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출연 관행보다는 제도적 보완책 마련해야"
채권단이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일가의 추가 사재출연을 요구한데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그룹경영에서 총수의 막강한 경영권을 감안하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지만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다만, 전문가들은 기업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마다 나오는 채권단의 사재출연요구 관행이 부실채권 해소의 근원책이 아니라면서 제도적·시스템적인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채권단 사재출연 요구 '정당하다' vs '지나치다' 권영준 경희대 국제금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기업총수들이 많은 권한을 누리면서도 회사가 어려울 때 진정성을 갖고 책임지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기업에 대해 10~20%의 지분을 갖고 경영을 전횡하다가 경영이 실패하면 책임을법인에 떠넘기는 도덕적 해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사주가 경영실패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채권단의 채권부담은국민부담이기도 하다"며 "최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이런 취지의 판례가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지수 변호사도 한국적 상황에서 채권단이 대주주에게 사재출연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채권단의 기업지원은 그룹 총수의 이해득실과 관계가 있지, 핵심주주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며 "채권단이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사재출연의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김미해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채권단이 총수의 사재출연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단언했다.
사재출연은 그룹이나 총수 차원에서 기업을 살리겠다든지, 앞으로의 장래성을보고 투자하는 것으로 자율적인 결정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도 이사로서의 경영책임을 적극적으로인정하지만 그건 소송 등을 통해 책임을 져야지 사재출연이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며 "잘못된 관행"이라고 잘라 말했다.
◇현행 출연요구 방식은 문제…시스템적으로 해법 풀어야 사재출연의 당위성에 대한 의견은 달랐지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채권단 관행을제도적, 경영 시스템 측면에서 정비해야 한다는데는 견해가 일치했다.
이지수 변호사는 "그룹이라는 것은 한국의 상황에서 부인할 수 없는 실체"라며"개별회사에 대한 규율만 상법에 있고 기업집단에 따른 책임과 규율은 없다. 이러한현실과 법제도의 갭을 메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체제가 마련되면 총수입장에서도 예측 가능성을 감안해 제한된 범위에서 법적권한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성인 교수는 "법정관리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회생가능성이 있으면 법원이 무분별한 채권단의 경영개입을 줄이고 경영권을 유지해주는 방식으로 회생을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기업들이 법정관리로 가지 않기 위해 워크아웃을 통한 구조조정에 적극나서고 경영이 악화하는 것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권영준 교수는 사외이사 시스템을 고쳐 재벌총수의 지배패턴을 바꿔야 한다고주장했다.
권 교수는 "지금은 총수의 황제경영을 견제해야 하는 사외이사들로 관료출신 등총수 입맛에 맞는 인물들이 많이 선임된다"며 "비정부기구(NGO)나 언론인 출신 등출신을 다양화해 감시시스템을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 책임도 물어야"…동부측 금산분리 주장은 "잘못" 전문가들은 기업부실이 발생하면 채권단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성인 교수는 "산은의 동부그룹 지원은 오래전부터 한 것이다. 당연히 산은도책임이 있다.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법정으로 가면 산은은 채권자로서의 이익을 보호받지만 사실 동부 경영에 개입해서 손실난 부분이 있다면 배상 등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윤석헌 교수도 "채권단의 사재출연요구는 급속성장과정에서 쌓인 적폐"라며 "채권단도 의사결정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경영부실의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고설명했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측이 아들 남호씨의 동부화재[005830] 지분(14.06%)을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하는데 반대 이유로 제기한 '금산분리 원칙 위배' 주장에 대해서는 일리는 있지만 법정으로 가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지수 변호사는 "김 회장측이 금산분리의 원칙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이는 금융자본을 산업자본의 경영권이나 지배력 확장에 사용하지 말라는 취지이지 총수의 책임이나 사재출연 문제와 연관시키지 말라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윤석헌 교수도 "국가가 요구한대로 김 회장 아들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상속을받고 금산분리 선을 그어서 운영을 했다면 일리는 있지만 금융쪽을 성장시키는데 아들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의문"이라고 거들었다.
김준기 회장측이 채권단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권영준 교수는 "현재 은행권의 경영상황이 좋지 않고 계열사가 법정관리로 가면오너일가가 사법적 책임까지 져야 하기 때문에 결국 채권단의 요구를 김회장측이 받아들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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