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상한제 도입되면 리모델링 '반사이익'"

입력 2019-08-04 16:43
수정 2019-08-05 02:41
수익성 떨어진 재건축 대안 '부상'
절차 쉽고 규제는 적어 유리

잠원동 훼미리·한신로얄 등
서울 시내 30개 단지에서 추진


[ 전형진 기자 ] 정부가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검토하면서 리모델링 시장의 반사이익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준공 20년차 안팎 단지들이 수익성 떨어지는 재건축을 포기하고 리모델링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서울 강남에선 과거 재건축으로 준공된 단지가 다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사례도 나왔다.


리모델링 ‘붐’ 오나

서울에서 리모델링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아파트는 30여 곳이다. 소규모 단지거나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이 여의치 않은 곳이 많다. 강남권에서는 ‘개포우성9차’가 지난 3월 착공한 데 이어 ‘잠원훼미리’ ‘잠원동아’ ‘한신로얄’ ‘청담건영’ 등이 리모델링 추진 움직임이 활발하다. 비(非)강남에서도 ‘가양강변3단지’ ‘자양우성1차’ ‘대림현대3차’ 등이 추진위 구성을 마치고 조합 설립을 준비 중이다. ‘이촌현대’는 주변 단지와 통합 리모델링에서 독자 추진으로 돌아서면서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재건축 규제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어서다. 분양가상한제까지 시행되면 조합원 분담금이 증가해 사업성도 크게 떨어진다.

리모델링은 가구수 증가에 따른 일반분양 수익보단 수선으로 인한 가치 상승에 무게를 둬 비교적 분양가상한제 영향이 적다. 재건축 연한을 앞둔 20년차 중후반 단지도 리모델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리모델링시장이 활성화될 여건은 갖춰진 상태”라며 “재건축이 위축될수록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비교해 사업 추진 과정이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아파트가 준공된 지 15년이 지나면 사업이 가능하다. 재건축 기준연한(30년)의 절반이다. 조합 설립에 필요한 주민 동의율(66.7%)도 다른 정비사업(75.0%)보다 낮다. 행위 허가를 신청할 때 75.0% 동의율을 채우면 된다. 안전진단 기준도 까다롭지 않다. 재건축은 D등급 이하를 받아야 하는 데 비해 리모델링은 B등급만 나와도 수직증축이 가능하다. C등급이라면 수평증축과 별도 건물 증축을 할 수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나 조합원지위 양도 제한 등의 규제도 없다.

잠원동 롯데캐슬 재건축 17년 만에 리모델링

서초구청에 따르면 서울 잠원동 ‘롯데캐슬갤럭시1차’의 리모델링조합 설립이 지난달 31일 인가됐다. 주민 68.0%가 동의해 조합 설립 허가 기준인 66.7%를 넘겼다. 앞으로 안전진단을 받고 서초구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치면 리모델링이 가능하다.

이 아파트는 한남대교 남단에 있던 옛 ‘설악아파트’를 재건축해 2002년 입주했다. 서울시내 초기 재건축 단지 가운데 사업 속도가 가장 빨랐던 곳이다. 리모델링을 마치면 ‘재건축 후 리모델링’의 첫 사례가 된다. 당초 지난해 서울시에 ‘서울형 리모델링사업’을 신청했지만 심사에서 탈락해 주민들이 자체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준공 17년 만에 리모델링에 나서는 건 주변 상황과 관련이 깊다. 인근에서 재건축 단지가 속속 입주하자 시설 및 건물이 상대적으로 열위인 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한 주민은 “신축 아파트는 분양가 대비 수억원씩 오르고 낡은 단지도 재건축을 재료로 가격이 급등하자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은 현재 최고 25층인 단지를 3개 층 증축하고 가구 수를 256가구에서 288가구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급화와 지하주차장 증축까지 하면 가구당 분담금은 1억6000만원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홍정림 조합장은 “시공권을 두고 대형 건설회사 여러 곳에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며 “재건축과 비교하면 절차가 까다롭지 않아 사업 속도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리모델링 사업이 탄력받으면 전셋값 불안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연한 기준이 낮은 만큼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멸실 물량이 확 늘어날 수 있다”며 “분양가상한제로 신축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리모델링 이주 수요까지 더해지면 전세 가격이 자극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