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 컨트롤러로 항만 안전성 획기적 개선"

입력 2019-08-08 16:25
수정 2019-08-08 16:59
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 김낙훈 기자 ] 산업 현장에서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신기술이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 기업엔 늘 기회가 열려 있다. 경기 안양의 서호전기는 최근 싱가포르 신항만 크레인 자동화를 위한 컨트롤러 공급 건을 따냈다. 일본 독일 스위스의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 수주한 이 프로젝트는 규모가 700억원이 넘는다. 신기술이 밑받침됐다. 경기 성남시 판교의 에스앤하이쿨은 ‘냉장용 쇼케이스 애프터서비스(AS) 및 관리 시스템’이라는 모바일 플랫폼을 개발했다. 신기술 및 새 비즈니스 모델로 승부를 걸고 있는 이들 기업의 대표를 만나봤다.


김승남 서호전기 사장
싱가포르 700억 프로젝트 수주
항만자동화 시스템 20개國 공급

부산항 등 항만에는 컨테이너가 많이 적재돼 있다. 수출입 화물은 주로 컨테이너에 실려 운반된다. 이를 옮기는 크레인은 수동형과 자동형으로 나뉜다. 수동형은 운전자가 크레인을 작동하고 자동형은 컨트롤러가 이를 움직인다. 경기 안양시의 서호전기(회장 이상호·사장 김승남)는 이 중 크레인 자동운전용 컨트롤러를 생산하는 업체다.

이 회사에 최근 낭보가 들려왔다. 싱가포르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신항만 공사 중 대형 자동 크레인의 컨트롤러를 수주한 것이다. 자동 크레인의 두뇌에 해당한다. 3년에 걸쳐 납품하게 될 컨트롤러는 700억원어치가 넘는다. 김승남 사장(60)은 “이번에 수주한 금액은 회사의 연매출을 훨씬 뛰어넘을 뿐 아니라 일본 독일 스위스의 세계적인 업체와 경쟁해 따낸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경쟁에서 이긴 데는 이유가 있다. 요즘 신항만은 무인 자동화 싸움이다. 크레인을 무인 자동으로 운전하면 작업 환경이 개선되고 안전사고가 줄어서다. 이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게 컨트롤러다. 이 회사에 승리를 안겨준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도 ‘딥러닝 기술을 이용한 항만 자동화 관련 영상인식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기존 자동화에서 한걸음 나아가 항만 적재·하역 작업 중 안전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무인 자동화지만 실제 눈으로 보는 것처럼 정확하게 판단하고 작업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서호전기가 최초로 개발했다.

김 사장은 “이 시스템은 컨테이너와 트럭, 바닥 마킹, 사람 등을 영상으로 신속히 인식해 항만에서 컨테이너를 적재하거나 하역할 때 위험 여부를 즉각 알려주고 자동화 장비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신항만은 싱가포르항만공사가 추진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항만 프로젝트다. 총 64선석 규모다. 동시에 64척의 배가 접안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부산신항이 갖춘 18선석의 3배를 넘는다. 이번에 발주한 것은 6선석 분량이다. 여기엔 84대의 ‘레일 위를 달리는 갠트리 크레인(RMG)’과 ‘이중(double) 트롤리 안벽크레인’ 24대가 설치된다. 이 크레인을 운전하는 컨트롤러를 서호전기가 공급하게 된다. 첨단설비인 이중 트롤리 안벽크레인은 현대삼호중공업과 서호전기가 함께 공급한다.

신항만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다. 김 사장은 “앞으로 20년간 이어질 후속 프로젝트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이미 싱가포르의 ‘파시르 판장’ 자동화 터미널 개발계획 중 총 10선석 분량의 ‘자동화 야드크레인’의 컨트롤러를 수주해 성공적으로 구축한 경험이 있다.

서호전기는 항만크레인 컨트롤러와 인버터를 생산하는 업체다. 국내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 항만 분야에선 꽤 유명하다. 최근 5년 이상 해외 프로젝트가 80%를 넘어선다. 경기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온 이상호 회장(72)이 1981년 창업했다. 이 회장은 인버터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김 사장은 항만 자동화 사업을 이끌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와 동 대학원에서 자동제어를 전공한 뒤 알스톰에서 12년간 근무하고 1990년대 말 서호전기로 옮겼다. 이 회사는 싱가포르 멕시코 중국 등 20여 개국에 이 시스템을 공급해왔다.

"업소용 냉장고 사후관리, 앱으로 간편하게"


이미호 에스앤하이쿨 대표
우버 기사처럼 신속 서비스 가능
정액제 도입해 수리비 불신 없애

경기 성남시 서판교에서 운중터널을 지나 용인 고기리 쪽으로 10분 정도 달리면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이다. 이곳에 에스앤하이쿨(대표 이미호·60)이 자리잡고 있다. 회사 안으로 들어가면 전국 각지에서 수거해온 냉장용 쇼케이스(일명 업소용 냉장고)가 가득 차 있다.

에스앤하이쿨은 음식점이나 술집 등이 폐업하면 냉장용 쇼케이스를 철거해 수리한 뒤 중고 제품으로 다시 파는 사업을 한다. 사명의 에스엔은 성남의 영어 이니셜이다. 이 회사는 1959년생 동갑내기 죽마고우인 이미호 대표와 이종호 고문(삼우에프아이디 대표)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이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한화그룹에서 일하다 2017년 12월 에스앤하이쿨을 설립했다. 여기엔 이 고문의 도움이 컸다. 이 고문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1985년 두산그룹에 입사해 2006년 퇴직한 뒤 주류 유통 도매업에 종사했다. 2014년 냉장고 유통 서비스로 업종 전환한 뒤 삼우에프아이디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업소용 냉장용 쇼케이스의 관리 문제를 개선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이들 제품의 ‘애프터서비스(AS)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대표는 “전국에 냉장용 쇼케이스를 설치한 식당과 주점 등의 업소가 60만 개에 이른다”며 “이들이 설치한 쇼케이스는 한 곳당 평균 3개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당구장 볼링장 게임장 등에서 쓰는 것을 합치면 업소의 냉장용 쇼케이스는 모두 200만 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냉장용 쇼케이스가 고장나면 곧장 수리해야 한다. 자칫 그날 장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문제는 즉각 수리되지 않을 때가 있고 수리비용도 들쭉날쭉하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에스앤하이쿨은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섰다. 냉장용 쇼케이스 AS 및 관리 시스템을 모바일 플랫폼(앱·응용프로그램)으로 개발한 것이다. 원리는 우버와 비슷하다. 특정 업소에서 고장 신고가 들어오면 앱을 통해 가장 먼저 수리 의사를 밝힌 기사에게 우선권을 준다. 수리비는 일괄적으로 4만4000원이다. 부가세를 합친 금액이다. 다만 컴프레서와 같은 핵심 부품이 고장났을 땐 예외다. 이때는 별도 금액을 받고 냉장용 쇼케이스를 아예 교체해준다.

정액제로 운영하는 것은 수리비와 관련한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다. 이 고문은 “냉장고가 고장나도 업소 주인은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 알 수 없고 수리비가 적당한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출장비를 포함해 정액제로 책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버 기사가 도착하듯 신속하게 AS 기사가 방문하기 때문에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4월 이 앱을 출시하고 현재 확보한 AS 기사 회원은 30명이다. 우선은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말 기사를 50명까지 확보하면 전체 경기 지역에 대한 서비스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말까지 200명을 회원으로 확보해 전국을 대상으로 AS에 나설 계획이다. 이 고문은 “이 사업은 에스앤하이쿨을 포함해 모두 4개 업체가 협업하는 구조로 돼 있다”며 “삼우에프아이디가 주류 도매사 관련 서비스, 다바다가 앱 개발 및 유지·보수, 삼성카인드는 신제품 판매 및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