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논리에 교육 하향 평준화
초등교부터 기초 다시 쌓아야
[ 김남영 기자 ]
“엉망진창입니다. 나라 장래가 걱정입니다.”
고등과학원장을 지낸 금종해 대한수학회장(사진)은 현재 중·고교 수학교육이 적절하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이렇게 답했다. 그의 말대로 고교 수학에선 미분·적분, 행렬·벡터 등 유망한 기술의 기반이 되는 내용이 하나둘씩 필수과정에서 빠진 지 오래다.
금 회장은 “다루기 힘든 빅데이터를 의미 있는 작은 데이터로 분할하는 게 수학”이라며 “수학적으로 사고하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인재 양성이 절실한데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불안해지는데, AI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그만큼 고급 수학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고급 수학 능력은 대학 이후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초·중·고교 시절부터 차근차근 기초를 쌓아야만 가능하다는 게 금 회장의 지론이다. 그는 “수학 교육에도 어려운 건 무조건 빼자는 ‘특정 진영의 이상한 정치논리’가 팽배하다”며 “이 상태론 국가 경쟁력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수년 전부터 불어온 일부 수학 열풍은 일시적 트렌드일 뿐 본질적인 수학 경쟁력이 높아진 것은 아니라고 금 회장은 평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퀀트’로 상징되는 금융수학이 각광받고 르네상스테크놀로지 등 일부 기업의 성공 때문에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일부 한국 학생(과학고교생)이 상위권에 드는 것은 크게 의미를 둘 일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주어진 문제를 푸는 올림피아드와 AI 설계 등에 필요한 수학적 상상력은 별개라고 했다.
금 회장은 수학의 무궁무진한 응용분야 중 하나로 ‘부호이론’을 들었다. 부호이론은 우주영상 전송, 디지털 음원 보정 등에 활용된다. 우주공간 촬영사진을 그대로 지구로 보내면 전부 깨져 식별이 안 된다.
그러나 수학적 구조에 담아 전송하면 그대로 복원이 가능하다. 세 점의 좌표를 알면 2차함수 그래프를 그릴 수 있는 원리와 상통한다. 음향기기에서 잡음을 제거하고 음질을 높이는 기술도 부호이론에 기반해 있다. 책 뒤에 있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도 부호이론의 산물이다.
그는 지난해 4월부터 시행 중인 ‘과학·수학·정보교육 진흥법’이 유명무실해졌다고 아쉬워했다. 막상 법은 통과됐으나 ‘평준화’ 정치논리에 빠진 교육현장 때문에 실행할 수 있는 후속조치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