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07일(10:5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매출 순이익 자본구조가 똑같은 두 상장사가 같은 속도로 성장해 미래에 똑같은 현금을 나눠주겠다고 주주들에게 약속했다고 해보자. 두 회사의 주가는 똑같이 형성될까? 그렇지 않다. 1년 혹은 3년 후에 약속대로 현금을 지급할 수 있을지, ‘확실성’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미래에 받을 현금의 불확실성을 우리는 리스크라고 부른다. 리스크가 클수록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다. 리스크 프리미엄, 혹은 할인율이다. 어떤 기업의 주가가 낮다는 건 그만큼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할인율이 높다는 걸 뜻한다.
1990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윌리엄 샤프는 할인율을 계산하는 방식(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CAPM)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다. CAPM에서 할인율은 △돈의 시간 가치를 반영하는 무위험이자율(예컨데 10년만기 국채 금리) △시장 위험을 나타내는 시장 리스크프리미엄 △시장 움직임에 대한 개별 종목의 민감도(베타)로 구성된다.
시장 리스크프리미엄은 국가마다 다르다. 물론 덜 개발되고 불안정한 나라일 수록 프리미엄이 높다. 한국 주식시장의 리스크프리미엄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보다 높은 현상을 우리는 ‘코리아디스카운트’라고 부른다.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흔히 지적되어 온 건 크게 두가지다. 북한과 기업 지배구조다. 어쩌면 문재인 정권의 궁극적 목표는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였는지도 모르겠다. 남북 평화체제 구축과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누가 뭐라고 하건 밀여부쳐왔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 정권 들어 2년3개월여동안 코리아디스카운트는 더 커졌다는 점이다. 시장은 한국 주식에 더 많은 프리미엄(할인율)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2017년 5월10일부터 2019년 8월7일까지 MSCI 한국지수는 17.6% 하락했다. 같은 기간 MSCI 신흥국 아시아지수는 2.0% 내리는데 그쳤다. 할인율은 한일간 경제 전면전에 미중 환율전쟁까지 겹치면서 더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있다.
왜 그럴까? 세 가지 중 하나다. 대북 유화정책과 지배구조 개혁 정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거나, 다른 디스카운트 요인이 생겼거나, 아니면 둘 다 이거나.
문재인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판문점 회동쇼'까지 성사시켰지만, 북한은 계속해서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고 혈맹이라는 미국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대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 국민연금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정권이 원하는 재벌개혁(혹은 재벌 길들이기)과 자본시장이 원하는 지배구조 개선엔 차이가 많은 듯 하다.
게다가 무능외교라는 할인 요인이 더 추가됐다. 수출이 GDP의 40%를 차지하는 나라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 이웃 일본은 물론 미국, 중국 등 주변국 중 한 나라도 한국과의 무역에 우호적인 곳이 없다. 뿐만 아니다. 앞으로 인건비는 얼마나 더 늘어날 지, 자고 나면 생겨나는 각종 규제가 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수반할 지 종잡을 수조차 없다. 혁신성장은 기득권 눈치만 보는 정부 규제에 가로막혀 이젠 구호를 외치는 것조차 민망한 지경이 됐다. 기업들이 앞으로 얼마만큼의 현금을 창출할 지 예상하는 건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 투자자들의 패닉에 급락한 주가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장하성 주중대사가 2015년 쓴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는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을 연상시킨다. 피케티는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기 때문에 노동자와 자본가의 빈부격차는 커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분노해야 한다는 뜻이다.
달리 생각해보자. 우리 국민은 근로소득의 9%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렇게 거둬들인 ‘강제 저축’의 17.5%를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액수로는 120조원, 국민들의 노후 자금이다. 누가 노동자이고 누가 자본가인가? 분노해야 하는 건 누구인가? 투자자요, 국민이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