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상 신협중앙회장 인터뷰…"어려운 이웃에 햇살 될 것""저신용자, 사회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게 신협 정신"
"한국 신협의 르네상스를 열기 위해 정체성 회복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세계신협포럼에 참가한 문철상(64) 신협중앙회회장은 13일(현지시간) 우리나라 신협이 살아남으려면 '조합원을 위한 금융 서비스'라는 정체성을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회장은 한국 신협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가장 먼저 기본 정신을 강조했다.
올해로 출범 55주년을 맞은 한국 신협은 917개 단위 조합을 두고 600만 명의 조합원에 총자산 62조원 규모로 세계 4위, 아시아 1위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덩치만 커졌을 뿐 기본 정신은 흐려졌다는 게 문 회장의 생각이다.
문 회장은 "초기 25년은 신협이 정체성에 맞게 어려운 이웃들에게 삶의 햇살을비추는 역할을 했지만 후반기 30년은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우리가 은행을 흉내 내는모양새가 됐다"고 냉정하게 꼬집었다.
지난해 3월 4년 임기인 중앙회장에 취임한 문 회장은 33년간 신협 현장에서 일한 '신협맨'이다.
오래도록 현장에서 뛰었기에 살갗에 와 닿는 위기감이 더욱 크다는 게 문 회장의 말이다.
문 회장이 신협 본연의 역할을 살리려고 시작한 것은 지난 1월 설립한 신협 사회공헌재단이다.
문 회장은 "재단 구성원 1만4천여 명이 한 달에 1만원씩 기부해 조성한 연간 약20억원으로 자선사업을 펼친다"며 "다른 기업처럼 장사하고 남은 이윤이 아니라 순수한 기부금으로 자선사업을 하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고 힘줘 말했다.
문 회장은 올해 하반기에 시범도입할 예정인 '희망대출' '자립대출' '자조적금'(이상 가칭) 등 세 가지를 재단의 핵심 사업으로 소개했다.
희망대출은 단위조합에서 추천받은 9∼10등급 신용 등급자에게 무이자, 무담보로 자립에 필요한 300만원을 빌려주는 것이다.
희망대출을 갚고 더 나아가 목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자립대출을 해준다. 일반대출과 똑같이 이자율을 적용하되 재단에서 이자율 가운데 절반을 부담해 주는 방식이다.
자립대출까지 성실히 갚은 사람에게는 재단에서 우대 금리를 붙여주는 자조적금을 구상하고 있다.
문 회장은 "가장 낮은 신용등급인 9∼10등급은 사회에서 너무 격리돼 있다"며 "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게 신협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문 회장은 기본 정신만 살린다면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협 설립 초창기에는 삶이 너무 힘들어 야반도주하더라도 신협에 진 빚만큼은 갚고 나갔을 정도로 신협과 조합원 간의 관계는 끈끈했다"며 "희망대출을 받는 사람들도 고마움 때문에 빚을 떼어먹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정말로 사정이 어려워 빚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생기면 재단이 70%, 나머지 30%는 추천 조합에서 대손상각해 주는 시스템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신협이 본래의 정신을 살리려면 신협에 맞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문 회장은 "신협이 은행과 비슷한 금리의 상품을 내놓는 등 은행을 흉내 내게된 것은 사회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어떻게 해서든 이익을 내려고 했다는 점"이라며"이를 막으려면 협동조합 정신에 맞는 금융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 회장은 13일 열린 세계신협협의회 임원 선거에서 2년 임기의 이사로 당선됐다.
세계신협협의회 이사는 미국 4명, 캐나다 2명 등으로 아시아에선 문 회장이 유일하다.
문 회장은 "한국 신협이 세계신협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돼 기쁘게생각한다"며 "두렵고 어려운 자리지만 한국·아시아 신협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갖고 일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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