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우의 데스크 시각] 여행의 자유를 許하라

입력 2019-08-18 17:54
이관우 레저스포츠산업부장


[ 이관우 기자 ]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졌다. 한·일 양국 정부가 정치적 ‘치킨게임’을 시작했다. 과거사에 기반한 비경제적 문제가 양보 없는 갈등의 불씨가 됐다. 그러는 사이 애먼 관광산업이 패닉에 휩싸였다.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가 커 꼭 키워야 할 산업”(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라던 그 유망 산업이다. “이대로 가다간 시장이 반 토막 날 것 같다”는 아우성이 커진다. 주식시장에선 항공, 여행 등 관련주가 폭락했다. 국내 항공사 6곳의 시가총액이 두 달여 만에 1조3000억원 증발했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질수록 국내 여행사들의 가슴은 타들어간다. 그래도 벙어리 냉가슴이다. 목소리를 냈다간 자칫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어서다. “과거사 문제는 불매운동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정치·외교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주장은 성난 민심에 파묻힌다. “문화교류, 인적교류는 갈등 해소 이후를 위해서라도 이어져야 한다”고 하면 “지금이 어느 때인데”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속 타는 여행·관광업계

대체 상품에도 기대하지 못하는 눈치다. 중국 홍콩 대만 베트남 필리핀 등 지역 상품을 개발해 일본 대체 상품으로 파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일본 여행 상품의 특이성 때문이다. 한 대형 여행사 간부는 “일본 특유의 디테일한 서비스와 깔끔한 음식, 다양한 지역적 특색에서 느끼는 매력과 비슷한 ‘가성비’를 갖춘 여행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은 한국인에게 기본적으로 ‘실패하지 않는 여행지’라는 인식이 강하다. 일본 대신 다른 여행지를 당장 택하느니 돈을 아꼈다가 한·일 갈등이 해소된 이후 가겠다는 유보적 기류도 생각보다 강하다고 한다.

그나마 대체 후보지인 홍콩도 범죄인 인도와 관련한 반중국 시위로 일촉즉발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환율까지 높아져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게 여행사들의 이구동성이다.

기댈 곳도 없다. 정부가 부품 소재 제조업처럼 국산화 지원 같은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한 것도 아니어서다. 불매운동이 민간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알아서 견디라”는 듯 방치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볼멘소리다. 국내 여행을 활성화하겠다는 대책이 나왔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마뜩잖아한다. 한 아웃바운드(해외송출) 전문 여행업계 관계자는 “일본 여행 보이콧으로 반사이익을 본 일부 내수 중심 여행업계를 지원하는 것은 배고픈 아이가 따로 있는데 배부른 아이에게 밥을 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여행산업 구조 개선 계기로

이번 기회에 만성적인 여행수지 적자를 개선할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든, 매력적인 국가 만들기에 나서든 여행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적 균형과 배려가 아쉽다는 얘기다. 그러잖아도 여행수지는 만성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은 여행수지에서 지난해 사상 최대인 166억5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여행산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다. 교통 쇼핑 요식업 등 연관 산업과의 시너지가 커서다. ‘한류 인기’처럼 한 번 흐름을 타면 인기 소비재처럼 폭발적인 시장팽창도 가능하다.

그 바탕이 ‘이동의 자유’다. 누군가의 이동을 권할 수는 있어도, 강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한 여행업계 대표의 말이다.

“자발적인 불매운동엔 이의가 없다. 일부 정치권과 단체,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를 부추기는 듯한 액션을 취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만큼 이동의 자유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