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국적 선택하는 시대

입력 2019-08-07 00:14
[ 김태철 기자 ] 북유럽 에스토니아에 본사를 둔 구인·구직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자바티칼(Jobbatical). 이 회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전문 매체인 테크크런치(Tech Crunch)가 지난해 2월 에스토니아의 뛰어난 창업 환경을 소개하면서 언급한 덕분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본격화되는 글로벌 인재들의 전형적인 이합집산(離合集散) 사례로도 꼽혔다.

자바티칼 직원은 40여 명에 불과하지만 직원들의 국적은 16개국에 이른다. 덴마크인 사장, 말레이시아인 프로그래머, 멕시코 출신 싱가포르인 마케팅 전문가 등 세계 각국의 인재가 의기투합해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 이들이 에스토니아를 선택한 것은 법인세 제로(0), 낮은 소득세율(5~10%), 쾌적한 주거 여건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 및 근로 환경 때문이다. 테크크런치는 “이제 글로벌 인재들이 마트에서 시리얼을 고르듯 기업은 물론 정부와 국적을 선택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전했다.

인재가 기술의 성패를 좌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재 영입’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유럽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포르투갈과 핀란드 등은 세계 최저 수준의 법인세와 소득세 등으로 글로벌 기업과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다. ‘순혈주의’가 강한 일본조차도 2017년 영주권법을 개정해 전문인력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캄보디아에서 입양한 아들 매덕스 졸리가 가을 학기 연세대에 입학한다는 소식이다. 한류(韓流) 팬이라고 알려진 매덕스의 한국 대학 입학은 한류의 위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하지만 한류 열풍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매력 대결’에서 저만치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제와 정주(定住) 여건, 교육 환경 등에서 외국인을 유인할 요인이 많지 않아서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의 두 아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도 떨떠름하다.

해외 인재를 끌어모으기는커녕 국민이 더 나은 여건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사례가 증가할 정도로 한국의 매력은 떨어지고 있다. 국적법 개정 등의 여파가 한꺼번에 반영된 측면도 있지만 지난해 해외 이주자는 6300여 명으로 전년보다 약 5000명 늘어났다. 인재들이 국적을 쇼핑하듯 선택하는 시대에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시급하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