 대응은 더욱 부족했다.
올해 들어 조선·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기업구조조정분과회의를 비롯한 협의체에서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해양수산부 등이 채권금융기관들과 공동 논의를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한진해운의 상황을 해수부 측에 계속 설명하며 법정관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렸지만, 발 빠른 대응은 이뤄지지 않았다.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부처 간의 손발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오래전부터 원칙을 강조해 왔고, 상황이막판에 뒤바뀐 것이 아니라 그 시그널대로 진행됐음에도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물류 등에 대한 주무 부처인 해수부의 미숙한 대응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정부 부처 간의 '네탓 공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에 대해 업계에서는 '설마'라는 전망이있었지만 법정관리가 결정된 이후에는 법정관리에 따른 영향에 대해 많은 경고가 나온 만큼 정부의 확실한 대응 방안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정부는 법정관리가 결정된 지 6일째 태스크포스를 만드는등 수준 이하의 대응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 한진, 아무런 준비없이 법정관리 신청…"전향적 대책 필요" 물론, 지금의 혼란에 대한 가장 일차적인 책임이 당사자인 한진해운과 대주주인한진그룹에 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진해운이 회사를 잘 운영했다면 채권단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빌릴 일이 없었고 경영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주주인 한진그룹이 '주인의 책임'을 다 했다면 최근의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채권단에서는 지난달 초에 이미 한진해운에 법정관리를 대비하는 비상계획을 세우자는 요청을 했으나 한진해운 측에서는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선박 압류와 하역 중단 사태를 속수무책으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원래 법정관리에 들어가려면 관리를 받는 도중에 사용할 필수적인 자금을 준비해 뒀어야 하는데, 한진해운은 아무 대책도 없이 신청한 것"이라며"1천500명의 직원도 있는데, 무책임한 결정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조차도 법정관리 결정이 충분한 대비 없이 이뤄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진해운 선박이 세계 곳곳에서 압류되는 상황을 막으려면 회생절차를 개시하는대로 즉시 압류금지명령(스테이오더)을 승인받도록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이틀이 지난 9월 2일에야 외국 법인에 스테이오더 신청을 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5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진해운이 운임을 받고 배에 물건을실었으므로 제대로 운송하는 것이 기업의 책임이고, 이는 한진그룹 전체의 신용도와도 관련한 문제"라며 대주주에 사태 해결을 촉구한 것도 이런 시각의 연장선에 있는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에서 물류대란 해결을 위해 신규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히자, 이에 앞서한진 측이 먼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당장 현실화된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 서로 책임을 미루는 '핑퐁 게임'이 거듭돼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결국 한진그룹 측에서 '등 떠밀리듯' 뒤늦게자금 수혈에 나섰다.
한진그룹은 5일 오후에야 한진해운에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주채권은행인산업은행에 제안했다.
김우호 본부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2, 제3의 피해가 늘어나는 만큼 일단 한진해운의 선박들이 하루라도 빨리 다시 운항할 수 있게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일단 운항을 하면서 밀린 돈을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게 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법원에서 회생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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