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최대주주인데 정무위원…금융권 인사들 "만남 피할 수 없었다" 볼멘소리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부실화된 경남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얻어낼 목적으로 금융권 최고위급을 두루 접촉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가 금융권 고위 인사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금융당국은 물론 은행에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갑 중의 갑'인 국회 정무위원을 맡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불거지고 나서 성 전 회장의 과거 행적들은 자연스레 비리 의혹과 맞물려 재해석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각에선 국회의원이 사적 이익을 관철할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분야에선 의정활동을 아예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지적이 나오고 있다.
◇ 잇단 접촉 의혹에 해당 인사들 "만나달라 해서" 19일 금융권 소식통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2013년 10월 경남기업의 3차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개시를 전후해 금융당국과 금융기관 최고위급 인사들을 전방위로접촉했거나 접촉을 시도했다.
접촉의 목적은 당시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계기로 유동성 위기를 겪던 경남기업에 자금을 대도록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당시 경남기업에 70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하도록 시중은행들을 압박한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성 전 회장을 만났던 당시 금감원 인사들은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도 금감원이 지난해 1월 신한은행으로부터 경남기업 실사결과를 중간 보고받는 자리에서 대주주인 성 전 회장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처리하라고 요구했는지 최근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내 지난해 2월 경남기업은 채권단으로부터 무상감자 없는 1천억원의 출자전환과 3천800억원의 신규자금 수혈을 포함해 6천300억원대 자금 지원을 약속받았다.
누가 봐도 특혜성 지원으로 비쳐질 수 있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은 정상 절차에 따른 것이라며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남기업 채권이 많은 수출입은행도 특혜 대출 의혹에 휩싸여 있다.
수출입은행의 대출채권은 2천172억원인데, 3년 전 160억원대에서 급격히 불어난과정이 의혹의 핵심이다.
수출입은행은 이에 대해 "주된 이유는 지난해 초 채권단 공동 기업구조조정대출(수출입은행 분담분 1천200억원대) 등에 따른 것"이라며 "2013년에도 600억~700억원가량 늘었는데, 이는 중소중견 건설사 지원을 강화하는 정부 정책 기조에 부응해해외 건설프로젝트 지원차 승인한 정상적인 대출"이라고 설명했다.
성 전 회장의 접촉 대상은 당시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우리금융 회장,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산업은행장, 수출입은행장 등 최고위급이 망라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당시 모 금융지주 회장이던 A씨는 "보자고 연락이 왔는데 (정무위원인데) 어떻게 만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잘 봐달라는 취지의 발언이 있었던 것같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최고위급 인사이던 B씨는 "건설업계가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고 했다.
당시 은행장이던 C씨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답변을 꺼렸다.
◇ "정무위원이라 피할 수 없었다"…제도적 보완책 마련해야 성 전 회장이 기업을 경영하는 신분이면서 금융권 최고위급 인사들을 마음껏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당선된 후 금융당국을 소관부처로 둔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한 영향이 컸다.
그는 선진통일당 원내대표이면서 정무위원이 됐고 2012년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으로 합쳐지면서 여당 정무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정무위의 피감기관은 국무조정실, 공정거래위, 금융위, 금감원 등에 걸쳐 있다.
은행 위에 금융당국이, 그 위에 정무위가 있는 셈이다. 은행은 경남기업에 대해갑(甲)의 입장일 수 있지만 금융당국에는 을(乙)의 처지이다. 국회의원은 금융당국에 갑이고, 국회 정무위원은 '슈퍼 갑'이 되는 역학관계를 이룬다.
성 전 회장을 만난 금융권 인사들이 "정무위원이 보자는데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느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일 그의 협조요청이 있었다면 청탁보다는 압력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구조로볼 수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결과론적인 얘기이지만 그가 정무위원이 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국회법상 국회의원은 국무총리나 국무위원 외에는 겸직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따라서 다른 직이 있으면 임기 개시일 전까지 휴직 또는 사직해야 한다.
성 전 회장도 이런 규정 때문에 당시 경남기업 등기이사직에서는 물러났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경남기업 지분 21.5%를 보유한 최대주주의 지위를 그대로유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회사경영에서 손을 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성 전 회장은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가 정무위에서 활동하려면 지분을팔거나 백지신탁하라고 결정했음에도 이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채권단이 경남기업 지원을 결정하자 경제개혁연대는 그의 최대주주지위 유지를 문제 삼았다.
금융감독 당국과 채권단이 자금지원 결정 과정에서 의원 신분인 성 전 회장을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국회법이 겸직금지 조항을, 공직자윤리법이 백지신탁 규정을 두고 있지만이들 규정이 성 전 회장의 사례에서는 부정을 견제하는 데 있어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셈이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이 특정 상임위에서 활동할 때 자격 기준을 한층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은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의 요청으로 의장이 선임 또는 개선(改選)하도록 돼 있는데, 그 과정에서 해당 상임위원회에 사적 이익이 걸릴 만한 의원이있다면 완벽하게 걸러지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일반 기업인이 로비하는 것과 기업인 출신 의원이 해당상임위에서 로비하는 것은 그 영향력에서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익상충의 문제가 있으므로 (성 전 회장은) 정무위를 기피했어야맞다"며 "개인의 도덕적 판단을 신뢰하기 어려우므로 국회 차원의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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