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지자체 파산제를 許하라

입력 2019-07-30 17:34
김태철 논설위원


[ 김태철 기자 ] 일본 홋카이도 중부 유바리시(市). 한때 일본 굴지의 탄광·관광도시였지만 지금은 ‘유령도시’로 전락했다. 서울(605㎢)보다 넓은 도시(763㎢) 곳곳엔 녹슨 대형 놀이시설, 버려진 상가와 주택, 문 닫은 학교들이 산재해 있다.

유바리시는 말이 지방자치단체이지 재량권이 거의 없다. 무리한 관광사업 투자 탓에 일본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2007년 파산을 신청한 여파다. 예산 편성도, 사업도 전부 중앙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2027년까지 파산 부채 353억엔(약 3837억원)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상·하수도 등 최소한의 행정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있다. 399명이던 공무원을 97명으로 줄이고 임금도 40% 삭감했다.

'유령도시'로 전락한 유바리시

지자체 파산은 주민들의 삶에도 타격을 안겼다. 공공서비스가 거의 중단됐는데도 지방세는 오히려 세 배 이상 올랐다. 파산 직전 1만4000명이던 인구가 12년 새 8000명 선으로 급감하자 17개였던 초·중·고교는 3개로 통폐합됐다.

유바리시의 몰락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탄광도시였던 강원 태백시는 유바리시를 벤치마킹하다가 2014년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탄광에서 관광으로’를 모토로 골프장, 스키장, 콘도를 갖춘 오투리조트 건설 등에 4000여억원을 쏟아부었지만 대규모 운영 적자를 냈다.

인천시는 아시안게임(2014년) 준비와 도심 재개발사업 등의 후유증으로 2015년 부채가 13조원을 넘었다. 부채비율이 39.9%로 치솟아 재정 안정 마지노선(40%) 직전까지 갔다. 경남 하동군은 무리한 산업단지(갈사산단) 개발로 2017년 884억원의 빚을 졌다. 대전 동구청은 2012년 700억원짜리 ‘호화 청사’를 짓느라 최근까지 수년간 직원 월급을 제때 못 주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한국 지자체들의 재정위기 탈출 방법은 ‘지자체 파산제’를 운영 중인 일본과 미국의 지자체들과는 크게 다르다. 한국에선 중앙정부에 손을 벌려 교부세 지원과 지방채 발행 등으로 비교적 손쉽게 위기를 넘긴다. 별다른 제재 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특정 지역의 실패를 땜질하다보니 재정위기 지자체가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주는 등 도덕적 해이가 끊이지 않는다.

만연한 지자체의 도덕적 해이

일본과 미국은 철저히 ‘자력갱생’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파산 지자체는 공립학교 교사를 줄이고 공무원을 감원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자치권을 거의 박탈하고 단체장을 해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 지자체의 무차별 복지 남발과 무리한 개발사업 등 도덕적 해이는 발을 붙이기 어렵다.

우리나라 지방 부채는 2017년 기준으로 약 100조원에 이른다. 전국 226개 기초단체 중 재정이 취약해 지방세 수입만으로는 공무원 월급도 못 주는 지자체가 80곳이 넘는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 들어 복지사업이 급격히 늘고 있다. 작년 신설된 현금성 복지사업만 489건(4300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내년부터 총 24조원 규모의 23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본격화하면 지자체들은 자극을 받아 각종 개발사업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단체장을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 의원들도 단체장과 같은 정당 소속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지역 차원에서 선심성 정책을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 지자체 파산제가 가장 현실적인 재정위기 방지책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자체가 책임감을 갖고 재정을 꾸리고 자구노력도 하는 제도가 정착돼야 무차별 선심성 사업 등 만연한 지자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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