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소재산업 왜 강한지 아십니까?

입력 2019-08-19 17:24
수정 2019-08-20 01:02
100년 넘는 기업 수두룩
'모노즈쿠리' 전통과 결합
'축적의 시간'이 높은 진입장벽


[ 김동욱 기자 ] 쇼와덴코 1903년, 스미토모화학 1913년, 스텔라케미파 1916년….

지난달 일본 정부의 전격적인 대한(對韓) 수출규제 조치로 주목받은 3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를 생산하는 일본 업체들의 창립연도다. 적지 않은 일본 소재업체들의 역사가 100년 안팎에 이른다. 또 긴 역사 못지않게 반도체 소재, 합성수지, 석유화학, 불소화합물, 의약품 등 관련 산업분야에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오랜 기간 화학분야 한우물을 판 ‘깊이’에, 다양한 제품군이라는 ‘넓이’까지 겸비하고 있어 수출 규제를 받는 한국으로선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소재산업은 관련 기업 3만 개, 종사자 120만 명, 매출 56조엔(약 637조원), 창출 부가가치 20조엔(약 227조원)에 달하는 일본의 선도 산업 중 하나다. 소재산업 부가가치의 77%, 고용인원의 70%, 기업의 60%를 화학 관련 산업이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소재 분야에서 이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로 소재산업 자체의 특징과 일본 특유의 전통이 맞물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보기술(IT)산업 등 상당수 산업은 독창적 기술과 아이디어로 순식간에 업계 구도와 주도권이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소재산업은 이 같은 불연속적 기술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여전히 상당한 시간 축적이 필요한 ‘아날로그’ 성격이 강하다. 여기에 한 분야에 천착하며 결함이 없는 제품을 생산하는 ‘모노즈쿠리’(좋은 물건 만들기) 전통이 결합해 일본 업체들이 소재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모리타화학공업이 꼽힌다. 모리타 겐조 창업자는 불화수소가 들어간 항아리를 옮기다 빗길에 넘어져 불화수소가 유출돼 목숨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서구만이 갖고 있던 불소화합물 자체 생산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같은 집념에 힘입어 모리타화학공업은 20세기 초 자체 생산에 성공했다.

소재 특성상 역설계나 복제가 쉽지 않다는 점도 일본 업체들이 오랜 기간 이 시장을 장악해온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본 소재업체들은 주요 생산제품의 배합 및 처리공정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면서 기술적 진입장벽을 유지했다. 소재 핵심기술을 확보한 것은 신제품을 선보이는 데도 유리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