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에서 격론 벌인 한국과 일본

입력 2019-07-25 00:20
수정 2019-07-25 06:10

한국과 일본이 국제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본격적인 외교전을 벌였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강화의 부당성을 적극 호소했다. 지난 9일 WTO상품·무역 이사회에서 ‘전초전’을 벌인데 이어 일반이사회라는 큰 무대에서 본격적인 국제 여론전을 진행한 것이다.

24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 WTO일반이사회에선 한국 정부가 제출한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의 부당성에 관한 문제가 논의됐다. 당초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는 전날 논의될 예정이었지만 다른 안건 처리가 지연되면서 이날로 한·일 대결이 순연됐다. 일반이사회는 2년마다 열리는 각료회의를 빼면 WTO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164개 회원국이 모두 참여해 중요 현안을 논의한다. 이 자리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를 철회시킬 구속력 있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국제여론을 환기하는 효과가 크다.

이날 이사회에서 한국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일본의 조치가 WTO 규범 위반이라는 점을 회원국들에 강조했다. 일본의 일방적인 조치가 국가 안보와 관련이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정부 수석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이날 오후 일본 수출 규제를 다루는 안건에 대한 논의가 끝난 뒤 외신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오전 중 고위급 대화를 제안했으나 지금까지도 답이 없다”며 일본의 불성실한 태도를 비판했다.

김 실장은 “일본의 대화 거부는 일본이 스스로 한 행위를 직면할 용기도, 확신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일본은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눈을 감고 있고 귀도 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일본이 수출규제 강화 조치 발표 후 20일 동안 일관되게 직접적인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면서 “일본의 조치는 명백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외교적 보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화로 이 문제를 푸는 것은 한국 정부가 꾸준히 유지해온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일본 대표부 대사는 “한국이 언급한 조치는 국가 안보라는 관점에서 이뤄진 것으로 WTO에서 의제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하라 대사는 “추가로 대한(對韓) 수출에서 부적절한 사례가 있었다”며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 대해 간소화했던 수출 절차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했다. 그는 “한국은 일본의 조치가 자유 무역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지만 자유무역이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민감한 상품이나 기술을 아무런 통제없이 교역할 수 있게 허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억지성 주장도 폈다. 한국이 최근 3년간 일본의 요구에도 전략물자 관리에 관한 논의를 한 바도 없다고 했다.

이사회에서 중재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됐던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은 이달 9일 상품 무역 이사회에서도 제네바 대표부 대사들이 수출 규제 문제를 놓고 충돌한 바 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임락근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