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이사회 내부갈등의 직접적 배경에는 은행 전산시스템 교체 결정 과정에서 나온 석연치 않은 의혹에 대한 은행 내부 감사보고서가 있다.
감사보고서는 주 전산시스템 교체의 판단 근거가 된 보고서의 자료가 왜곡·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KB지주 측은 공개입찰이 적용돼 특혜 시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사안을 두고 정병기 국민은행 감사가 감사권을 남용해 이사회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전산시스템 교체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즉시 특별검사에 착수한 상태다.
20일 금융감독원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지난달 24일 이사회를 통과한전산시스템 교체 안건과 관련해 안건 보고서에 포함된 유닉스 시스템 도입비용의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지난달 말부터 내부 감사에 착수했다.
은행 감사팀은 16일까지 진행된 내부감사를 통해 주 전산기 결정을 위한 보고서작성 과정에서 유닉스 기반 시스템의 가격 경쟁력과 잠재 리스크 요인을 의도적으로축소·누락한 정황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감사보고서에 담았다. 은행 시스템에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성능이 떨어지는 하드웨어 조합을 기반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시스템 전환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위험 요인들을 알고서도 보고서에 누락했다는것이다.
은행 감사팀은 이런 자료 왜곡 과정에 KB금융지주가 깊이 관여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 결과를 보고받은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19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다. 감사결과 보고서 채택의 건이 주요 안건이었다.
그러나 긴급 이사회에서는 보고서 채택을 주장한 이 행장 및 정 감사 측과 보고서 채택을 거부한 사외이사 측이 맞서 결국 보고가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이사들간 고성이 오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서는 사외이사 6명이 임영록 KB지주 회장의 심중과 맞지 않는 이 행장의 독자적 행보를 견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국민은행은 지난달 24일 이사회를 열어 사외이사 6명의 주도로 현행 IBM메인프레임 전산시스템을 유닉스 기반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주 전산기 교체 방안을의결한 바 있다.
이건호 행장은 19일 긴급이사회 결과와 감사보고서를 주요경영사항으로 금감원에 보고했고, 문제 상황을 감지한 금감원이 즉시 검사역을 파견해 검사에 착수한 상태다.
KB금융지주측은 은행측의 이런 행동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선정과 관련해 이사회에 앞서 충분한 내부 조율이 안 된 점은 있었다"며 "다만 이를 금감원에 검사를 요청해 부부싸움을 시어머니에게 알린 격이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IBM 측에서 국민은행과 거래가 끊길 것을 우려해 막판에 훼방을놓은 것"이라며 "이것이 졸지에 임 회장과 이 행장 간의 갈등설로 비치게 됐다"고덧붙였다.
IBM 측이 이사회 직전 유닉스 수준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이 행장에게 보냈고 이 행장이 이를 정 감사에게 검토해 보라고 한 것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다는 설명이다.
김재연 KB지주 최고정보책임자(CIO·전무)도 19일 입장을 내고 "IBM 코리아 대표의 사적인 이메일을 받은 은행 경영진이 공식 절차 없이 재검토를 지시한 것이 이번 해프닝의 시발"이라며 "정 상임감사는 은행 경영협의회와 이사회에서 결의된 사항에 대해 자의적인 감사권을 남용해 이사회를 무력화시키려 했다"고 비판했다.
금감원은 19일 특별 검사에 들어간 데 이어 내달 말 대규모 검사인력을 투입해국민은행 전체에 대한 경영 진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세한 내역은 조사해봐야겠지만 전산시스템 선정 절차상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사회 결정 과정에서도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것도 문제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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