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없이 석방땐 증거인멸 우려
법원, 20일 남기고 직권보석
보석금 3억원·통신 등 제한
[ 신연수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진)이 구속 기간 만료를 20일 앞두고 조건부 보석으로 풀려났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22일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직권으로 보석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지난 1월 24일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지 179일 만이다.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 내건 보석 조건에 따르면 △주거지가 경기 성남시 자택으로 제한되고 △재판과 관련한 사람과 전화, 서신, 팩스, 이메일, 문자메시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어떤 방법으로도 연락을 취해선 안 되며 △보증금 3억원을 납입해야 한다. 아울러 법원이 소환하면 반드시 정해진 일시와 장소에 출석해야 하고, 도망 또는 증거 인멸 행위를 해선 안 된다. 사흘 이상 여행하거나 출국할 경우에는 미리 법원에 신고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재판부는 “보석 조건을 어긴다면 보석을 취소하고 보증금을 몰취할 수 있고,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2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보석 결정은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구속 기한(최장 6개월)이 가까워진 데 따른 조치다. 2월 11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만기일은 내달 11일 밤 12시다. 구속 기간을 모두 채우고 풀려나면 운신의 폭에 제한이 없지만, 재판부가 보석 결정을 하면 각종 제한 조건을 붙일 수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구속 기한이 가까워진 만큼 보석이 아닌 구속 취소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은 구치소 접견 끝에 “양 전 대법원장이 법원의 보석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재판부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검찰이 신청한 증인 212명 중 4명에 대한 증인신문만 이뤄졌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이 속도대로라면 1심만 3~4년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