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미식가들
[ 은정진 기자 ]
소주를 마시고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네’라는 감탄을 한시로 읊조린 이색, 매운 것을 좋아해 고추장과 마늘을 듬뿍 올린 쌈을 즐긴 이옥, 겨울밤 술과 함께 먹는 열구자탕을 극찬한 이시필. 음식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해석해온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는 《조선의 미식가들》에서 조선시대 대표 미식가 15인이 남긴 ‘식후감(食後感)’을 파헤쳤다. 찜과 탕을 비롯해 회와 젓갈, 후식과 술에 이르기까지 그 맛을 음미하고 즐긴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시대 음식의 역사는 물론, 우리 선조들이 음식을 즐기던 방법까지 살핀다.
저자는 △불교 유입에 따른 육식 기피 △원나라 간섭기 육식 확대 △조선왕조 통치이념이 된 성리학의 영향 △17세기 연행사의 청나라 방문 △옥수수 감자 고추 등이 유라시아에 전파된 ‘콜럼버스 교환’ 등 다섯 가지 사건이 벌어진 시기로 한반도 음식역사를 구분한다. 이 책에 소개된 조선 미식가 15인의 글에서도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음식 취향과 경험이 등장한다.
고려 말 조선 초를 살았던 지식인 이색은 원나라에서 들어온 소주와 두부에 관한 시를 지었고, 조선 중기 연행사로 연경을 다녀온 김창업은 중국에서 맛본 새로운 음식에 대한 글을 남겼다. 허균과 김려, 이옥 등은 직접 맛본 음식에 관해 글을 썼다. 허균은 조선 팔도에서 먹어본 음식의 품평과 함께 먹은 장소, 요리법, 잘 만드는 사람과 명산지 등의 정보를 《도문대작》에 자세히 기록했다. 이옥도 18세기 들어 조선 식탁에 오른 고추장의 맛과 먹는 방법을 글로 남겼다. 김려가 귀양살이하며 박물학적 관심에서 쓴 어류학서 《우해이어보》에는 그의 넘치는 식욕이 엿보인다. 사대부 김유와 조극선, 이덕무가 남긴 요리책은 당대 선비들의 식생활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저자는 “조선시대 미식가들이 남긴 글은 형식도, 시대도, 신분과 성도 달랐지만 각 시대 음식과 식재료, 요리법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과 문화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휴머니스트, 352쪽, 2만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