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샤갈 '한여름 밤의 꿈'

입력 2019-07-22 17:31
수정 2019-07-23 01:00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 김경갑 기자 ] 여름은 열정의 계절이다. 인생으로 치자면 한창 혈기 왕성한 청년기에 해당한다. 태양이 지고 어둠이 깔리면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기이하고 신비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뱀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의 1939년 작 ‘한여름 밤의 꿈’은 이런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그림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낭만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을 모티브로 했다.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은 아테네 공작인 테세우스와 히폴리타의 혼례를 나흘 앞둔 어느 여름밤, 혼례를 축하하는 연극 연습이 한창이던 마법의 숲에 있던 세 쌍의 남녀에게 찾아온 백일몽을 그린 작품이다.

샤갈은 여기서 왕비(티타니아)가 당나귀 인간(바텀)과 사랑에 빠진 모습을 잡아내 화폭에 펼쳐냈다. 당나귀 사내의 묘한 미소와 여인의 행복한 표정을 통해 사랑에 눈이 먼 순간의 황홀한 느낌을 초현실적으로 묘사했다. 20대 초반 고향 비텝스크에서 친구의 소개로 자신보다 아홉 살 어린 벨라 로젠펠트를 만나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것을 마치 백일몽처럼 은유했다. 샤갈은 이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면 왕비와 당나귀 인간처럼 맹목적으로 상대방만 보게 된다는 사실’을 색채미학으로 일깨워 준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