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크 초마짬뽕, 커피 로스팅 기계로 '불맛' 살려…100만개 판매 '대박'

입력 2019-07-25 18:04
수정 2019-07-26 03:02
가정간편식 브랜드 전쟁
(5) 이마트 '피코크'

이태원 '잭슨피자' 반년새 12만개 팔려
34곳 맛집과 손잡고 다양한 상품 출시
맛집 일일이 찾아가 '제품 내자' 설득


[ 안재광 기자 ]
이마트의 가정간편식(HMR) 브랜드 ‘피코크’ 개발팀은 2015년 초 커피 로스팅 기계를 수도권의 한 아파트형 공장에 들였다. 이들이 로스팅 기계에서 볶은 것은 커피콩이 아니었다. 대량의 야채와 고기였다.

피코크 개발팀이 이처럼 ‘이상한 실험’을 한 이유는 뭘까. 사연은 이렇다. 이들은 서울 홍익대 인근의 한 중식당과 협업해 짬뽕을 가정간편식(HMR) 형태로 개발 중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이 중식당 짬뽕 맛을 낼 수 없었다. ‘불맛’이 가장 큰 문제였다. 중국집에서 쓰는 조리도구는 대량 생산에 부적합했다. 그렇다고 찌거나 삶자니 맛이 날 리 없었다.

그래서 고른 게 커피 로스팅 기계였다. 300~350도의 뜨거운 열로 가열하고, 주기적으로 내용물을 섞어주는 게 중국집 조리 방식과 비슷했다. 커다란 로스팅 기계에 재료를 볶자 의도한 대로 ‘불맛’이 살아났다. 이런 조리법으로 내놓은 HMR 짬뽕은 ‘대박’을 터뜨렸다. 첫해 24만 개가 팔려나갔다. 이후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은 100만 개. 피코크의 간판 상품이 된 ‘초마짬뽕’ 맛의 비밀이다.

피코크 누적 매출 1조원 돌파

피코크는 2013년 이마트가 내놓은 프리미엄 식품 자체상표(PB)다. 데우거나 포장만 뜯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HMR이 대부분이다. 피코크 누적 매출은 올 상반기 1조원을 넘었다. 지난해에만 2490억원어치가 팔렸다. 현재 상품 수는 1000여 개에 달한다.

피코크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초마짬뽕 같은 맛집 요리의 재현이다. 올 1월 서울 이태원의 유명 피자집 ‘잭슨피자’와 손잡고 내놓은 ‘피코크 잭슨피자’도 원래의 맛을 최대한 살린 제품이다. 일반적인 냉동 피자는 공장에서 기계로 대량 생산된다. 밀가루 반죽을 롤러로 찍어낸 뒤 그 위에 토핑을 얹는다. 하지만 피코크 잭슨피자는 사람 손으로 만든다. 밀가루 반죽을 12시간 저온 숙성하고 토마토 소스와 바질, 치즈, 향신료 등을 얹는 과정이 모두 손을 거친다. 이렇게 해야 깊은 풍미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먼저 알아봤다. 피코크 잭슨피자는 출시 6개월 동안 약 12만 개가 팔렸다. 같은 기간 이마트에서 팔린 50여 종의 냉동피자가 100만 개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큰 성과다.

원래의 맛을 구현하는 데는 제조 협력사의 도움이 컸다. 잭슨피자는 충북 보은의 이든푸드에서 생산된다. 이 회사는 다른 냉동 피자 제조사와 달리 손이 많이 가는 수제 방식 제조법으로 피자를 생산해보겠다고 적극 호응했다. 이든푸드는 전체 근무 인력의 15%인 20여 명을 피코크 잭슨피자 라인에 투입하고 있다.

내달 반조리 형태 맛집 상품도 내놔

이마트 피코크팀은 상품 출시 첫해부터 적극적으로 맛집을 발굴했다. 맛집 음식을 HMR 형태로 집에서 즐기고 싶어하는 소비자를 겨냥했다.

어려움이 많았다. 대부분 맛집은 HMR로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이마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코크 개발팀이 찾아가면 “지금도 잘되는데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식당 홍보에 도움이 되고, 매출 일부를 로열티로 받게 된다. 대박이 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어떤 맛집엔 개발팀 직원들이 열 번 이상 찾아가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설득 과정을 거쳐 2013년 1호 협업 맛집이 나왔다. 서울 광장시장 ‘순희네 빈대떡’이다. 이후 지금까지 총 34곳의 맛집과 손을 잡았다.

이마트는 다음달 ‘고수의 맛집’이란 밀키트 브랜드를 선보인다. 맛집 메뉴를 밀키트로 출시하는 첫 번째 사례다. 기존 맛집 HMR이 데워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고수의 맛집은 재료를 볶는 등 일부 조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마트는 고수의 맛집이 지난 6월 내놓은 피코크 밀키트의 주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