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치는 사업 탓에 지역 충돌
지자체들 "일단 유치하자"
입지 조건 등 고려않고 뛰어들어
"과잉 투자·자원 낭비 우려"
[ 노경목 기자 ] 강원도가 13일 디피코 등 9개 중소기업과 협약을 맺고 횡성에서 ‘강원형 일자리’ 문을 연다. 광주형과 구미형에 이어 세 번째 지역형 일자리다. 지역균형발전과 연계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일자리 정책인 만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등이 협약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지역형 일자리 관련 사업이 특정 업종에 편중되면서 자원 낭비를 초래할 위험이 크는 우려가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한 ‘기업도시’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업 편중, 지역 갈등까지 불러
지역형 일자리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협약을 기초로 한다. 지자체의 좋은 투자환경 조성을 조건으로 기업은 설비 투자를 하고 지역 인재를 채용한다. 투자를 통해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는 기업과 지자체 간 협의로 결정한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만들어진 지역형 일자리는 모두 전기차 관련이다. 현대자동차가 투자하는 광주형은 전기차 완성차, LG화학의 구미형은 전기차 배터리 소재 생산공장이다. 이번 강원형 일자리 역시 0.5t 안팎의 초소형 전기차 제조가 목표다.
협약을 추진하고 있는 다른 지역형 일자리도 대부분 비슷하다. 현대모비스는 울산형 일자리에서 전기차 부품, 차량 부품업체 엠에스그룹은 군산형을 통해 전기차와 전기차 부품 제조를 추진한다. 포항형은 전기차 배터리, 경주형은 전기차 제조가 목표다.
이처럼 전기차 관련 사업에 집중되면서 지역 간 갈등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광주지회는 지난 12일 “울산형 일자리 추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울산형 일자리를 통해 전기차 부품을 따로 생산하면 광주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2월 광주형 일자리 협약 당시 울산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강원형 일자리는 초소형 전기차 제조를 지역 핵심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전남 영광과 전북 김제의 사업과 겹친다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정치 논리가 앞서 비효율 초래”
지역형 일자리 사업이 전기차에 유독 편중된 것은 전기차 산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전기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고, 핵심 부품인 모터와 배터리는 사다 쓸 수 있어 차량 설계기술만 있으면 쉽게 뛰어들 수 있다”며 “미래 산업으로 얘기되는 분야 중 가시적인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도 이유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자체들이 입지 조건과 사업자의 역량 등을 고려하지 않고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면서 과잉 투자와 자원 낭비를 부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진입 장벽은 낮지만 차량 양산에는 1000억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 지원을 등에 업고 초소형 전기차 업체만 3~4곳 생겼지만 국내에 그만한 시장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렇다 보니 지역형 일자리 사업이 노무현 정부 시절 기업도시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05년 정부는 민간 기업의 지방 유치를 목표로 충남 태안 등 6곳을 기업도시로 지정했다. 하지만 열악한 입지 조건 등을 이유로 기업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두 곳이 지정 철회되는 등 활성화에 실패했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 논리보다는 ‘뭐라도 유치하고 보자’는 정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형 일자리도 위험이 크다”며 “전기차 사업은 중요한 미래 먹거리인 만큼 종합적인 전략을 세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