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로 의기투합
비즈니스 영역서 협력
[ 오형주/김주완 기자 ]
미래에셋그룹이 네이버가 설립하는 금융 자회사에 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전격 결정한 데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간 ‘끈끈한 인연’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과 정보기술(IT)업계를 각각 대표하는 두 창업가가 금융과 기술이 융합한 ‘핀테크’ 시대를 맞아 앞으로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외환위기 후 자수성가한 기업인
네이버는 지난 24일 이사회를 열고 네이버페이 사업 부문을 분리해 ‘네이버파이낸셜’(가칭)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네이버페이에 속해 있던 전자지급결제 대행업 등 간편결제 관련 사업을 떼어내 별도의 금융 플랫폼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4월 일본에서 라인파이낸셜을 설립해 간편결제와 인터넷은행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네이버파이낸셜 출범 과정에서 미래에셋대우로부터 5000억원가량을 투자받기로 한 점이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투자 결정은 박 회장과 이 GIO 사이의 교감과 최종 의사결정 없이는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두 사람은 업종은 다르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탄생한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교류해왔다. 박 회장은 이 GIO에 대해 “우리 같은 창업 세대들은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 통하는 게 있다”며 “이 GIO를 만나보니 그가 별다른 사심 없이 회사를 잘 키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개인적 교류가 비즈니스로 이어진 것은 2016년부터다. 당시 네이버는 일본 라인의 미국 뉴욕증시 및 일본 도쿄증시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다. 10조원 이상 기업가치가 매겨진 라인 IPO에는 일본 노무라를 비롯해 미국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JP모간 등 쟁쟁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대거 주관사로 나섰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낄 자리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에셋대우는 일본 도카이도쿄증권에 IPO 물량 인수 관련 자문을 제공하면서 유일하게 참여했다. 같은 해 12월 미래에셋과 네이버는 1000억원 규모 신성장펀드를 함께 조성하면서 본격적인 협력관계를 시작했다.
2017년에는 관계가 더욱 깊어졌다. 그해 6월 미래에셋과 네이버는 총 1조원에 달하는 자사주 맞교환 방식의 대규모 지분투자를 했다. 1등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와 금융투자업계 1위 미래에셋의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자사주 교환으로 네이버는 미래에셋대우 지분 7.1%, 미래에셋대우는 네이버 지분 1.7%를 보유하게 됐다. 당시 박 회장은 “네이버와 주식 맞교환은 사업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 GIO와의 개인적 인연이 작용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글로벌 시장 진출 DNA 공유”
박 회장과 이 GIO는 경영철학 측면에서도 서로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대표적 화두 중 하나는 ‘해외 진출’이다. 미래에셋은 홍콩을 기점으로 글로벌 부동산 등 대체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네이버는 라인을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메신저’로 키워냈다. 박 회장은 “네이버가 한국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 비즈니스에 적극 뛰어드는 점이 미래에셋과 DNA가 맞는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지난해 5월 미래에셋대우 회장직을 내려놓고 글로벌경영전략고문(GISO)을 맡은 것 역시 이 GIO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GIO는 2017년 3월 네이버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 국내보다는 해외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과 이 GIO가 평소 자주 만나 IT와 금융 등 최신 트렌드에 관해 폭넓게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안다”며 “박 회장이 클라우드 컴퓨팅에 시쳇말로 ‘꽂힌’ 것도 이런 인연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인수한 미국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 글로벌X에 클라우드 컴퓨팅 관련주에 투자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16일 나스닥시장에 상장된 ‘글로벌X 클라우드컴퓨팅 ETF’는 상장 3개월여 만에 순자산이 5억달러에 육박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두 창업가의 개인적 인연을 바탕으로 끈끈하게 맺어져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미래에셋-네이버 진영은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로 협력했지만 독자 행보를 보이는 한국투자금융지주-카카오 진영과 차별화된다는 평가도 있다. 카카오는 조만간 카카오뱅크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데 이어 바로투자증권을 인수하면서 직접 증권업에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는 오랜 기간 미래에셋과 협력관계를 이어오면서 미래에셋을 금융업 진출에 꼭 필요한 동반자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카카오와 달리 증권사를 따로 설립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형주/김주완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