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예상했지만 더 나빠"…기업 이익 감소세 너무 가파르다

입력 2019-07-29 17:31
수정 2019-07-30 10:47
상장사 10곳 중 4곳 영업益
증권사 추정치 크게 밑돌아
법인세 급감…재정에도 불똥


[ 송종현/임근호/오형주 기자 ]
기업 이익이 예상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줄고 있다. 실적을 전망하는 증권회사들이 눈높이를 한껏 낮춰놨지만 소용이 없다. 발표되는 이익은 낮아진 기대치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악을 예상했는데, 그보다 더 나쁘다”는 암울한 비관론이 쏟아지고 있다.

2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6일까지 2분기 실적을 발표한 상장사(유가증권시장+코스닥) 79곳 중 32곳이 증권사 컨센서스(추정치 평균)를 밑도는 영업이익을 냈다. 증권사들은 실적 악화를 전망하고 이미 서너 차례 영업이익 추정치를 하향 조정했지만 열 곳 중 네 곳은 이조차도 미달했다.

실적 발표 전인 상장사를 포함해 증권사 추정치가 있는 135개 기업의 2분기 영업이익은 22조674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1% 급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개월 전 추정치(27조8242억원)보다 18.5% 줄어든 것이며, 역대 최악이던 1분기 영업이익 감소폭(33.3%)보다 크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중 무역전쟁 격화, 일본의 수출규제 등 대외 악재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실적 추정치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낮춰잡았지만 기업 이익 감소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기업 실적 악화는 세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 상위 20개사의 올 1분기 법인세비용 총합은 4조62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1% 감소했다. 2012년 국제회계기준(IFRS) 전면 도입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전문가들은 “세수 감소로 재정 대응 여력이 떨어지는 정부가 또다시 증세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기업 비용을 증가시켜 경제 전체의 부담을 늘리는 악순환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중 무역전쟁이 봉합되고 반도체 경기가 반등할 가능성이 있는 4분기는 돼야 기업 실적 바닥이 언제쯤이 될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적쇼크→稅收감소→증세→기업부담…'악순환 늪'에 빠지나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예상보다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나면서 법인세발(發) ‘세수 급감 쇼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주요 기업의 1분기 법인세 비용(예상 법인세 납부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넘게 줄었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 법인세수 목표치인 79조3000억원에 크게 미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법인세는 소득세와 함께 양대 직접세다. 전체 세수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씀씀이를 늘리고 있는 정부가 세수 감소에 따른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증세로 대응한다면, 기업 활력이 더 떨어져 세수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기업 실적 악화에 세수 확보 비상

지난해 정부가 걷은 국세는 293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법인세가 70조9000억원으로 당초 예상(63조원)보다 12.5% 많이 걷혔다. 근로소득세와 양도소득세 등으로 이뤄진 소득세도 지난해 84조5000억원으로 예상(72조9000억원)보다 15.9% 많았다. 반도체 수출 호황에 부동산 거래까지 활발해 양도소득세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올해 세수 전망을 더 높였다. 전체 국세 수입은 294조8000억원, 법인세 수입은 79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 세수가 이에 못 미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업 이익이 수직 낙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교보증권에 따르면 지금까지 집계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2분기 영업이익은 33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4조9000억원)보다 38.6% 감소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생각보다 더 나쁜 결과”라며 “한·일 무역갈등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하반기는 물론 내년에도 실적 회복을 쉽게 예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올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영업이익 전망치는 144조7000억원으로 지난해(197조5000억원)에 비해 26.7%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16년(147조4000억원)보다 낮은 것으로 그해 법인세수는 52조1000억원이었다.

“세 부담 줄여 기업 활력 늘려야”

주요 기업(지난해 영업이익 상위 20곳)의 1분기 법인세 비용은 4조624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조1321억원)보다 43.1%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법인세 비용은 향후 법인세 납부액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삼성전자 법인세 비용이 이 기간 2조6180억원(58.3%)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다. 단순 계산해도 삼성전자가 내는 법인세가 연간 10조원 이상 줄어든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는 7921억원(67.7%) 줄었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영업이익이 6376억원으로 1분기(1조3665억원)에서 다시 반토막이 난 만큼 법인세 납부액이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다음달 법인세 중간예납 때 법인세수 급감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12월 결산법인은 법인세를 3월과 8월에 나눠 낸다. 8월엔 작년 법인세의 2분의 1을 내거나, 상반기 실적을 중간 결산해 납부할 수 있다. 대부분 기업은 상반기 실적으로 8월 법인세를 내고 있어 국세청엔 벌써 비상이 걸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반도체 호황에 기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세수 전망을 했다”며 “다른 부문의 소득이 늘지 않은 가운데 기업 실적마저 악화돼 세수 확충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기업 실적이 온전히 반영되는 내년엔 법인세가 더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법인세(19.8%)와 더불어 전년 대비 증가율이 컸던 양도소득세(19.2%)도 올해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부동산 거래를 바짝 죄면서 양도소득세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며 “세수 확대의 양대 축인 수출기업과 건설이 모두 부진에 빠지면서 세수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증세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법인세율을 내려 기업의 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세무학회장을 지낸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려 이미 기업들의 세 부담이 경쟁국 대비 과중하다”며 “세 부담을 더 높인다면 기업 경쟁력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호/송종현/오형주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