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대외변수로 증시·환율 불안
부동산시장도 혼란
[ 배정철/양길성/민경진 기자 ]
3주 전 서울 반포동의 한 재건축단지를 16억원에 매입한 직장인 윤모씨(45). 4억원을 대출받고 전세보증금 6억원과 모아둔 돈을 합쳐 생애 첫 내 집 마련을 결심했던 그는 계약 파기를 고민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경제전쟁 등으로 국내 증시가 폭락하자 집값도 떨어질 것으로 우려해서다. 윤씨는 “증시가 이틀 연속 폭락하는 것을 보니 집값도 덩달아 급락할 것 같다”며 막대한 대출 이자를 감당하느니 1억원이 넘는 계약금을 날릴 각오를 하고라도 계약을 물러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잠잠하던 서울 주택시장이 반등하자 매수세로 돌아섰던 수요자들이 거시경제 지표가 급락하면서 불안에 떨고 있다. 매수 의향을 접거나 아파트 계약 파기를 고민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당분간 부동산시장 하락세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계약 파기’ 얼어붙은 강남 부동산
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거시경제 침체가 집값 하락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에 아파트 계약 파기를 고민하는 투자자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대외 경기 불안이 일자리·소득 감소로 이어지면서 부동산 경기 하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예상에서다.
실수요자보다 ‘현금부자’ 위주의 투자자가 많은 강남에서조차 불안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신만호 압구정동 중앙공인 대표는 “어제 증시가 크게 떨어지면서 하루 동안 매수 대기자 세 명이 호가가 떨어졌는지 전화를 걸어왔다”며 “원·달러 환율도 크게 오르는 등 거시경제가 좋지 않은 만큼 집값이 내려갈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수요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강북에서는 “상황을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아현동 A공인 관계자는 “거시경제 불안으로 투자 수요가 위축된 데다 여름철 매매 비수기까지 겹쳐 ‘지금은 매수 타이밍이 아니지 않느냐’는 전화가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대외 변수가 워낙 단기간에 급변한 만큼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낙관적인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다. 목동 D공인 관계자는 “목동 1~7단지에선 신고가가 계속 나오고 8단지 전용 105㎡도 이번주 15억5000만원에 계약하면서 신고가를 썼다”며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전혀 관계가 없는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부동산시장 장기적 하락 불가피”
부동산 전문가들은 일본 수출규제와 미·중 무역전쟁으로 전국 집값이 장기적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부동산시장이 폭락한 예를 들어 “부동산 경기가 거시경제의 전반적인 트렌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거시 불안 요인은 중장기적으로 부동산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부동산시장이 주식과 비교해 마땅한 대체투자처로 여겨지지 않아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몰리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도 “최근 바이오·정보기술(IT) 업종의 거품이 붕괴하고 있고 일본 무역규제에 따라 수출이 감소하는 상황”이라며 “경기 하방압력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아파트 구매력이 낮아져 부동산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부동산은 증시가 불안하면 유동자금이 몰리는 ‘안전 투자처’로 알려져 있지만, 대내외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약해진 상황인 만큼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부 규제도 침체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고 경기가 지속적으로 나빠지면 현금부자들의 주 투자처인 강남 재건축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주식시장 불안은 기업 실적 악화가 아니라 정세 불안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식과 부동산시장이 ‘한 몸’처럼 동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금·달러·부동산으로 유동성이 쏠릴 수 있다”고 했다.
배정철/양길성/민경진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