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에 빠진 재건축 단지
철거 끝난 강남 재건축 단지
"상한제보다 HUG 기준이 유리
두 달내 분양 끝내자" 안간힘
[ 이유정/구민기 기자 ] 정부가 오는 10월 초까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위한 준비를 끝내기로 함에 따라 서울 시내 주요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패닉’에 빠져들고 있다. 이미 철거가 끝난 단지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 전까지 남은 두 달 안에 분양을 끝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아직 이주를 시작하지 않은 단지는 설계 변경 등을 통해 조합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 찾기에 나섰다. 관리처분인가 절차를 마친 상당수 조합은 ‘소급 입법’의 부당함을 제기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복잡해진 정비사업 셈법
13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서울 시내 10여 개 재건축단지가 10월 안에 서둘러 일반분양에 나서기 위한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으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 심사보다 분양가격이 더 깎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강남구 삼성동 상아2차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래미안 라클래시’, 개포동의 ‘개포주공4단지’ 등 강남권에 있으면서 이미 철거가 끝난 재건축 단지들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을 검토했던 동작구 흑석3구역 등 재개발 단지도 선분양으로 다시 선회해 10월 내 분양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분양가심의위원회 심사 등을 활용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했을 때의 분양가가 HUG 기준보다 낮게 책정되도록 관리할 계획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강남 사업장은 분양가 상한제보다 HUG의 통제를 받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이주 절차에 들어갔지만 물리적으로 10월 내 분양이 어려운 단지들은 속수무책이다. 가구당 수천만원에서 1억원 안팎의 분담금을 더 내게 생겨서다. 일반분양 물량이 5000가구에 달하는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를 비롯해 송파구 잠실 미성·크로바, 개포주공1단지, 반포 원베일리(한신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등이 그런 사례다.
둔촌주공 사례를 보면 HUG가 요구한 분양가는 3.3㎡당 2600만원으로, 주변 새 아파트 시세의 55.6% 수준에 불과하다. 상한제를 적용받으면 2000만원대 초반까지 분양가가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 당초 조합이 예상한 분양가(3800만원대)를 감안하면 전체 조합원의 손실액이 1조1000억원에 달한다.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이후 아직 이주에 들어가지 않은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와 반포 한신4차, 방배13구역 등 당장 분양 시기가 도래하지 않은 사업장은 설계 변경 등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건설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조경, 외벽, 커뮤니티 시설 등의 수준을 낮춰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다. 한남뉴타운과 흑석뉴타운,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알짜 재개발 사업장에서도 마이너스 옵션 도입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건설사가 아파트 골조공사와 외부 미장·마감공사까지만 하고 분양하는 방식을 말한다.
7만여 가구 조합원 ‘반발’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와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비롯한 사업 초기 단지들은 속도 조절에 나서는 것은 물론 아예 정비사업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 대 1 재건축으로 선회하거나 조합원 배정 면적을 넓히는 식이다. 일반분양 물량을 줄여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아예 사업을 접는 단지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대치쌍용1·2차 아파트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각종 규제로 이미 사업을 중단했다.
정비사업은 아니지만 ‘힐스테이트 세운’ ‘브라이튼여의도’ ‘용산 유엔사부지’ 등 도심 내 대규모 개발사업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임대 후 분양 등 사업방식 자체를 변경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단지별로 수익성을 높일 우회로를 찾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며 “사업 초기 단계 단지에선 추진 동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헌법소원 등 법정공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구철 주거환경연합 조합경영지원단장은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까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것은 소급 입법의 문제가 있다”며 “대규모 청원과 시위, 소송이 잇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구민기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