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편성근거 마련 못해
'누리과정 사태' 재현 우려
2024년후 재원 마련도 미정
[ 박종관 기자 ] 15개 시·도 교육청이 올 2학기부터 부분 시행되는 고교 무상교육 정책을 위해 2357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 의회 심의를 거쳐 예산안이 통과되면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한 무상교육은 무리 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문제는 내년부터다. 국회는 내년도 무상교육 정책에 투입될 정부 예산을 편성할 법적 근거를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2024년 이후 재원 마련 대책도 미정인 상태다.
23일 교육부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부산 등 15개 시·도 교육청은 2학기 고교 무상교육 정책 시행을 위한 예산 편성을 마무리했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가 835억원으로 가장 큰 규모의 추경안을 제출했다. 서울(375억원)과 부산(158억원), 대구(126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추경안을 제출하지 않은 충남과 제주교육청은 교육감 공약에 따라 이미 올 1학기부터 고교 전면 무상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달 내 모든 지역이 추경 예산 의결까지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학생까지 무상교육 대상이 확대되는 내년도 예산 마련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증액교부금 제도를 신설해 내년부터 2024년까지 정부 47.5%, 교육청 47.5%, 지방자치단체 5%씩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분담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증액교부금 제도 신설을 위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 등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했다. 안건조정위는 이견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 안건을 심사하는 위원회다. 자유한국당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부터 시작하는 고교 무상교육은 내년 총선을 대비한 선심성 정책”이라며 “내년부터 고교 전 학년 무상교육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년부터 전 학년 무상교육을 시행하기엔 재원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시·도교육감들은 정부가 내년 예산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교육청에 떠넘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누리과정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만 3∼5세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까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시·도교육청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보육 대란’이 벌어질 위기까지 갔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고교 무상교육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모든 예산을 교육청이 부담하긴 어렵다는 방침이다.
5년 뒤 재원 마련 계획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고교 무상교육 정책은 2024년 이후 재원 마련책이 없어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교육부는 지난달 ‘2019년도 지방교육재정전략회의’에서 5년 뒤 예산 마련 방안을 찾는 정책연구에 들어갔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구체화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발표하기로 약속한 5년 뒤 예산 마련 방안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비율을 높이는 수준에 그친다면 여론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당초 교육부는 내국세의 20.46%로 규정돼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비율을 21.26%로 0.8%포인트 올려 고교 무상교육 시행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려 했지만 재정 당국의 제지로 가로막혔다. 교육 수요자인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걷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교육계 관계자는 “저출산 여파로 학생 수가 계속해서 감소하는데 포퓰리즘 정책을 위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비율을 높이려 한다면 비난 여론이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