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쿠팡의 빠른 배송, 느린 대응

입력 2019-07-25 18:03
배송속도와 반비례한 해명
소비자와 소통 노력도 소홀

박종필 생활경제부 기자 jp@hankyung.com


[ 박종필 기자 ]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기술과 인프라에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겠다.”

김범석 쿠팡 대표가 지난 4월 한 말이다. 2018년 발생한 약 1조원의 영업손실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지던 시기였다. 쿠팡 사람들은 “당장은 적자가 불가피하겠지만, ‘로켓배송’ 없이 살 수 없는 세상, ‘쿠팡하다’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는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쿠팡은 신선식품과 배달전문 서비스인 쿠팡이츠 등으로 사업영역 확장에 나섰다.

이런 쿠팡에서 ‘큰일’이 터졌다. 지난 24일 오전 7시께부터 내부 시스템 오류로 인터넷 사이트와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에서 모든 상품 재고가 ‘0’으로 표시됐다. 반나절 이상 주문도, 결제도 이뤄지지 않는 초유의 사태였다. 소비자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10시간이 지난 오후 5시가 돼서야 오류가 모두 복구됐다. 김 대표가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던 기술과 인프라는 사태를 신속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쿠팡은 ‘유통회사가 아니라 정보기술(IT)회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e커머스 기업 중 가장 앞선 IT를 자랑했다. 쿠팡에서 일하는 개발 인력만 1000명을 넘는다. 손가락으로 세 번만 터치하면 모든 결제가 끝나는 ‘쿠페이’, 고객에게 분초 단위로 실시간 재고를 보여주는 재고관리시스템 등은 쿠팡의 IT 경쟁력이 있어 가능했다.

쿠팡은 매년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도 소비자들로부터는 ‘혁신기업’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판매 중단 사태에 대처하는 쿠팡의 태도에 대해서는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쿠팡은 판매 중단 사태가 발생하자 “재고 데이터베이스와 관련한 기술적 문제로, 서비스 이용에 불편이 없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만 간략히 내놨다. 소비자와 소통하려는 노력도 소홀했다. 장애가 발생한 이후 한참 동안 앱이나 홈페이지에 고객 불편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어떤 공지도 띄우지 않았다.

“상품을 구매할 수 없는 건 유통기업으로선 최악의 사태인데, 몇 시간 동안 대응이 없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쿠팡이 고객과 소통하기 위해 이달 초 선보인 사이트인 ‘뉴스룸’이나 쿠팡이 운영하는 블로그 등에서는 사고 당일은 물론 하루 뒤인 25일에도 어떤 해명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1인 미디어 방송장비 판매를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빠르고 진정성 있는 사과’는 위기 대응의 기본이다. 쿠팡은 사고가 터진 비슷한 시간에 뉴스룸 최신 뉴스로 쿠팡맨을 격려하기 위한 본사의 푸드트럭 제공 이벤트를 알리는 글을 올렸다. 사과와 해명이 필요할 때 나온 푸드트럭 얘기에 소비자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