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국, WTO 개도국 혜택 못 받게 하라"

입력 2019-07-28 17:31
수정 2019-07-29 00:41
USTR에 "모든 수단 강구" 지시
농업 보조금 축소 등 압박 커질 듯


[ 주용석/구은서/이태훈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얼굴)이 지난 26일 “한국 등 부자 나라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혜택을 못 받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미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제외되면 공산품과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농업 분야에선 보조금 축소 등의 압박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은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회원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국가 △주요 20개국(G20) △세계은행이 분류한 고소득 국가(2017년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 1만2056달러 이상) △세계 무역량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며 WTO에 개발도상국 체제 개편을 요구해왔다. 한국은 네 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90일 안에 이 문제에서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미국은 자체적으로 이들 국가에 대해 개발도상국 대우를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한국은 현재 WTO에서 농업을 제외한 분야에서 개발도상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개발도상국 대우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농림축산식품부는 27일 “미국은 그동안 개발도상국 지위와 관련해 WTO 회원국이 누리고 있는 특혜를 포기하라는 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왔다”며 “현재 적용되는 농산물 관세와 보조금은 차기 농업협상 타결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韓 'WTO 개도국'서 빠지면…공산품은 영향 없지만 쌀보조금 '비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 중국과 한국 등을 겨냥해 “비교적 발전된 국가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이용한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하라”고 미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함에 따라 한국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WTO 개발도상국에서 제외되면 농업 분야에 타격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이미 공산품과 서비스 분야에선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고 있고, 농업 분야에서만 지위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당장 쌀 관세율을 낮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하지만 미국 등과의 무역협상에서 쌀 관세율이나 농업 보조금을 축소하라는 압박에 시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중국 등 개발도상국서 빼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세계무역기구의 개발도상국 지위 개혁에 관한 제안서’를 통해 “90일 안에 WTO 개발도상국 대우 체계 개혁에 실질적인 진전이 없으면 미 정부는 이들 국가에 개도국 대우를 중단하고 해당 국가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제안서에서 한국도 언급됐다.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면서 OECD 회원국인 한국이 개도국으로서 부당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1996년 OECD 가입 당시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선언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농업 분야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농업을 제외한 분야에서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개발도상국으로 남았다.

미국 정부는 올초 WTO 일반이사회에서 자기선언 방식의 개발도상국 지위 결정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미국은 그간 △OECD 회원국이나 회원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국가 △G20 국가 △세계은행이 분류한 고소득 국가(2017년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 1만2056달러 이상) △세계 무역량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며 WTO에 개도국 체제 개편을 요구해왔다. 한국은 네 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한다. 또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상위 10개국에 포함되는 홍콩, 브루나이, 싱가포르 등도 개도국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업협상 방어력 떨어질 수도”

미국이 한국의 개도국 대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쌀 관세율을 낮추는 등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미국의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요구와 관계없이 한국 농산물 관세와 보조금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적용되고 있는 농산물 관세 및 보조금은 차기 농업협상 타결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며 “현재 농업 분야를 포함한 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은 회원국별 견해차가 상당해 10여 년간 중단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관세율을 조정한다고 해도 한국이 외국산 쌀을 들여올 때 적용하는 관세율을 건드릴 순 없다. 한국이 미국산 등 외국산 쌀을 수입할 때 적용하는 관세율 513%는 국내 관세법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역법 301조, 무역확장법 232조 등을 적용해 한국에 통상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이 조항들은 미국 정부가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 제도 및 관행에 대해 관세 부과 등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한국은 미국산 쌀 40만8700t을 5% 저율 관세로 수입하고 있다. 미 정부가 이를 늘리도록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이 농업분야 개도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쌀 변동직불금 등 농산물에 대한 보조금을 현행 1조4900억원에서 8195억원으로 절반가량 축소해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후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잃은 채 농업협상 등에 임하면 관세율·보조금 축소 요구에 대한 방어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구은서/이태훈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