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지갑 시대…은행권 '디지털머니' 개발 속도전

입력 2019-08-13 17:39
수정 2019-08-14 01:49
사용자 24억명 보유한 페이스북
디지털머니 발행 예고하자
보수적인 은행권 '위기 의식'

은행들 앞다퉈 "변해야 산다"


[ 정지은 기자 ]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모습.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아니고선 현금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결제 수단이 현금에서 카드로, 다시 카드에서 간편결제(페이)로 빠르게 진화한 데 따른 변화다. 보수적인 은행권도 ‘전자지갑(e월렛)’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금융 거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생겨나고 있다.


리브라 출격 선언에 은행권 출렁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13일 “요즘 국내 은행권의 최대 화두는 디지털머니로 거래하는 전자지갑”이라며 “그동안 금융 거래의 일부에 불과했던 디지털머니와 전자지갑에 대한 주목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도 “내년엔 디지털 사업 핵심 과제로 전자지갑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며 “모바일뱅킹과는 또 다른 차원의 금융결제 생태계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이 지난 6월 디지털머니 ‘리브라’ 출시를 선언한 게 은행권을 긴장시킨 계기로 꼽힌다. 내년 상반기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달러 연동 디지털머니를 출시해 송금, 결제 등 금융 거래 전반에 활용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파장은 컸다. 24억 명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이 디지털머니를 발행하고 운영하면 파급력이 클 것이란 관측에서다.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국가별 통화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결국 페이스북은 규제 우려가 해소될 때까지 리브라 발행 계획을 미루기로 했다. 당장은 계획이 불발됐지만 국내 은행권엔 큰 자극제가 됐다는 전언이다.

“변해야 산다”…고민 커진 금융권

올해를 기점으로 은행권의 디지털머니 관련 전략이 한층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KEB하나은행은 디지털머니 ‘하나머니’를 개발해 전자지갑 활성화에 일찌감치 나서고 있다. 올해 말 하나머니로 해외 주식을 매입하는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하나머니 전용 투자 상품도 기획 중이다. 지난 4월엔 해외에서 하나머니로 결제할 수 있는 ‘글로벌 로열티 네트워크(GLN)’ 서비스를 선보였다.

국민은행은 이달부터 서울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 디지털머니로 결제하는 ‘커뮤니티화폐(마곡페이)’를 시범 운영 중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전자지갑 관련 신사업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머니 ‘위비코인’을 개발한 상태다. 상용화 시기는 미정이지만, 언제든 때가 됐을 때 바로 출시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는 설명이다. 신한은행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가상화폐, 신용정보 등 디지털자산을 보관해 주는 ‘모바일 금고 서비스’를 개발했다.

은행권에선 이제 정보기술(IT), 핀테크(금융기술) 등 다른 영역 업체들과의 경쟁이 본격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디지털 전환’이 신한·국민·KEB하나·우리·농협·기업 등 주요 은행의 올해 신년사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이유다. 기존 사업 방식을 디지털 중심의 새로운 관점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디지털화폐 등장’이란 보고서를 통해 “돈의 가장 전통적인 형태인 현금과 은행 예금이 디지털화폐와 힘든 경쟁에 직면했고 심지어 패배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 보고서엔 “기존 은행이 생존하려면 서둘러 변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