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붐이었지만…
지금은 정원 채우기도 힘들어…
[ 박종관 기자 ] 대학에서 정·재계 가교 역할을 하던 최고위과정이 사라지고 있다. 지방대는 물론 서울 상위권 대학에서도 정원을 채우지 못해 과정 운영을 잇달아 중단하고 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과 경기 부진 여파가 더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실한 교육과정과 비싼 등록금도 최고위과정 입학생이 줄어든 요인으로 꼽힌다.
“과정 개설 자체가 힘든 상황”
22일 교육계에 따르면 고려대 생명환경과학대학원은 올해 1학기부터 생명환경최고위과정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약 4개월간 50기 신입생 모집에 나섰지만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올해 2학기에는 아예 신입생 모집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최고위과정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고위공무원,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단기 비학위 교육과정이다.
고려대 언론대학원도 같은 이유로 올해 2학기 최고위언론과정 개설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대학원 관계자는 “지원자가 없어 과정을 개설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컴퓨터정보통신대학원은 지난해 2학기 43기 과정을 끝으로 최고위정보통신과정(ICP)을 아예 폐지했다. ICP는 1996년 개설돼 2500여 명의 동문을 배출한 전통 깊은 최고위과정이었다.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과 주호영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이 과정을 수료했다.
고려대뿐만이 아니다. 경희대 언론대학원은 올해 1학기 스피치·소통최고위과정을 열지 못했다. 역시 수강생이 없어서다. 아직까지 2학기 신입생 모집 계획도 없다. 상명대 경영대학원 프랜차이즈최고위과정과 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육경영최고위과정은 각각 2016년과 2015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올해 최고위과정 문을 연 대학들도 모집 정원을 겨우 맞추는 수준에 그쳤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사립대 행정대학원장은 “반액 장학금 지원을 약속해도 입학 희망자를 찾기가 어렵다”며 “1·2학기 두 차례로 나눠 모집하던 과정을 1년 과정으로 통합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쟁에서 밀린 지방대부터 차례로 최고위과정을 없애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란법 시행이 영향 미쳐
최고위과정은 한때 사회 지도층의 ‘인맥 살롱’으로 불리며 인기가 높았다. 학업과 인맥,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고위공무원과 대기업 임원의 승진 필수 코스로 여겨지기도 했다. 기업 CEO 중에서는 주요 명문대 최고위과정을 ‘수집’하는 이도 있었다. 곳곳에 맺어놓은 동문과의 인연이 사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최고위과정의 몰락은 김영란법 시행 시기와 맞물린다. 과거 대학들은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등에게 등록금의 최대 100%까지 장학금 명목으로 지원했다. 유명 동문을 모집해야 입학지원자가 몰린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초기 이 같은 장학금 지원이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대학은 장학금 지원을 줄이고, 고위공직자는 입학을 꺼리기 시작했다.
2016년 기획재정부 감사담당관실은 “공무원이 장학금을 받으면서 특수대학원을 다니는 것은 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재학생은 자퇴도 고려해보라”고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뒤늦게 국민권익위원회가 학칙에 따른 장학금 지원은 김영란법 위반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놓았지만 고위공직자들 사이에선 괜한 구설에 오를까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 정부부처 고위공무원은 “경기 부진과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 김영란법 루머까지 뒤엉키면서 최고위과정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말했다. 최고위과정의 ‘핵심 고객’으로 꼽히는 고위공직자 등이 강의실에서 사라지자 자연스레 기업인들도 학교를 찾지 않게 됐다는 게 교육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학들이 최고위과정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면서 부실한 교육과정을 우후죽순 개설한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지적도 있다. 최고위과정은 보통 6개월에서 1년 과정으로 1주일에 하루 2~3시간 수업으로 구성된다. 그럼에도 학비는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별도로 운영되는 골프 모임이나 해외탐방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추가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최고위과정 학비는 개인 돈을 내기보다는 회사에서 지원해줬는데, 경기침체로 이마저도 끊겼다”고 말했다.
■최고위과정은…
CEO와 고위공무원, 정치인 등 사회 각 분야의 리더를 대상으로 전문지식을 전달하는 비학위 과정, 6개월~1년 과정으로 운영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